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녀' 아닌 '미스김', 끝까지 살아남으려면…

머니투데이 강미선 기자 2013.04.05 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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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업계 첫 여성임원' 강명신 CJ헬로비전 상무···"여자라서 못하는 거 없다"

↑강명신 CJ헬로비전 상무↑강명신 CJ헬로비전 상무


"'재벌녀'가 아닌 이상 답은 하나예요. 절실하게 버티는거죠. 내가 '잘리면' 우리 가족은 끝이다하는 심정으로."

'케이블가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유독 남성이 많은 SO(종합유선방송사업자)업계에 올 초 첫 여성 임원이 탄생했다. 강명신 CJ헬로비전 (3,370원 ▼5 -0.15%) 커뮤니티사업본부장(상무·45세)이다.

강 상무가 처음부터 이 길로 들어섰던 것은 아니다. 첫 직장은 은행. 하지만 누구나 부러워하는 안정성이 오히려 더 불안했다. "회사를 다니면 다닐수록 내가 더 잘할 수 있는 다른 게 있을 거 같았어요. 결국 공부를 좀 더 하고 업종을 바꿨죠."



2004년 CJ헬로비전으로 들어온 뒤 강 상무는 마케팅기획에서 강한 추진력으로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첫 디지털서비스상품 이름인 '헬로D'를 만든 게 그다. 지금 CJ헬로비전 사명의 시초가 된 셈이다. 하지만 그의 톡톡 튀는 아이디어가 처음부터 먹혀들었던 것은 아니다.

"당시 제품명은 기술적·전문적 표현을 넣어 그럴듯하게 만드는 게 대세였는데 제가 '헬로'를 넣겠다고 하자 반대가 컸죠. 남성임원들이 느끼기에 너무 친근하고 가벼웠던 거죠. 그 때 절감한 게 의사결정 과정에 여성들이 꼭 참여해야 한다는 거예요. 소비를 주도하는 것은 여성인데 남성들 시각만으로는 한계가 많아요."



여성 직원이라 불이익을 당할까봐 스스로 강박관념도 컸다. "책상에 가족사진 놓지 않기, 애 학교 때문에 자리 비우지 않기 같은 나름의 규칙을 세웠었죠. 꼭 그렇게까지 안해도 됐었는데 말이죠."
'재벌녀' 아닌 '미스김', 끝까지 살아남으려면…
2011년부터 강 상무는 케이블업계가 요즘 가장 공을 들이는 지역채널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IPTV(인터넷TV)와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케이블만의 강점을 살릴 수 있는 곳이 지역채널이다. 그 만큼 그의 어깨가 무겁다. 지역권역 곳곳을 찾아 출장길에 오르는 건 이제 일상이 됐다.

"케이블은 인프라사업이기 때문에 사업구조나 문화가 남성지향적이예요. 하지만 최근에는 아이디어, 콘텐츠가 더 중요해지고 소비자 접점에서의 브랜드 마케팅이 중요해지면서 어느 곳보다 여성인력이 필요한 곳이 됐습니다."

거침없는 추진력과 승부욕, 일에 대한 열정은 어머니의 교육 영향이 컸다. 가족들도 일하는 엄마, 아내, 며느리를 적극 지지해준다.


"어릴 적 집에서 바느질을 하고 있으면 어머니가 '네가 어른이 됐을 땐 바느질은 1000원만 주면 해결된다'며 여자도 자신만의 일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셨어요. 마침 결혼을 했는데 저까지 며느리 3명 모두 '일하는 여자'더라고요."

강 상무가 가장 싫어하는 말은 "여자라서 못한다"라는 말이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어요. 어려워서 못하겠다는 말보다는 '그래도 기회를 달라'는 말을 해야 합니다."

자신이 쉽지 않은 길을 걸어온 만큼 후배들에 대한 애정도 남다르다. 사내에서는 여자 후배 뿐 아니라 남자 직원들의 든든한 멘토다. "여직원들은 그 수도 많아지고 요직에서 두루 역량을 발휘하고 있어요. 하지만 오히려 남성 직원들은 갑자기 많아진 여자 후배, 여자 상사를 대하는 노하우가 부족해 힘들어 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요즘 강 상무는 70세까지의 인생계획을 고민 중이다. "강단에 서서 사회생활에서 쌓은 노하우를 전하고, 일하는 여성들을 위한 코칭 프로그램도 만들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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