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쭙습니다. 왜 푸르른 산에 사시나요?

머니투데이 선승혜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HK교수 2013.06.07 10:15
글자크기

[선승혜의 행복한 미학]'똘똘' 미술책 속의 지혜에 대해 (1)'느긋' 내 마음의 별천지

 도판: 왕휘(1632~1717)  중국, 청대 『陶淵明逸致特展』(타이페이고궁박물원, 1988), 도24 도판: 왕휘(1632~1717) 중국, 청대 『陶淵明逸致特展』(타이페이고궁박물원, 1988), 도24


이른 아침 명륜동의 연구실 문을 열면 책 냄새가 난다. 고서점처럼 아득해 진다. 세계 각지에서 밥값을 줄여가며 산 미학과 미술책들. 어느새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쌓여있는 책들을 보니 다 읽지 못한 미안함에 조금 머쓱해진다. 이제 책이 숨 쉴 수 있게 한 권씩 펼쳐서 그 미술책 속에 담긴 지혜를 나누고 싶다. 마치 입체 책(팝업 북)처럼, 수많은 모티프들이 우리의 상상으로 생기발랄하게 튀어오도록.

사람들은 움츠려 든 마음을 밝혀줄 예술을 좋아한다. 예술가가 삶이 어려워지는 원인을 짚어 내고 더 나은 세상을 그려내는 천재성을 갖기는 쉽지 않겠지만, 좌절과 절망을 벗어날 희망을, 삶에 대한 바람을 그들은 예술에 투영했다. '아시아에서 시대의 고비 때마다 사람들은 어떤 예술 작품을 만들어 냈는가?' '어떤 어려움에 시달렸기에 예술로 희망을 그리고자 했는가?' 이런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독자들과 나누고 싶다.



동아시아에서 행복한 마을의 상징이 되었던 도연명(陶淵明; 365~427)의 '도화원기(桃花源記)'. 한중일, 국적에 관계없이 사랑을 받았던 이야기이다. 한 어부가 복사꽃이 만발한 물가에서 동굴을 발견하고 들어갔다. 바로 그곳에서 폭정을 피해서 들어온 사람들이 노인과 어린아이들 모두 행복하게 살고 있는 마을을 발견했다. 아쉽게도 인간의 숙명이랄까, 어부는 도원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갔고, 다시는 그곳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고 한다.

언제인가 돌아가고픈 행복한 마을인 도원에 대해서, 많은 예술가들은 저마다의 해석을 내놓았다. 그 중 중국에서 가장 문화가 융성한 시대를 누렸던 당나라의 낭만주의자, 이백(李白; 701~762)의 '산 속에서 묻고 답하기 '산중문답(山中問答)'시를 소개한다. 우리가 '문화 융성'을 꿈꾼다면 함께 되새기고 싶은 시와 그림이다.



"당신에게 여쭙습니다. 왜 푸르른 산에 사시나요? 웃기만하고 대답은 않으시네. 마음이 원래 느긋하시구나. 복사꽃이 시냇물 위로 흘러, 아득히 멀어져 갑니다. 보통 세상과 달라요. 인간 세상 아니네요." (問余何事棲碧山, 笑而不答心自閑. 桃花流水杳然去, 別有天地非人間)

이 시에서 나온 말이 바로 '별천지'(別天地)이다. 세상과 또 다른 무엇. 이백은 빙긋이 웃으며 행복 동네를 미주알고주알 설명하지 않았다. 각자의 꿈을 꾸도록 해 준 것이다. 그렇지만 단 한 가지 중요한 것은 행복은 마음의 느긋함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꽃이 흘러가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볼 수 있는 여유이다. 이것은 게으름과는 다른 마음의 느긋함이다. 이것이 바로 풍요로운 예술이자, 융성한 문화의 자양분이다.

이백의 '산중문답'에 가장 어울리는 그림으로 왕휘(1632~1717)의 '복사꽃 사이로 어부가 배를 타는 그림 (桃花漁艇圖)'이 있다. 가로 28cm, 세로 43cm의 화첩 그림이다. 혼자서 지긋이 혹은 친구와 오순도순 보기에 딱 알맞은 크기이다. 종이에 수묵으로 옅게 그려서 마음에 촉촉이 스며든다. 산이 신록으로 채워진 후, 강가에 핀 복사꽃은 점점 옅은 분홍빛으로 변해간다. 도원에 다 도착할 즈음의 지점에는 소나무가 몸을 기울여 반겨주고 있다. 눈길이 머무는 것은 물길을 따라 배를 타고 내려오는 선비이다. 선비는 속세에서 행복 마을인 도원으로 떠나가지 않고, 그림을 보고 있는 우리에게 다가온다. 아, 바로 그림을 보는 우리가 도원에 있는 것이었다니!


이 그림을 그린 왕휘는 정통 문인화가 이면서도, 청나라 4대 황제인 강희제(재위 1661~1722)를 위해서도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강희제는 중국 역대 황제 중에서 재위기간이 61년으로 가장 길 뿐만 아니라, 청나라를 재정적, 내정적으로 안정시키고, 옹정제·건륭제로 계승되는 전성기의 토대를 다졌다.

이 그림에서 읽을 수 있는 행복 마을, 그 문화 융성의 지혜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속에 마음의 여유를 주는 것이다. 남녀노소가 여유롭게 크고 작은 즐거움을 속에서 웃을 수 있는 사회, 그것이 바로 행복한 마을, 우리들이 꿈꾸는 별천지가 아닐까.

한국 사람들은 이러한 여유 속에서 문화를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지혜와 DNA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신라와 가야의 음악가였던 우륵의 말처럼 "즐기지만 방탕한 곳으로 흘러가지 않고, 슬프더라도 비통해 하지 않으면, 올바르다고 할 수 있다(樂而不流, 哀而不悲, 可謂正也)"라는 지혜의 전통을 떠오른다.

창조경제를 우리 경제의 '살 길'로 정하고 시동을 거는 지금, 창조는 예술이 숨 쉴 수 있는 가슴의 여유에서 나오는 것임을 우리보다 앞서간 자들은 말해주고 있다.

여쭙습니다. 왜 푸르른 산에 사시나요?
선승혜는..


현재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학술원 HK교수(미학·미술사학)이며, 클리블랜드미술관 한국일본미술 큐레이터를 역임했다.

그는 코너를 열며 유독 '행복'이라는 단어를 놓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일상에서 예술을 통해 소소한 기쁨과 즐거움을 발견하는 삶을 살 게 되길 바란다며 이렇게 말했다.

"뜻밖의 기쁨은 우리의 매일 속에 있습니다. 아름다움과 예술을 보듬어 4가지로 나누어 글을 연재합니다. (1) '똘똘'--미술 책 속의 지혜 (2) '풋풋'--아티스트 인터뷰 (3) '반짝'--미학과 감성마케팅 (4) '방긋'--한국미의 재발견. 느끼는 만큼 삶이 풍요로워지도록, 함께 예술과 문화로 마음 흔들기 'heart storming' 해 보아요!"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