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태 칼럼] 외삽법과 은유검증 위원회

머니투데이 박정태 경제 칼럼니스트 2013.06.07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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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의 의미를 찾아서 <33>

[박정태 칼럼] 외삽법과 은유검증 위원회


인간이란 어쩔 수 없이 과거라는 거울을 통해 미래를 내다보기 마련이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 없다는 옛 격언도 있으니 말이다. 더구나 과거의 흐름에 대한 지식이 더 많이 쌓여갈수록 우리는 미래도 계속해서 그런 식으로 흘러갈 것이라고 단정짓게 된다.

이렇게 과거의 자료에 근거해 귀납적으로 미래를 예측하는 방법을 외삽법(extrapolation)이라고 하는데, 주식시장이나 주요 경제지표를 전망할 때도 이 외삽법을 많이 사용한다. 기술적 분석가들이 주차차트를 갖고 앞으로의 주가전망을 내놓는 게 대표적이지만 기업의 과거 실적을 토대로 매출과 순이익을 전망하는 것도 그렇고, 유가나 환율변동, 경제성장률을 예측하면서도 이런 외삽법을 사용한다.



그런데 여기에는 결정적인 함정이 있다. 어떤 데이터를 모으고, 그중 어떤 변수에 얼마의 가중치를 둘 것인가에 따라 거기서 얻는 결론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예외적으로 분석가들의 의견이 일치하는 경우조차 주식시장은 엉뚱한 방향으로 튀어 가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진다.

투자의 세계 자체가 끊임없이 변화하는데 과거 데이터에서 찾아낸 패턴에 의존하는 것은 사실 신뢰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아무리 뛰어난 주가 예측 모델도 태생적으로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게 바로 '귀뚜라미의 한계'(Cricket Limit)다.



귀뚜라미의 울음소리와 대기온도 간에는 거의 완벽한 상관관계가 존재한다. 밤이 되어 기온이 떨어지면 귀뚜라미의 울음소리는 느려진다. 20도에서 18도로, 다시 16도, 14도로 떨어질수록 울음소리는 점점 느려지는데, 그렇다면 이런 식으로 계속 느려지는가 하면 그건 아니다. 밤 기온이 더 떨어져 섭씨 10도 아래로 내려가면 귀뚜라미는 날개를 접어버리고 아예 울음소리를 내지 않는다. 어느 순간 상관관계가 갑자기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경제학자로 자산운용회사를 경영하기도 한 헨리 카우프만은 이렇게 말했다. "외삽법은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는 하지만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려주지는 못한다." 외삽법 자체는 일견 자연스럽고 그럴듯해 보이지만 얼마든지 틀릴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한계를 알면서도 자꾸만 그 함정에 빠져든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그것은 아마도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고도의 추상적인 패턴인식능력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파란 하늘의 뭉게구름을 바라보면서 사람 얼굴 모습이나 아프리카 대륙 모양을 구분하곤 한다.


이런 능력은 탁월한 것이기는 하지만 투자의 세계에서는 대개 역효과를 낸다. 왜냐하면 주식시장에서는 그것이 주가지수든 개별 종목의 주가든 어떤 패턴도 없기 때문이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변수가 무한대의 연결고리로 얽혀 상호작용하는 세상에서 특정한 패턴을 찾으려는 작업은 무의미할 뿐만 아니라 위험할 수 있다.

물론 두 가지 경제변수 간의 상관관계가 아주 높은 경우도 있다. 실업률과 임금상승률, 그리고 시장금리와 인플레이션 같은 것이 대표적인데, 한 가지 변수를 선행지표로 활용하면 다른 변수의 전망에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도 늘 예외는 있다.

더구나 많은 사람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기준금리를 내리면 경기가 살아나고 주가도 오를 것이라는 예상은 위험할 수 있다. 1930년대 대공황 때도 그랬고, 1990년대 이후 일본에서 봐온 것처럼 극단적으로 금리가 떨어진 상황에서는 추가적인 금리인하가 경기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할 수 있다.

'작지만 강한 기업에 투자하라'는 저서로 잘 알려진 랄프 웬저는 그래서 자신이 운용하는 에이콘펀드 산하에 은유검증위원회(Metaphor Committee)를 만들었다. 이곳에서 하는 일이란 "지금 주식시장은 1995년 페소화 위기 때와 똑같다"든가 "이 종목은 제2의 인텔이 될 만한 주식"처럼 은유적 표현을 찾아내 피도 눈물도 없이 보고서에서 삭제해버리는 것이다.

오늘 죽는 사람들 모두는 어제까지 한 번도 죽지 않은 사람들이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틀리지 않은 패턴이라 해도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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