6개월 전 중견업체 A건설에 다니는 36세 노총각 정범욱(가명) 대리는 상견례 자리에서 쏟아지는 예비 장모님의 질문에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실제로 A건설은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에 이어 법정관리까지 몇 년째 받고 있어 대답하기가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지금까지 정 대리를 감싸주던 여자친구의 얼굴에도 그림자가 드리웠다. 방안 공기가 무거워지면서 정적이 흘렀다. 정씨 등에선 땀이 흘러내렸다. 소위 말하는 '멘붕'(멘탈 붕괴)에 빠질 지경이었다.
왜소한 체격이 콤플렉스인 정씨는 자신감 있고 든든한 사위의 모습을 보여드리고자 했지만 '부실한 건설업체의 직원'이란 타이틀에 보기 좋게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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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적인 문제가 걸리니 정작 필요한 미래계획이나 자녀계획 같은 얘기는 제대로 꺼내지도 못했다. 그는 입사면접에서도 이 정도로 긴장하진 않은 것같았다고 털어놨다.
정 대리는 첫 만남부터 궁색한 변명만 늘어놓은 것같아 여자친구를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기분이 착잡하기만 했다. 그는 몇 년 동안 동결에 삭감까지 당한 연봉 때문에 가뜩이나 힘든데 결혼까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 눈가가 촉촉해졌다.
상견례를 마치고 몇 달 뒤 위기는 또 찾아왔다. 상견례 때 일이 마음에 걸려 전셋집을 얻기 위해 대출을 받아야 할 상황이란 사실을 말하지 못하다 결국 뒤늦게 여자친구 부모님들이 알게 됐다.
여자친구 부모님들은 그녀에게 결혼을 다시 생각해봐야 하지 않겠냐고 설득했다. 요새 신혼집을 얻기 위해 대출은 기본이라고 하지만 건설업체다니는 '불안한 사위'가 빚까지 얻어 결혼하겠다고 하니 마음에 찰 리가 없었다.
여자친구가 고집을 부려 정씨는 지난달 우여곡절 끝에 결국 결혼 승낙을 받긴 했지만 마음이 결코 편하지는 않다. 얼마 전부터 결혼 준비를 하고 있지만 아직도 첫 상견례에서 장인어른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는 "그때는 정말 결혼을 포기할 생각도 했다"며 "장인어른의 눈빛이 '너같이 불안한 직장에 다니는 놈에겐 내 딸을 줄 수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정 대리는 비슷한 또래 건설업체 직원이라면 대부분 자신과 같은 일을 겪고 있을 것이라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