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조합은 민주주의 학교..사회 진보시킬 것"

머니투데이 이경숙 기자 2013.01.05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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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디자이너열전]<17>정재돈 한국협동조합연구소 이사장

↑정재돈 협동조합연구소 이사장 ⓒ이기범 기자 leekb@↑정재돈 협동조합연구소 이사장 ⓒ이기범 기자 leekb@


대리운전기사도 뭉치고, 북 카페 회원도 뭉쳤다. 직업교육과 인력중개소가 필요한 이주노동자들도, '국민TV'를 원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나꼼수)' 제작진도 만들겠다고 뭉쳤다. 협동조합이다.

협동조합 창업 열기는 여느 인기 프랜차이즈보다 뜨겁다. 기획재정부와 사회적기업진흥원, 각 지자체가 연 협동조합 설명회엔 문을 열자마자 사람들이 몰려들어 설 자리도 없이 붐볐다. 지난해 12월 한 달 동안 광역자치단체에 접수된 일반협동조합 설립신고서는 100여 건이 넘었다.



이들에게 길을 터준 건 협동조합기본법이었다. 지난 12월 발효된 이 법은 최소 5명만 모이면 금융과 보험을 제외한 전 분야에서 누구나 협동조합을 만들 수 있게 허용했다.

이 법의 탄생엔 숨은 일꾼이 있다. 이들은 2008년부터 법 기초를 잡고 여야 주요 인사들을 설득했다. 2011년엔 시민사회 중심으로 협동조합기본법 제정을 위한 연대회의가 뜨도록 뒷바라지했다. 한국협동조합연구소의 전문가들과 정재돈 이사장(59)이다.



◇"협동조합에 청년들 관심 높아" = 서울 사당역 근처 한국협동조합연구소 사무실엔 점심시간에도 전화벨 소리가 끊이지 않고 울려댄다. 창업 문의만 하루 100여 통에 이른 날도 있다. 1995년 창립 이후 최대의 북새통이다.

정 이사장이 조용한 목소리로 "나 같은 사람이야 고참이고 갈 참이지만"하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지난해 유엔이 정한 '2012 세계협동조합의 해' 한국조직위원회 상임위원장을 지냈다.

“협동조합 포럼마다 예상하지 못할 만큼 많은 사람들이 왔어요. 특히 젊은 사람들이 많이 왔어요. 젊은 사람들이 협동조합에 관심 갖는 게 희망적이에요. 아, 협동조합이 뭔가 되겠다 싶어요.”
↑기획재정부와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이 지난해 12월 여의도에서 연 협동조합 설립희망자 교육에  참가하기 위해 교육생들이 수강을 신청하고 있다. 이 교육엔 정원 470명을 초과한 700여명의 수강생이 몰렸다.ⓒ이경숙 기자 ↑기획재정부와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이 지난해 12월 여의도에서 연 협동조합 설립희망자 교육에 참가하기 위해 교육생들이 수강을 신청하고 있다. 이 교육엔 정원 470명을 초과한 700여명의 수강생이 몰렸다.ⓒ이경숙 기자
국민농업포럼 이사장을 겸직 중인 그는 민관합동기구인 국가식생활교육위원회 위원장, 농어업선진화위원회 위원장, 가톨릭농민회 회장 출신이다. 1974년엔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옥살이를 한 후 30여 년 동안 농민 운동을 했다.


민주화운동을 하던 많은 이들이 그의 영향을 받았다. 그가 안동 가톨릭농민회에서 활동하던 시절엔 당시 학생운동으로 수배 중이던 박계동 전 국회 사무총장을 숨겨줬다. 그의 춘천고 후배인 최문순 강원도지사는 "남 앞에 서는 것 자체를 싫어했는데 고등학교 때 그 형 보면서 변화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쌀도, 소도 못 지켰을 때 찾은 대안 '생협' = 농민운동가에서 협동조합 운동가로 거듭 난 계기를 묻자, 그는 "제 첫 직장이 가톨릭농민회"라며 "가톨릭농민회 활동부터가 협동조합 활동이었다"고 말했다. 1977년 안동으로 발령 받고 처음 맡은 업무가 협동조합을 이끌 리더를 발굴하고 교육하는 일이었다.

"저녁 때 되면 밥 짓는 연기가 올라와요. 그러면 찾아가 이야기 나누면서 한 사람 한 사람 사귀었어요. 리더를 할 만한 사람들이 보이면 초청해서 지도자과정을 교육했어요. 협동조합, 농협, 농촌문제를 토론하기도 했죠. 그렇게 길러낸 활동가들로 가톨릭농민회 초기멤버가 조직됐어요."

이 때 멤버들이 1985년 외국 소 수입으로 소값이 폭락했을 때 소 몰고 광장에 나가 집회를 벌였다. 1986년 담배 시장이 열렸을 땐 경운기 끌고 미국 대사관까지 가자며 전국 동시다발 집회를 열었다. 1991년엔 전국농민회총연맹 결성의 주역부대가 됐다.

치열한 현장에서 늘 농민, 민주화 운동세력과 함께 하던 그는 1987년 요샛말로 '멘탈붕괴'를 겪었다. 대통령 직선제를 얻어낸 후 운동세력이 분열하면서 군부 출신의 노태우 민주정의당 총재가 당선되는 것을 지켜봤을 때였다.

"계속 수입반대 운동했지만 쌀도 못 지키고 소도 못 지켰지요. 제도만 바꿔선 안 된다, 사람도 동시에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생명운동, 공동체운동 소위 생활실천운동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어요. 유기농업을 하는 농민과 도시민과 같이 연대하는 운동 그게 생활협동조합 한살림 만들기 운동이었어요."

↑정재돈 협동조합연구소 이사장 ⓒ이기범 기자 leekb@↑정재돈 협동조합연구소 이사장 ⓒ이기범 기자 leekb@
◇1인1표제로 생활 속 민주주의 훈련 = 그는 "협동조합은 그 과정 자체가 민주주의 학교"라고 말했다. 협동조합은 이용자인 조합원이 공동으로 소유하고 통제하며 수익을 취한다. 또 1인1표제를 원칙으로 한다. 다수결 원칙을 따른다. 대통령 직선제 등 대의 민주주의와 의사결정과정이 비슷하다.

"협동조합을 운영하려면 다른 사람과 협동해야 해요.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의 입장에 서서 생각해봐야 해요. 자연스럽게 협동하는 훈련이 돼요. 지나가는 사람 열 명 붙잡고 물어봐서 대여섯 사람이 협동조합원이라고 말하는 시대가 오면 정치도, 사회도 진보할 것이라고 봐요."

그는 "우리 사회엔 협동조합적 인간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게 뭐냐 물으니 "함께 생각하고 찾아가야 할 것"이라는 답이 온다.

자본주의적 인간형만 키워온 우리 사회에서 '협동조합적 인간형'이 과연 탄생할 수 있을까. 어쩌면 자본주의가 도입된 것만큼 긴 세월이 필요할 지도 모른다. 35년 운동가가 "젊은 사람들이 협동조합에 관심을 갖는 게 희망"이라고 말한 건 그 때문일 것이다.

[팁]정재돈 이사장이 말하는 협동조합 창업 가이드

◇조합원 참여를 극대화하라=협동조합 운영은 주식회사보다 어렵다. 의사결정비용이 많이 들어간다. 조합원을 의사결정에 참여시키는 것도 예상보다 어렵다. 자칫하면 임직원, 조합장을 위한 조합이 되어 '대리인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조합원의 이용과 참여를 최대한 이끌어내야 대리인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업무 동질성이 높도록 조직하라=주식회사보다 운영하기 어렵다. 1인1표제가 의사결정이 일어나기까지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어간다. 가급적 업무의 동질성을 높여야 조직운영 비용이 덜 든다. 택시, 화물, 택배, IT 등 같은 업종끼리 모이는 게 좋다.

◇독과점이 확고한 분야를 피하라=자동차공업협동조합, 텔레비전생산자협동조합이 존재할 수 있을까? 이미 독과점이 확고하게 굳어진 산업 분야에선 협동조합이 생존하기 어렵다.

◇정보비대칭성, 공공성이 강한 분야에서 조직하라=의료, 공동육아 등 정보비대칭성이나 공공성이 강한 분야에선 협동조합이 유리하다. 조합원들이 잘 조직된다. 탈시장화를 시도하면서 사회적 목적이 강화되고 있는 주택, 에너지 분야도 그러한 분야다.

◇조합원 교육에 힘써라=협동조합은 교육으로 시작해 교육으로 끝난다는 말이 있다. 조합이 잘 되려면 사람이 바뀌어야 한다. 참여는 훈련을 통해 늘어난다. 교육과정뿐 아니라 회의, 학습, 자료 공유 등 다양한 형태의 훈련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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