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호의 체인지업]이건희회장의 프로야구 철학

머니투데이 장윤호 스타뉴스 대표 2013.05.11 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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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서울 무교동에 있는 음식점에서 한국 스포츠계의 원로 분들과 저녁 식사를 함께 할 기회가 있었다. 50대 초반인 필자가 막내였다.

좀처럼 뵙기 어려운 분들이어서 귀를 쫑긋 세우고 한국 스포츠의 역사를 꿰뚫고 있는 산 증인들의 회고담과 현재 한국 스포츠계 전반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그 자리에 중앙일보에서 스포츠 기자로 명성을 날렸고 프로야구 삼성 구단 단장, 빙그레(현 한화) 이글스 단장을 역임한 노진호 한국체육언론인회 명예회장이 나오셔서 많은 말씀을 해주셨다.

그 가운데 필자가 처음으로 들은 얘기가 있다. 바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프로야구 철학이다. 1987년 프로야구 기자 생활을 시작해 아직도 부끄러운 야구 글을 쓰고 있지만 이건희 회장의 야구론(論)을 접하게 된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비록 간접적이기는 했지만 순간적으로 들었는데 주제가 다른 것으로 넘어가 뒤늦게 한번 더 확인하고 되새겼다. 노진호 명예회장은 삼성 단장 시절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직접 들은 말씀이라고 하셨다.

"져도 좋으니 불필요한 번트는 대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야구인들이 섭섭하게 느끼지 않도록 대우해주세요."

이건희회장의 프로야구 철학에 대해 필자가 들은 것은 위의 짧은 두 문장이 전부이다. 그런데 여기에 모든 것이 담겨 있다.


가능하면 번트는 대지 말라는 말에서는 어떤 상대와도 정면 승부를 하는 것이 옳다는 전략이 나타난다. 이건희 회장의 프로야구 감독론이다.

야구인들에게 잘 해주라는 언급은 프로야구단의 사장, 단장 등 경영진이나 프런트가 야구인들을 아래로 보거나 차별하지 말고 항상 따뜻하게 배려해줘야 한다는 의미였다. 프로야구단 경영론이다.

↑ 이건희(왼쪽) 삼성 회장이 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해이 애덤스 호텔에서 열린 박근혜대통령 (오른쪽) 방미 수행 경제인들과의 조찬에서 박수를 치고 있다.ⓒ사진제공= 청와대↑ 이건희(왼쪽) 삼성 회장이 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해이 애덤스 호텔에서 열린 박근혜대통령 (오른쪽) 방미 수행 경제인들과의 조찬에서 박수를 치고 있다.ⓒ사진제공= 청와대


이건희 회장은 단 두 문장으로 자신의 프로야구 철학을 간결하게 표현하고 전달했다. 일본 유학을 해 번트 작전을 선호하는 일본 프로야구에 정통한 이건희 회장이 80년대 초반이었던 당시 ‘져도 좋다. 번트 대지 말라’고 말한 것은 이미 그 시기에 한국프로야구 초창기 수준을 넘어 서는 확고한 야구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이날 식사를 하면서 원로로부터 들은 프로야구를 포함한 프로배구 삼성화재 등 스포츠단 경영 관점에서 접근한 삼성그룹의 추구 방향은 ‘조직력’이었다.

굳이 프로스포츠 전체를 얘기하지 않더라도 프로야구에서 구단주가 가지는 상징적인 의미는 대단하다. 구단주의 애정이 지나쳐도 문제지만 너무 없으면 팀도 가라 앉는다. 올 시즌 프로야구에서 구단주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팀들과 구단주의 관심이 떨어진 팀이 의외의 부진을 보이고 있다.

메이저리그에서는 프로야구에서 구단주가 거둘 수 있는 승수는 ‘결정적인 1승’이라고 한다. 감독의 경우는 그 능력에 따라 팀이 한 시즌에 몇 승을 더하거나 더 당할 수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런데 한국프로야구는 아직도 감독이 팀 성적을 좌지우지 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짙다.

넥센의 경우 시즌 초반 1위까지 오르는 이변을 연출하고 있다. 넥센이 이런 성적을 낼 것이라고 예상한 전문가들은 거의 없다. 더욱이 넥센 염경엽 감독은 감독 1년차 초보이다.

넥센 히어로즈 구단주인 이장석 대표가 코치였던 염경엽을 감독으로 전격 발탁해 첫 시즌부터 좋은 모습을 보이는 것을 보면 프로야구에서도 구단주의 능력이 필요한 모양이다.

한편으로는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최고의 명장인 김응룡감독을 영입한 한화가 신생 제9구단 NC와 함께 최하위권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고려하면 프로야구에서 감독의 능력이 성적에 미치는 영향이 그리 크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감독은 선발 출장 선수 라인업을 구성하고 작전도 내고 투수교체 대타 기용 등 경기의 흐름을 주도하는 행위를 선수들과 똑 같이 유니폼을 입고 하니까 그 능력에 따라 승패가 좌우되는 경기들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구단주의 위치는 분명히 감독과는 다르고 또 달라야만 한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유명한 구단주는 2010년 세상을 떠난 조지 스타인브레너 뉴욕 양키스 구단주였다.

사실상 삼성 라이온즈의 구단주이면서 삼성 그룹 전체를 이끌고 있는 이건희 회장과는 달리 조지 스타인브레너는 ‘전업(專業) 구단주’였다.

야구단에 열성이 아니라 극성이었던 그는 팀 성적이 부진하면 감독과 불화설을 일으키고 선수가 훈련 부족으로 살이 쪄 있으면 거침없이 ‘개구리 배’라고 악담을 했다. 그런 조지 스타인브레너 구단주도 직접 작전 사인을 냈다는 얘기는 한번도 나오지 않았다.

한국프로야구에서는 과거 한 때 구단 사장이 출장 선수 결정에 관여하거나 경기 중 덕아웃으로 쪽지를 보내 경기 운영에 관해 지시하는 일도 있었다. 이제는 모두 사라진 것으로 생각했는데 최근 그런 구단이 있다는 설이 나돌았다.

이건희 회장은 구단주로서 짧은 두 문장으로 삼성 야구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전달하고 최고의 지원만 하고 있다. 이재용부회장의 야구에 대한 열정도 대단해 삼성 야구는 앞으로도 계속 강할 것으로 원로 대 선배들은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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