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스보다 홈이 되는 시대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전문위원(부동산학박사) 2013.03.11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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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위크]청계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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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언제 살까요? 언제 팔까요?" 대도시에 사는 사람이라면 일상생활에서 무심코 이런 얘기를 건네 봤을 것이다. 묻는 사람이나 대답하는 사람이나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하지만 이 간단한 말에는 무서움이 담겨 있다. 집을 언제든지 사고 파는 거래대상의 재화로 인식한다는 의미다. 다시 말해 집을 삶의 안식처인 홈(Home)이 아닌 투자재인 하우스(House)로 본다는 것이다.

원래 집은 하우스보다는 홈이었다. 짐승의 위협이나 자연재해로부터 가족을 보호해주는 쉘터(Shelter)였다. 40년 전 산업화가 본격화하기 전만 해도 이러한 기능은 집의 가장 큰 덕목이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집이 달라졌다. 아니 집은 달라지지 않았는데, 집을 바라보는 인간이 달라졌다. 이제는 대도시의 주택을 홈으로 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집을 홈이 아닌 하우스로 보다보니 나 자신도 그 영향권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집을 재테크로 생각하는 사회적 인식이 나도 모르게 내면화된 것이다.



집을 언제 사고, 파느냐는 것은 결국 '마켓타이밍'(Market timing)에 대한 얘기다. 마켓타이밍은 주로 투자재를 매매할 때 이용되는 개념이다. 주식처럼 변동성이 강한 시장일 때 마켓타이밍을 잘 잡아내는 것은 중요한 문제다. 적기에 매입하고 매도하는 전략을 잘 모르면 큰 손실을 입기 마련이다. 그런데 요즘 주식이 아닌 집을 사고 팔 때에도 마켓타이밍이 중요한 덕목이 되는 세상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집을 언제 사고 파느냐는 질문을 하는 곳은 대도시에 한정돼 있다는 점이다. 강원도나 경상도 산골짜기 집은 마켓타이밍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홈이나 쉘터를 사는 사람은 타이밍을 묻지 않는다.



시골에서 집을 언제 사면 좋은지 묻는다면 이상한 사람으로 쳐다볼 것이다. '집이란 필요할 때, 돈 있을 때 사면 되는 것 아니냐'고 되물을 것이다. 20년, 30년 동안 살 안락한 삶의 안식처를 사는데 마켓타이밍을 잘 포착해 몇백만원 싸게 사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가치인가.

이런 생각도 해본다. '마켓타이밍을 묻는 것은 혹시 투자에 따른 실패를 남의 탓으로 돌리고 싶어 하는 심리가 아닐까'. 심리학에서는 이를 '자기불구화 전략'(Self-handicapping strategy)이라고 부른다. 인간은 대체로 자신을 과신하는 경향이 있지만 아닐 때도 있다. 바로 투자실패를 자신이 아닌 남의 탓으로 돌릴 때 자기이구화전략은 필요하다. 어떻게 보면 스스로 위안하기 위한 자구책 차원에서다.

우리에게 도대체 집이란 무엇인가. 집은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과연 그럴까. 혹시 우리에게 집이란 돈을 벌기 위한 또 다른 욕망이 아니었을까. 집이 하우스가 되는 순간 집은 행복을 안겨주지 않는다. 요즘처럼 가격이 급락하면서 하우스푸어(House poor)라는 부메랑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


집이 하우스보다 홈이 되는 시대. 이상적이지만 자본주의사회에서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하우스보다 홈에 무게를 더 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래야 하우스푸어라는 삶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하우스푸어는 있어도 홈푸어(Home poor)라는 말은 없다는 점을 잊지 말자.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70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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