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 탈출사건'을 소재로 한 연극 는 소통부재 사회상을 그린 블랙코미디다. /사진제공=극단 청우
#. 카카오톡(모바일 메신저)에서 친구들끼리 모여 한창 이야기를 나눈다. 대화를 마치고 주고받은 내용을 다시 살펴보면 서로 다른 이야기를 했다는 사실을 발견하곤 한다. 전혀 엉뚱한 말을 하기도 했고, 대답과 질문은 엇박자 나기 일쑤다. 하지만 마지막엔 즐거운 대화를 나눴다며 '안녕!'한다.
여럿이 모여 있지만 혼자 이야기하고, 대화를 한줄 알지만 각자 자기 말만 했다. 너도나도 '소통'이 중요하다고들 하는데 진짜 소통이 이루어지는 곳은 얼마나 될까. 때론 내 생각과 말을 그대로 이해해주기만 해도 좋겠단 생각이 든다.
이미경 작가의 희곡을 김광보 연출가가 무대화한 이 작품은 2005년 실제 있었던 '동물원 코끼리 탈출 사건'을 소재로 했다. 지난해 초연 당시 '희곡·연출·배우의 삼박자가 절묘하다'라는 평가를 얻으며 대한민국 연극대상 대상·연출상·연기상, 한국연극평론가협회의 '올해의 연극 베스트3' 등을 휩쓸기도 했다.
경찰은 코끼리 소동으로 유세장이 엉망이 된 사건을 누군가의 사주에 의한 정치 스캔들로 본다. 그의 동료와 정신과 의사는 조련사가 동물과의 접촉을 통해 쾌감을 얻는 성도착자라고 진술한다. 그의 어머니는 그가 평소 억압받는 동물이나 사람을 풀어주길 좋아했다고 말한다.
조련사는 어릴 때 집에서 키우던 애완견도 풀어주었고, 학교 수업시간에 해부하려고 잡아둔 개구리도, 심지어 아버지도 어머니로부터 자유로워지라고 풀어줬단다. 그러니 동물들을 모두 풀어주기 위해 동물원에 취직한 거란 어머니의 말은 꽤 설득력 있는 진술처럼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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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아닌데···, 비둘기가 떼로 날자 거위가 꽥꽥대고, 그 소리에 놀라 코끼리가 달리기 시작했는데"라며 조련사는 수십 번도 더 말하지만 누구 하나 귀 기울이지 않는다. 저마다 자신만의 논리로 이 소동을 규정하려 한다.
조련사 역을 맡은 윤상화 배우의 연기는 65분간 관객들을 흠뻑 몰입하게 만든다. 모자란 듯 하지만 정직함과 순수함을 지닌 소시민의 모습을 어눌한 말투와 표정으로 담담하고도 진솔하게 그려냈다. 착하고 성실한 사람인 줄은 알겠지만 '저러고 어떻게 살까'싶어 절로 짠한 마음이 든다. 결국 항변을 포기한 그는 스스로 코끼리가 되기로 한다.
역시 작품의 길이와 감동의 폭은 비례하지 않나보다. 구구절절 늘어지는 연설이나 발표를 들으며 진짜 하고 싶은 얘기가 뭔가 애써 찾아야 할 때가 있고, 3시간짜리 공연을 봐도 꽂히는 대사 하나 없을 때도 있다. 그런데 이 작품은 65분이라는 시간 안에 밀도 있게 주제를 담았다. 특히 마지막에 어두워진 무대 위에서 두 마리의 코끼리가 추는 춤은 오래도록 잔상이 남는다. 애달프고 구슬프면서도 우리 자신에게 물음표를 던지게 한다.
'우리는 제대로 들으려 하는가···.'
65분간 한 호흡으로 밀도있게 끌고가는 연극 는 희곡 연출 배우 3박자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작품이다.
/사진제공=극단 청우
/사진제공=극단 청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