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 보니 오버랩되는 몇몇 장면들은 지금 상황과 꽤 흡사하다. 엔화 가치는 새해 벽두부터 6년만의 최저치인 달러당 134엔 대까지 떨어졌다. 1년 전의 110엔 대, 1995년 4월의 79엔 수준과 비교하면 당시 엔 저(低)가 얼마나 급격했는지 알 수 있다. 그 무렵 "미스터 엔"으로 불렸던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일본 대장성 재무관이 엔 저를 막으려 동분서주했던 것을 떠올리면 격세지감을 느낀다.
#같은날 서울 주식시장에서는 국내 은행들의 외채 만기 연장이 합의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종합주가지수가 무려 6.5%나 급등해 505.98로 마감했고, 원화 가치도 달러당 71원이나 오른 1600원을 기록했다. 한국의 외채 협상은 그해 설날이었던 1월 28일 타결됐는데, 만기 연장된 240억 달러의 외채 금리는 가산금리를 합쳐 7.91~8.41%에 달했다. 주가지수와 환율, 금리 모두 지금과 비교하면 끔찍한 수준이다.
#2월 6일에는 일본 정부가 불경기(stagnant)에 접어들었다고 공식 선언했다. 경제기획청은 1975년 이후 처음으로 사용한 불경기란 단어가 경제 성장이 완전히 멈춰버렸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날 중의원에서는 30조 엔의 은행 구제계획을 승인했고, 일본 정부는 그 뒤로도 각종 경제 부양책을 쏟아냈지만 불경기 선언은 아직까지 현재 진행형이다. "흐르는 맥주는 거품이 일지 않는다."
아시아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미국 경제는 거침없었다. 2월 11일 발표된 미국의 1997년 성장률은 9년만의 최고치인 3.9%를 기록했고, 실업률은 24년만의 최저치인 4.9%, 물가상승률은 11년만의 최저치인 1.7%에 그쳤다. 뉴욕 주식시장의 다우지수는 이날 133포인트 올라 사상 최고치인 8314.55로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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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우지수의 급등세와는 달리 아시아 각국 주식시장은 하락을 면치 못했는데, 인도네시아의 물가폭동이 반정부 시위로 발전했고, 무디스는 일본 은행들의 신용등급을 연이어 강등했다. 한국에서는 2월 25일 새 대통령(김대중)이 취임했지만 국회 다수당(한나라당)이 총리 후보에 대한 인준을 거부했다. 경제위기의 안개는 여전히 짙게 깔려 있는 형국이었다. "한 번 흔들린 상상력은 하루아침에 가라앉지 않는다."
#나는 숨가쁘게 이어졌던 그 시절 금융시장 관련 기사들을 엮어 그해 말 책을 한 권 냈다. 지금은 절판된 '아시아 경제위기 1997~1998'이라는 제목의 책인데, 많은 사람들이 내용보다 각 장의 제목이 더 좋다고들 했다. 앞에서 각 문단의 말미에 인용한 문장들이 그것인데, 그 외에 이런 것도 있었다. "새는 걸어 다녀도 날개가 있음을 안다." "의혹은 얼굴에 생기는 주름과 같은 것."
하지만 아무도 그 출처는 알지 못했다. 나 역시 알려주지 않았다. 이제 와서야 밝히지만 이 문장들은 소설 '레미제라블'을 읽으며 밑줄 쳐둔 것들이다. 15년 전 그때는 정말 무정한 시기였다. 경제위기는 도저히 끝날 것 같지 않았다. 그러나 지나갔다. 그렇게 다 흘러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