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졔스가 마오저둥에게 패한 이유

머니투데이 베이징=홍찬선 특파원 2012.12.27 10:09
글자크기

[홍찬선 칼럼]백성은 먹을 것을, 왕은 국민을, 하늘로 여긴다

장졔스가 마오저둥에게 패한 이유


‘굶어 죽더라도 중국의 귀신이 될 것이냐, 아니면 굶어죽지 않고 매국노가 될 것이냐?’

요즘 중국에서 인구에 회자되는 말이다. 유명한 소설가 류쩐윈(劉震雲)의 소설 『1942년을 생각한다(溫故1942)』의 마지막에 나오는 글귀다. 소설에서는 “이 양자택일의 선택문제에서 매국노가 됐다”고 밝히고 있다. 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다보면 장졔스(蔣介石)의 국민당이 마오저둥(毛澤東)의 공산당에게 패해 타이완(臺灣)으로 쫓겨 간 이유를 알게 된다. 소설의 소재는 1942년, 중국의 허난(河南)성을 휩쓸었던 대기근. 그해 봄부터 이듬해 봄까지 비가 거의 내리지 않아 1000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했고 300만명 이상이 굶어죽은 것으로 전해진다. 비록 정부의 공식 통계로는 아사자(굶어죽은 사람)가 1620명밖에 안되지만…



기아와 아사(餓死)가 극한상황까지 이어지면서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광경들이 펼쳐졌다. 개가 사람의 시체를 먹는 것은 약과고 엄마는 자기가 낳은 어린 아이를 삶아 먹는 광경까지 연출됐다. 사람 목숨이 좁쌀 몇 줌과 교환되고, “나에게 과자를 주면 너와 자겠다”는 말도 수없이 등장했다. 중독돼 목숨이 위험하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독초를 먹어야 했던 사람들에게 인륜(人倫)은 사치였을 정도였다.

1942년, 허난성 대기근의 출발은 분명 자연재해였다. 하지만 국민당 정부의 잘못된 대응으로 인재(人災)로 악화됐다. 당시 중국의 최고지도자였던 장졔스는 허난성에 기근이 발생했다는 사실은 인정했지만, 300만명이나 굶어죽을 정도로 심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국민당 정부의 군대 지휘관이 예산을 더 따내 사복(私腹)을 채우기 위해 병사수를 부풀려 보고하는 것처럼, 허난성 정부 관리들이 기근상황을 부풀렸다고 여겼다.



이런 판단으로 허난성에 세금과 병역의무를 조금도 깎아주지 않았다. 먹고 죽을 것이 없어 풀뿌리와 나무껍질(草根木皮)로 연명하던 이재민들은 세금을 내고 굶어 죽든지, 아니면 세금 내지 않고 관가에 끌려가 맞아 죽든지를 선택해야 했다. 어느 것을 고르든 죽는 것은 마찬가지 상황. 죽음으로 몰린 수많은 이재민들은 살길을 찾아 이웃의 샨시(山西)성으로 피난을 떠났다. 하지만 살기 위해 떠난 피난길도 곳곳에 죽음이 도사려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표 살 돈이 없어 기차에 매달려가다 떨어져서 죽고, 굶어 죽어 개의 먹이가 되고…

소설은 1942년 허난성의 대기근을 해결한 해준 것은 역설적이게도 일본군 침략이었다고 지적한다. 군량미를 실어다 허기진 주민들을 구제해 줘 그들의 인심을 사로잡기 위한 전략에 따른 것. 극도의 굶주림에 시달리던 수많은 중국인들은 매국노가 됐다. 6만명도 안되는 일본군이 30만명이 넘는 중국군을 삽시간에 밀어붙인 것은 매국노들의 도움이 컸다.

허기진 국민들을 보듬어주지 못하고 오히려 매국노가 되도록 한 장졔스. 그는 결국 마오저둥의 공산당에 의해 쫓겨났다. “이재민이 굶어 죽어도 땅은 여전히 중국 것이지만 군인이 죽으면 중국은 망한다”며 이재민의 고혈을 짜냈던 장졔스. 난공불락의 금성탕지(金城湯池)가 무너지는 것은 내부의 반란 때문이고, “국민은 물이고 왕은 배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배를 전복시키기도 한다”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잊은 탓이다.


백성은 먹을 것을 가장 중시하고 왕은 국민을 하늘로 여겨야 한다(民以食爲天, 王以民爲天)는 것은 동서고금의 최고 정치 명제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가 패한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 이 명제를 해결하지 못한 후폭풍 때문이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앞에도 이 명제는 아주 무겁게 놓여 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