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네' 개발했던 공고출신男, 지금…

머니투데이 샌프란시스코=유병률 특파원 2013.05.27 06:00
글자크기

[유병률의 체인지더월드]<49> 김성훈 교수, 세계적 학자된 비결은

지난 24일(현지시간) 샌프란시스코 하얏트리젠시호텔에서 열린 ICSE 컨퍼런스에서 우수논문상을 수상한 김성훈 홍콩과기대 교수. /샌프란시스코=유병률기자  <br>
지난 24일(현지시간) 샌프란시스코 하얏트리젠시호텔에서 열린 ICSE 컨퍼런스에서 우수논문상을 수상한 김성훈 홍콩과기대 교수. /샌프란시스코=유병률기자


지난 24일(현지시간) 소프트웨어공학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학회인 ICSE(세계소프트웨어엔지엔지니어링학회) 연례 컨퍼런스가 열린 미국 샌프란시스코 하얏트리젠시호텔. 세계각지에서 참석한 수백 여명 컴퓨터공학자들이 자그마한 체구의 한 한국인에게 앞다퉈 악수를 청했다.

이 학회에 논문 2~3개만 등재되면 골라서 미국대학 교수를 할 수 있다는데, 이 한국인은 지금까지 6편이나 게재했다. 더욱이 올해는 '버그(컴퓨터 프로그램 오류)'를 찾아내 자동으로 고쳐주는 알고리즘을 소개한 논문으로 우수논문(Distinguished Paper)에까지 선정됐다. 그의 연구가 ICSE 우수논문에 선정된 것은 이번이 두 번째로 한국인으로서는 유일한 기록이다. 2011년 마이크로소프트로부터 혁신상을, 구글로부터 연구상을 받기도 했다.



바로 김성훈(41) 홍콩과기대 교수. IT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까치네'라고 하면 그가 누구인지 연상될 듯싶다. 대학 4학년 때인 1995년 한국최초로 검색로봇이 페이지를 자동으로 수집하는 검색엔진 '까치네'를 개발했고, 2년 뒤에는 벤처회사 '나라비전'에서 '삐삐(무선호출기)'와 휴대폰으로 메일도착을 알려주는 '깨비메일'을 만들었다. 그러다 2000년 미국으로 건너가 박사학위(캘리포니아주립대 산타크루즈), 박사 후 과정(매사추세츠공대)을 거쳐, 2009년 홍콩과기대 교수가 됐다. 학회 참석차 샌프란시스코를 방문한 그를 만났다.

'공고' 출신이 성공하려면 죽을 둥 살 둥 해야 하나?
김 교수가 이런 세계적 학회에서 스타가 된 것이 더 드라마틱하게 보이는 이유는 그의 출신 때문이다. 그는 과학고 출신도, 서울대 출신도 아니다. 구미전자공고를 나왔고, 대구대 출신이다. "저를 모르는 분들은 제가 아주 좋은 학교 나온 줄 알고 있더라고요. 그럴 때면 꼭 수정해드리죠. '공고' 나왔고, 대구대 졸업했다고요. 저는 거기서 출발해서 여기까지 왔고, 또 앞으로도 더 많이 올라갈 테니까 아주 자랑스러운거죠."



김 교수는 유학 초기 자괴감이 들 정도로 힘들었다고 했다. 영어도 서툰데, 수업은 늘 토론식이었기 때문이다. "명색이 인터넷회사에서 5년 일했는데 인터넷에 대해 한마디도 못하고 집에 오는 거예요. 한국식 토론은 한 주제를 향해서 쭉 가잖아요. 그런데 여기 토론은 삼천포로 빠지는 것을 오히려 교수가 장려해요. 컴퓨터 이야기를 하는데 심리학, 사회과학이 다 나와요. 한마디 끼어들려고 하면 벌써 다른 삼천포로 가 있어요. 사실 이게 맞는 방식이죠. 문제해결을 위한 아이디어는 결국 삼천포에서 나오거든요."

'공고'에서 출발해서 세계적으로 주목 받는 학자가 됐으면, 죽을 둥 살 둥 노력하는, 엄청난 '독종'일거라 생각했는데, 사실은 정반대였다. "물론 한국에서 일할 때 처음 2~3년은 무섭게 일했지요. 유학 왔을 때도 처음 2년은 그랬고요. 그런데 사실 저는 워크홀릭 스타일이 아닙니다. 제 일과를 말씀 드리면 이렇습니다. 아침에 아내 밥 먹여 출근시킨 뒤, 저는 근처 해변에 가서 1시간 수영을 합니다. 날씨 안 좋으면 뛰고요. 10시쯤 학교 나가서 오후 6시면 집에 오죠. 저녁 먹고 한 두 시간 학생들 이메일 답장 해주고, 아내와 이런저런 이야기하다가 11시에 자는 거죠. 여름에는 매년 한 두 달씩, 많게는 세달 씩 여행도 다녀옵니다."

그러면서 그는 "수영하면서 어떻게 문제를 풀까 정리하고, 여행하면서 아이디어 떠올립니다. 물론 집중해서 일해야 할 땐 그렇게 하긴 하지만요. 사실 이런 방식이 모든 사람에게 다 통할 거라곤 생각지 않아요. '월화수목금금금'해야 좋은 아이디어 나오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는 거죠. 저는 후자인 거죠. 한국도 개인들의 이런 다양한 스타일을 인정하고 지켜봐 줄 수 있어야 합니다. 특히 창조경제를 하겠다면 말이죠."


"교수를 방치하는 대학에서 세계적 학자가 나온다"
기자는 '아직 조교수이면서, 매년 몇 달씩 여행가고, 매일 6시면 집에 올 수 있는 배짱이 어디서 나오냐'고 물어보았다. 그는 "홍콩과기대의 기밀을 하나 누설하겠다"면서 "이 대학은 교수들을 방치한다"고 대답했다. 홍콩과기대라면 설립 20년밖에 안됐지만 전세계 대학랭킹이 50위 언저리인 서울대보다 최소 20여위는 더 높고, 컴퓨터공학만 치면 세계 12위인데, 교수들을 방치한다니….

"조교수 임용이 되면 6년 동안 마음대로 연구하라고 내버려둡니다. 월급도 충분히 주면서 말이죠. 수업은 한 학기에 한 과목만 하면 됩니다. 학교 잡무도 빼주고, 전담 비서도 배치합니다. 채점도 직접 안 해요. 그러니 교수들이 열심히 연구만 하죠. 학교 일은 테뉴어(종신교수직) 받고 난 다음에 시간 나면 하라는 겁니다. 한국과는 반대인 거죠. 한국은 처음 교수되면 학교를 위해 열심히 잡무를 하고, 나중에 후배교수 들어오면 연구하라는 거잖아요. 사실 그때가 되면 이미 연구에 대한 엣지(날카로움)가 다 꺾인 상태인데…"

김 교수는 미국대학의 교수제안을 거절하고 홍콩과기대를 선택 한 이유에 대해서도 "이런 시스템을 통해 세계적인 학자로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하는데, 이 얼마나 멋진 제안입니까"라며 이렇게 얘기했다. "홍콩에서 논문을 쓰니깐 훨씬 더 세계적 주목을 받는 거예요. 아시아에서는 우수한 논문이 사실 몇 편 안 나오니까요. 세계적인 학회에 초청받기도 쉽고요. 왜 지역안배라는 것도 있잖습니까? 그래서, 살면서 지금까지의 제 결론은 '남이 안가는 길로 갔을 때, 훨씬 더 주목을 받을 수 있다' 입니다."

김 교수는 남이 안가는 길을 가기 위해서 '평생 집을 사지 않는 것'이 신조라고 말했다. "아내와 저는 항상 어디로든 떠날 준비가 돼 있어요. 살면서 더 많이 도전해보고 싶거든요. 그렇게 하려면 한군데 너무 익숙해지면 안됩니다. 너무 익숙해지지 않으려면, 버릴 줄도 알아야 하죠. 집이라든가 혹은 돈이라든가…"

"한국소프트웨어, 소 잡는 칼로 닭만 잡고 있다"
김 교수의 전공은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의 소스코드에서 버그를 찾아내 컴퓨터로 자동수정 하는 프로그램을 연구하는 것. 검색엔진와 이메일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다가 소프트웨어공학 깊숙이 들어가 학문적 연구를 하게 된 이유에 대해 그는 "펀더멘털(기초)에 대한 연구가 더 중요할 것 같아서"라고 답했다.

"한국의 소프트웨어 문화는 펀더멘털보다는 어플리케이션 중심이죠. '포장만 잘하면 좋은 비즈니스가 될 수 있다'는 것이 현재 한국식 비즈니스모델이 아닌가 생각이 들어요. 플랫폼 같은 펀더멘털에 대한 연구는 시간도 많이 걸리고, 리스크도 많기 때문이죠. 그런데 문제는 어플리케이션은 트렌드가 빨리 변하고, 빨리 따라 잡힌다는 겁니다. 이런 추세라면 소프트웨어에서도 5년이면 중국에 다 따라 잡힐 겁니다."

그러면서 그는 "삼성이 안드로이드와 같은 운영체제를 만들려고 해도 개발자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엔지니어들의 능력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소프트웨어산업이 어플리케이션 개발에 포커싱되어 왔기 때문에 능력 있는 개발자들도 이런 쪽에 몰려있기 때문이죠. 출중한 해커들을 보면 외국에서는 굉장한 대접을 받지만, 한국에서는 다른 엔지니어들과 별반 차이가 없어집니다. 하는 일이 비슷하니까요. 원오브뎀(one of them)이 되는 거죠. 소 잡는 칼로 닭만 계속 잡고 있는 겁니다."

"스티브 잡스가 커리큘럼 좋아서 나왔나?"
김 교수는 "한국기업들이 소프트웨어에 대한 가치를 제대로 평가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하드웨어는 가치를 매기기가 쉽죠. 만드는데 얼마 들었고, 팔아서 얼마 벌 수 있냐, 이런 식이죠. 하지만 소프트웨어는 사람의 생각을 옮겨놓는 것이기 때문에 가격 매기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다 보니 '소스코드를 쓰는 데 몇 시간 걸렸냐'로 평가해버립니다. 디버깅(버그를 고치는 일) 작업은 아예 무료 애프터서비스이고요. 소스코드를 쓰다 보면 생각지 못한 것이 나올 수 있고, 그래서 버그도 생기기 마련인데, 버그 수정은 일로 쳐주지도 않는다는 거죠. 외국은 소스코드 쓰는 데 몇 시간 걸렸는지 관심 밖입니다. 소프트웨어를 사용해서 비용이 얼마나 줄었는지를 봅니다. 100만원 들다가 10만원으로 줄었으면, 90만원을 나눠가지는 것이죠."

그러면서 그는 "한국에서 소프트웨어 인력이 부족하다고 하지만, 똑똑한 인재들이 가고 싶도록 만들어주면 된다"고 말했다. "한국의 대학들이 커리큘럼을 고치겠다고 하는데, 스티브 잡스가 커리큘럼 좋아서 나온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선배들이 매일 코피 흘리고, 버그 빨리 안 고쳐준다고 닦달 당하는 모습만 보는데, 누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되려고 하겠습니까?"

김 교수는 올해부터 고국에 대해 작은 봉사를 실천하고 있다. 5명 이상 홍콩과기대를 방문하면 무료 강의를 해주고, 5명 미만이면 점심을 대접하는 것. 중고생들에게는 소프트웨어 개발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이야기해주고, 대학생들에게는 연구원으로 세계를 누빌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전공자들에게는 자신의 연구분야에 대해, 그리고 홍콩과기대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 학교의 급성장 비밀을 이야기해준다. 이미 대구대 후배들, 성균관대 반도체학과 신입생들, 발명대회 수상 중고생들이 다녀갔다.

"외국에 나와있으면서 한국사회를 비판적으로 볼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다 '과연 나는 한국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나'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생각한 것이 혹시 소프트웨어에 관심 있는 분들이 있다면, 밥이나 사자고 생각하게 된 거죠."

그가 '공고' 출신이면서도 세계적인 소프트웨어 학자가 된 비결도 어쩌면 주위를 둘러보며, 밥 한번 살 수 있는 여유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유병률기자 트위터 계정 @bryuvalley>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