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속으로] '전문가'를 다시 생각하기

머니투데이 타드 샘플 한국전력 해외사업전략 처장(특별 보좌관) 2013.07.04 07:00
글자크기
[세계속으로] '전문가'를 다시 생각하기


한국 기업들은 세계적으로 저명한 전문가들을 초청해 글로벌 트렌드 및 타 분야에 대한 그들의 식견을 듣는 것을 좋아한다. 저명인사를 초청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비용이 들기도 하지만 그를 해당 기업이나 해당 행사와 연관 지음으로써 긍정적인 홍보효과를 얻기 때문에 큰 비용이 들더라도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초청 받은 전문가 역시 인기를 얻음은 물론이요, 한국에서 자신의 전문분야 네트워크를 넓힐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에 득이 된다. 최근 몇 년 간 한국을 찾아 식견을 나눈 전문가들 중에는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미래학자부터 경영에 일가견이 있는 전문 경영인, 국가 브랜딩 전문가 등이 있다.



일반적으로 특별한 경력과 관점을 가진 개인의 견해는 다른 분야나 모범적인 경영 관행 또는 사회 트렌드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데 도움을 준다. 그렇지만 현지의 독특한 상황이나 문화와 같은 강력한 영향요인을 고려하지 않은 상태에서 식견과 전문지식을 제공할 때 그것의 가치는 현지인들에게 종종 희석되기 마련이다.

일례로 최근에 한국의 한 언론사 기자들과 하버드대 교수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마이클 샌델 교수와의 인터뷰를 텔레비전에서 본 적이 있다. 마이클 샌델 교수는 그 언론사가 후원한 포럼에 초청되어 한국을 방문했다. 인터뷰어는 도덕적 가치 전문가인 샌델 교수에게 한국이 직면하고 있는 특정 문제들에 대한 견해를 물었는데, 그 중 하나는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 한국의 자살률에 대한 질문이었다.



공정과 정의의 개념에 있어서 전문가임에도 불구하고 샌델 교수는 단순하면서도 겸손한 답을 했다. "모르겠습니다."

나는 샌델 교수가 한국에 초청될 때 받았을 상당한 금액의 돈 때문에라도 '립 서비스' 차원의 일반적인 답을 해야겠다는 강박관념을 갖지 않았던 것을 높이 산다. 샌델 교수는 대신 이렇게 대답했다. "자살률이 높다는 것은 정말 큰 문제입니다. 그렇지만 왜 그런 현상이 벌어지는지 구체적인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수많은 저서를 집필하고 판매했으며, 많은 우수한 학생들의 사고방식에 영향을 준 샌델 교수였지만 그는 현재 한국이 직면해 있는 중요한 문제에 대한 질문에 답을 할 수 없다고 느꼈다. 이 문제를 다루고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관점이 요구되는데 한국의 상황에 관련된 적절한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답을 할 수 없다고 느꼈던 것으로 충분히 이해된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세계적으로 저명한 인사들을 한국에 초청하는 기업이나 단체들은 그 전문가들의 의견에 귀 기울이고 그것을 실제로 기업의 경영 관행과 전략에 적용하는데 정말 관심이 있는 걸까. 아니면 초청에 부수적으로 따르는 긍정적인 홍보 효과와 '사장님이 세계적인 인사와 악수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을 찍을 기회를 노리는 것인가.

한국 사회는 실제로 적절하고 옳은 답을 줄 수 있는 사람들보다는 소위 '새겨들을 가치가 있다'고 간주되는 '전문가'로부터 의견과 통찰력만을 구하고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인다. 때론 학위와 학벌, 유명세, 심지어는 나이조차도 그 사람의 의견을 '들을 가치가 있는지' 판단하는 기준으로 사용한다. 그렇지만 당연하게도 그와 같은 기준이 어떤 사람을 자동적으로 전문가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

몇 년 동안 '전문가'들의 강연이나 발표를 참관해 보니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마치 해답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오만한 모습을 자주 보인다. 그들의 '식견'은 종종 지나치게 단순하거나 판단 기준의 부족으로 관련 없는 답을 하기도 한다. 마이클 샌델 교수처럼 그들이 "모르겠다"고 답하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오히려 관련 없는 대답과 예시를 들며 가르치려 들어서 청중들이 '대체 자기가 뭔데?'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설상가상으로 전문가에게 통찰력과 의견을 구하는 주된 이유 중 하나는 특정 주제에 대한 객관적인 관점이 필요하기 때문인데, '전문가의 의견'이란 것이 중요할 수 있는 관점을 배제한 경우가 종종 있다. 사탕발림한 의견과 제안은 중요한 문제들을 효과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는데도 말이다. 건강한 조직이라면 건설적인 비판을 구하고 귀담아 들어야 하며, 건설적인 비판과 의견의 공개적인 공유를 권장하는 문화를 확립하고 장려해야 한다.

나는 지금이 한국에서 '전문가'라는 단어를 다시 정의할 때라고 생각한다. 전문지식은 그 사람의 학위나 직급, 나이나 유명세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이 아니다. 이제는 다른 관점과 의견을 받아들이고 '귀 기울일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을 정하는데 있어 겸손한 접근을 해야 할 때다. 국제적 지위 향상 및 한국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기존의 다양한 관점과 관심사로 인해 한국은 점점 다변화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전문가'를 아주 협소한 기준으로 정의하는 것은 창조경제 시대에 한국을 뒷걸음치게 만들 뿐이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