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광고기획사 K씨, 입사 3년만에 그만둔 이유

머니투데이 김남이 기자 2013.05.12 05:05
글자크기

[직딩블루스]<6>내 옆에 앉은 '그 사람'처럼 될까 두렵다

일러스트=김현정일러스트=김현정


“내가 나중에 옆자리에 앉은 직장 상사처럼 될까봐 두려웠어요. 직장 그만두는 사람 대부분 이런 생각 갖고 있지 않을까요?”

직장인 K씨(27)가 퇴사를 결심하며 털어놓은 속내다. 그는 올해 회사를 스스로 떠났다. 그렇게 꿈꿔왔던 광고회사에 입사한지 3년만이었다.

‘광고쟁이’가 되기 위해 K씨는 대학부터 각종 스펙을 쌓았다. 해외연수에 인턴, 공모전까지. 졸업과 동시에 국내에서 손꼽히는 광고회사에 들어갔다. 대학 내내 상상했던 직장생활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행복했다. 하지만 직장은 ‘상상 이상’이었다.



자유로운 분위기의 광고회사를 상상했지만 회사는 여느 회사와 같이 수직적이고 경직돼 있었다. 할 일이 없어도 선배들이 있으면 밤까지 회사에 남아있어야 했다. 무엇보다 말이 통하지 않아 ‘공공의 적’이 된 S선배가 문제였다.

회사 안팎에서 말이 안통하기로 유명한 S선배는 “왜 그것도 못하냐”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또 전형적인 ‘내 덕 네 탓’ 스타일이었다. ‘일이 잘되면 자기가 잘한 덕이고 못되면 네놈들이 못했기 때문’이라고 K씨를 달달 볶았다.



한번은 컴퓨터 고장으로 광고영상이 광고주 앞에서 재생되지 않았던 적이 있었다. K씨의 잘못이 아니었지만 모든 책임은 K씨에게 몰렸다. 같은 팀인 S선배는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옆에서 “왜 준비를 제대로 안했냐”며 “모두 네 탓”이라는 눈치를 줬다.

K씨는 “광고주 컴퓨터가 갑자기 고장 난 게 내 책임은 아니잖아요. 내 능력밖에 일을 갖고 자꾸 나에게 책임 물으니 정말 화가 났죠”라며 당시를 회상하며 언성을 높였다. 그는 "회사생활 3년 동안 S선배에게서 ‘일 미루는 것’만 배웠다"며 허탈해 했다.

퇴사를 결심하던 날도 아침에 사소한 문제가 있었다. 평소 같으면 참고 넘어갈 일이었지만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선배 밑에서 계속 있다 보면 내가 저 선배처럼 되는 건 아닐까?’


그러자 회사에 갖고 있던 오만 정이 다 떨어졌다. K씨는 그날 오후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선언했다. 그 소식을 들은 ‘공공의 적’은 “요즘 딴 생각하고 있던 것 같더니 그게 바로 사표냐?”며 또 ‘한소리’했다. 그 순간 퇴사하기 잘했다고 생각했다.

“사실 참고 버틸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건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잖아요. 기본적으로 일을 즐겁게 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최근 발표한 대한상공회의소의 ‘창조경제시대 기업문화 실태와 개선과제 조사’를 보면 직장 내 상사나 선배와 갈등이 있는가’라는 물음에 직장인의 68.5%가 ‘그렇다’고 응답했다. 갈등을 겪는 직장인들은 이유로 ‘업무와 관련해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서’(67.2%)가 1위였다.

소통이 되더라도 닮고 싶지 않은 선배는 직장인에게 큰 스트레스다. 대기업에서 5년 동안 일하다 지난해 말 퇴사한 L씨(32)도 선배들의 모습을 보며 회사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인간적으로는 선배들이 좋았지만 선배들처럼 되기는 싫었다.

“회사 분위기는 좋았죠. 무난하게 일하다 10년 지나면 과장되고 20년 지나면 부장도 되겠죠. 그런데 그걸 위해서 입사한 것은 아니잖아요. 우리나라에서 임원이 될 확률이 0.8%라는데 솔직히 저는 안 될 것 같더라고요.”

L씨에게 회사 일은 매일 똑같았다. 컴퓨터에 앉아 매일같이 수치를 입력하고 엑셀을 돌렸다. 가끔은 야근에 치어 회사 근처 모텔에서 자기도 했다. 문제는 옆에 함께 일하는 선배들의 모습도 자신과 똑같다는 것이었다.

결국 L씨는 새로운 일을 찾아 회사에 사표를 제출했다. 주변에서 말렸지만 다른 삶을 살고 싶었다. 그리고 얼마 전부터 대학 때부터 꿈꿨던 영상 연출을 시작했다.

직장인들이 가족보다 오래 보는 사람이 옆자리에 앉은 직장 동료와 선배다. 옆자리에 앉은 직장 선배의 모습이 미래의 내 모습처럼 보일 때, 두려움을 느낀다면 직장 은 우울(blues)해 질 수밖에 없다. 그건 바로 바늘구멍 같은 취업난을 뚫고 회사에 들어간 청운의 젊은이를 회사 밖으로 내쫓는 '고질병'이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