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벨]지켜지지 않는 M&A 계약

더벨 박제언 기자 2013.01.04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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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bell note]

더벨|이 기사는 01월03일(08:06) 자본시장 미디어 '머니투데이 thebell'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약속의 기본은 시간엄수다. 프랑스의 루이 18세는 "시간엄수는 군주의 예절"이라고 말할 만큼 시간 약속에 대해 철저했다. 절대 권력인 왕 조차 약속은 어길 수 없는 계약이었다. 약속을 제때 지키면 상대방에게 신뢰를 쌓을 수 있다. 반대의 경우 양치기 소년 마냥 누구도 그의 말이나 행동을 믿지 않게 된다.



최근 기업 인수합병(M&A) 시장에서 약속이 이행되지 않는 일이 비일비재다. 돈을 내고 기업을 인수하기로 했다가 계약을 파기하거나 연기하는 건수가 몇 달간 수차례나 발생했다. 단위가 수십 억에서 수백 억원을 육박하는 큰 금액이라 계약 파기나 연기로 인한 후유증도 만만치 않다. 계약을 어긴 측은 물론이고 관련 당사 기업들에 대한 신뢰가 일순간에 무너지고 있다.

바이오업체인 슈넬생명과학 (979원 ▼42 -4.11%)은 지난달 초 최대주주인 김재섭 회장이 금속산화물 제조업체 케이앤텍코리아에 지분 700만 주와 경영권을 총 180억 원에 매각한다고 밝혔다. 케이앤텍코리아는 김재섭 회장에게 중도금을 12월24일까지 납부하겠다고 계약했다. 하지만 케이앤텍코리아는 납부일을 하루이틀 미뤘고, 급기야 일방적으로 오는 7일로 약속시간을 미뤘다. 계약이 위태로운 상황까지 왔다.



지난달 24일 승화명품건설 (2,910원 ▼1,075 -27.0%)은 최대주주의 주식양수도 계약이 파기됐다고 공시했다. 총 인수 계약 규모는 139억 원이었다. 인수자측은 계약금과 2차 중도금인 78억 원까지 차질없이 승화명품건설의 최대주주인 서울엠에스에 입금했다. 하지만 3차 중도금을 계약일까지 납부하지 못했다. 약속 시간을 제때 지키지 못해 계약은 무효화됐다.

두달 전 '최대주주 변경을 수반하는 주식양수도 계약'을 체결한 젠트로 (923원 ▼39 -4.05%)는 아직 M&A를 마무리하지 못했다. 중도금과 잔금 납부 일정을 계속 변경하고 있다. 당초 11월30일까지 납입하기로 한 중도금을 두 달 가량 미뤄 1월17일까지 연기했다. 시장에서는 또다시 승화명품건설처럼 M&A 계약이 파기되지 않을지 의심의 눈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계약파기는 당사자간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피해는 고스란히 선의의 투자자에게로 확산된다. M&A 계약 무산으로 인해 속절없이 주가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세 업체 모두 중도금 납부가 연기된다고 알려진 시점부터 주가는 하향 곡선을 나타냈다. 승화명품건설의 경우 납부 예정일의 변경이 반복되자 주가는 네 번의 하한가를 포함해 9일만에 90.51%가 빠졌다.


매각자가 인수자의 재무 능력을 꼼꼼하게 살폈더라면 M&A 계약 파기란 애당초 발생치 않았을 수도 있다. 계약 자체가 성립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금융당국 또한 상장사의 M&A는 철저하게 감시해야 한다. M&A 관련 계약 공시 시점부터 최종 잔금 납입 확인까지 매매 정지를 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 M&A 계약일부터 납입일까지의 시점도 일정 기간으로 단축해야한다.

미국의 철강 재벌인 앤드류 카네기는 "아무리 보잘 것 없는 것이라 하더라도 한 번 약속한 일은 상대방이 감탄할 정도로 정확하게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신용과 체면도 중요하지만 약속을 어기면 그만큼 서로의 믿음이 약해진다고 봤기 때문이다. 서로간 지킬 수 없는 약속은 애당초 하지말아야 한다. 그 파장이 약속의 당사자를 넘어 주변 이해관계자들까지 미치는 상사 거래의 약속이라면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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