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만에 다시 올리는 봄의 제사, 그 현장은...

머니투데이 글·사진=송원진 바이올리니스트·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 2013.06.09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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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포토에세이]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 샹젤리제 극장 100주년 공연

편집자주 <송원진의 클래식 포토 에세이>는 러시아에서 17년간 수학한 바이올리니스트 송원진이 직접 찾아가 만난 세계 유수의 음악도시와 오페라 극장, 콘서트홀을 생생한 사진과 글로 들려주는 '포토 콘서트'입니다. 그 곳에서 만난 잊을 수 없는 공연과 연주자들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화려하고 강렬한 터치로 러시아의 광활한 음악세계를 들려주는 그가 만난 음악과 세상, 그 불멸의 순간을 함께 만나보세요.

↑ 2013년 5월 31일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발레  포스터 ⓒ사진=송원진↑ 2013년 5월 31일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발레 포스터 ⓒ사진=송원진


↑1913년 5월 29일  초연 당시의 사진을 사용한 포스터 ⓒ사진=송원진↑1913년 5월 29일 초연 당시의 사진을 사용한 포스터 ⓒ사진=송원진
내게 가장 좋아하는 작곡가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이 사람을 말한다.

‘이고르 스트라빈스키(Igor Stravinsky). 러시아 출생이지만 프랑스 국적을 취득했다가 마지막엔 미국으로 국적을 바꿔 미국 작곡가가 되어버린 현대 클래식 음악의 거장이다.

스트라빈스키는 ‘창의성’ ‘창조성’이라는 수식어가 제일 많이 따라다니는 작곡가이기도 하다. 그는 오페라, 발레, 심포니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많이 남겼는데 특히 그의 발레곡은 참으로 매력적이다.



1913년 5월 29일, 파리 샹젤리제 극장은 한바탕 소동을 겪고 있었다. 무대 위에 올라온 새로운 발레작품을 접한 관객들은 비난과 야유, 혹평을 퍼부었고 급기야 경찰이 출동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이게 무슨 음악이야! 뭐하는 거야!"
"장난해? 이게 발레라고? 이런 건 집어치우라고 해!"



그렇다. 이날은 스트라빈스키의 걸작중 하나인 발레곡 <봄의 제전>의 초연 날이었다. 그리고 이 초연은 제일 시끄럽고 소란스런 공연으로 클래식 음악사에 남아있다.

↑영화 '샤넬과 스트라빈스키'의 포스터.↑영화 '샤넬과 스트라빈스키'의 포스터.
2011년 개봉한 영화 <샤넬과 스트라빈스키>의 첫 장면을 보면 그 때의 소동이 잘 드러나 있다. 영화는 니진스키의 발레와 음악이 결합된 그 당시의 무대와 관객의 소동을 실제에 가깝게 재현해냈다.

그런데 샤넬과 스트라빈스키가 어떤 관계냐고? 영화는 '봄의 제전' 충격의 초연 현장에 있었던 샤넬이 작곡가인 스트라빈스키의 예술성과 창의성을 간파하고 그에게 호감을 느끼는 모습으로 시작된다.


이 영화는 각각 패션산업과 클래식 음악에서 전통과 관습을 파괴하고 시대를 앞선 혁신적 인물이었던 두 사람의 운명적 만남과 로맨스, 그리고 그것이 각자의 예술적 삶에 끼친 영향을 그렸다.

샤넬은 스트라빈스키와의 사랑 속에서 그 유명한 향수 '샤넬 No.5'를 만들었고 '봄의 제전' 초연 후 큰 상처를 받았던 스트라빈스키도 샤넬과 함께 지내면서 새로운 영감으로 '봄의 제전' 완성해 재공연시 엄청난 박수갈채를 받게된다

영화처럼 샤넬과 스트라빈스키가 실제 연인이었을까? 이 영화는 샤넬이 말년에 스트라빈스키와 특별한 관계였다는 고백을 토대로 영국작가가 쓴 '코코 & 이고르'라는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스트라빈스키의 발레  포스터가 붙어 있는 샹젤리제 극장 외관 ⓒ사진=송원진↑스트라빈스키의 발레 포스터가 붙어 있는 샹젤리제 극장 외관 ⓒ사진=송원진
↑예매한 티켓을 찾기 위해 길게 선 줄과 설레이며 공연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북적인 샹젤리제 극장  ⓒ사진=송원진↑예매한 티켓을 찾기 위해 길게 선 줄과 설레이며 공연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북적인 샹젤리제 극장 ⓒ사진=송원진
2013년 샹젤리제 극장은 <봄의 제전> 100주년을 기념해서 다양한 버전의 <봄의 제전>을 준비했다.

그 첫 스타트를 100년 전 초연 날짜인 5월 29일부터 3일간, 요즘 제일 ‘핫’한 러시아 지휘자인 발레리 게르기예프(Valery Gergiev)가 이끄는 마린스키 극장 발레단과 오케스트라가 끊었다.

마린스키 발레단은 100년 전 초연 때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내는 공연으로 무대 디자인, 무대 의상 모두 그때 그 모습 그대로 보여주었다.

초연 안무는 당시 최고의 주가를 자랑하던 발레리노 바츨라프 니진스키가 맡았는데 클래식 발레에 익숙해있던 무용수들에게 니진스키가 제안한 현대무용에 가까운 안무는 너무 획기적이었고 이해하기 힘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100년 후 마린스키 발레단의 공연을 보니 니진스키의 안무는 이제 너무 '고전적'으로 보인다.

↑마린스키 극장 발레단의 공연 후 커튼 콜 모습 ⓒ사진=송원진↑마린스키 극장 발레단의 공연 후 커튼 콜 모습 ⓒ사진=송원진
이 공연은 DVD로도 나와 있어서 자주 봐왔던 것이었지만 역시 라이브로 보니 차원이 달랐다. 원시적인 무대 디자인과 무대의상, 그리고 어느 면으론 안무마저도 원시적인 느낌이 나게 잘 표현되었다. 거기에 러시아 오케스트라가 가지고 있는 사운드의 강렬함이 그 ‘원시적’인 색깔을 더욱 입체적으로 표현해 주었다.

'봄에 바치는 제사'라는 뜻을 가진 이 발레는 100년 전 '백조의 호수'만 보던 사람들에게 큰 충격 일수 밖에 없었다. 너무 적나라한 컬러와 제자리 뛰기 같은 동작의 안무는 이것을 도저히 발레라고는 생각할 수 없게 만들었을 것이다.

100년이 지난 지금, 이 공연의 색깔이 얼마나 화려하고 멋있는지 이 공연을 기획했던 세르게이 디아길레프,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안무가 바츨라프 니진스키에게 한없는 찬사와 갈채를 보내고 싶다.

그래서 마린스키 발레단에게 있는 힘껏 손바닥이 닳도록 박수를 쳐주었다. 다른 모든 관객도 나와 마찬가지였나 보다. 우뢰와 같은 함성과 박수 갈채가 끊이지 않았고 심지어 자리에서 일어나 흥분된 모습으로 브라보를 외치는 사람들로 극장은 가득차 있었다.

↑ 샹젤리제 극장의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 100주년 기념공연은 5개월 전 매진을 기록했다. 100년전의 야유와 비난 대신 객석에선 열렬한 환호와 기립박수가 이어졌다. ⓒ사진=송원진↑ 샹젤리제 극장의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 100주년 기념공연은 5개월 전 매진을 기록했다. 100년전의 야유와 비난 대신 객석에선 열렬한 환호와 기립박수가 이어졌다. ⓒ사진=송원진
이 공연을 직접 볼 수 있다니... 정말 감격스러웠다. 이 현장에 오게 되기까지 나름 우여곡절을 겪었기 때문이다. 처음 공연을 예매하려고 보니 3일간 계속되는데도 1월 말 벌써 매진을 기록해서 어디서도 티켓을 구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5월 31일 금요일 낮 3시 공연이 하나 더 생기면서 또 한 번 티켓 구매를 위한 전쟁이 일어났고 결국 나도 밤을 새며 '광클'을 한 덕분에 사이드지만 아담한(?)자리를 하나 구할 수 있었다.

초연 100년을 기리는 공연을, 그것도 내가 가장 사랑하는 작곡가인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을 볼 수 있었다는 건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이 공연은 아마 내 인생에서 제일 기억되는 공연 중 하나일 것이다.

☞ 6월 나눔콘서트 : '죽음의 무도'와 '스페인 랩소디'
->'송원진,송세진의 소리선물' 6월16일 광화문 KT올레스퀘어 드림홀



◇ 클래식도 즐기고 기부도 하는 <5천원의 클래식 콘서트>
100년만에 다시 올리는 봄의 제사, 그 현장은...
<송원진·송세진의 소리선물>콘서트가 매월 세번째 일요일 오후 1시 서울 KT 광화문지사 1층 올레스퀘어 드림홀에서 열립니다. 이 콘서트는 일반인들이 쉽게 접하기 힘든 클래식 콘서트의 티켓 가격을 5천원으로 책정하고, 입장료 수익금 전액을 어려운 가정의 청각장애 어린이 보청기 지원을 위해 기부합니다. 6월 공연은 16일 일요일 오후 1시입니다. 예매는 인터넷으로 가능합니다. ( ☞ 바로가기 nanum.mt.co.kr 문의 02-724-7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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