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고 싶으면 ‘위대한 바보’가 되라

머니투데이 김영권 작은경제연구소 소장 2012.12.17 12:01
글자크기

[웰빙에세이] 바보 이야기 : ‘바보존’에 거인이 숨어 있다

포레스트 검프, 황만근, 이반.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바보다. 덜 떨어졌다. 그런데 그냥 바보가 아니다. 위대한 바보다.

포레스트 검프는 톰 행크스가 주연한 동명 영화의 주인공이다. <포레스트 검프>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다. 황만근은 성석제의 소설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의 주인공이다. 근자에 읽은 소설 중 단연 압권이다.



이반은 톨스토이의 소설 <바보 이반>의 주인공이다. 나는 이들이 좋다. 이들을 존경한다. 이들을 본받아야겠다. 이들처럼 살아야겠다. 바보처럼 살아야겠다.

◆검프 · 황만근 · 이반, 세 바보의 공동점



이들은 어떻게 살았나. 에센스를 뽑아보자.

첫째, 한 번에 한 가지만 한다. 한 번에 두 가지를 못한다. 용량이 달리니 어쩔 수 없다. 검프는 달리기만 한다. 쏜살같이 달리기만 한다. 누구도 붙잡지 못한다. 덕분에 미식축구 선수가 된다. 미식축구만 하다 보니 대학 졸업장도 받는다. 군대에서는 탁구만 친다. 탁구만 쳐 탁구 도사가 된다. 제대 하고는 새우만 잡는다. 되든 안 되든 그물을 던진다. 그러다 결국 대박을 친다. 황만근은 평생 농사만 짓는다. 상농사꾼이 된다. 이반은 밭만 간다. 풀만 벤다. 나무만 벤다.

둘째, 끝까지 한다. 첫 번째 것의 연장이다. 어떤 일이든 끝장을 본다. 한 눈 팔지 않는다. 검프는 3년2개월14일을 달린다. 길이 끝날 때까지, 마을이 끝날 때까지 미 대륙을 오가며 달린다. 달리고 싶은 마음이 완전히 사라질 때가지 달린다. 어릴 적 단짝 제니를 끝까지 사랑한다. 오직 그녀만 한 마음으로 사랑한다.


황만근은 젊은 엄가가 환갑이 될 때까지 받들어 모신다. 술을 마시면 고꾸라질 때까지 마신다. 수십 년 된 폐물 경운기를 고치고 또 고쳐서 탄다. 황천길도 그 경운기와 함께 한다. 추운 밤 논두렁으로 굴러 떨어진 경운기의 곁을 지키다 저세상으로 간다.

이반은 도깨비가 질려서 두 손, 두 발을 다 들 때까지 밭을 간다. 배탈이 심하게 나도, 땅바닥이 돌처럼 굳어도 갈아야 할 밭은 끝까지 간다. 밤이고 낮이고, 일주일이고 열흘이고 상관없다.

셋째, '노(No)'가 없다. 무조건 '예스(Yes)'다. 맞서지 않는다. 맞섬이 없으니 다툼이 없다. 싸움이 안 된다. 검프는 "옛써(Yes Sir)!"만 외친다. 하라면 한다. 한다면 한다. 황만근은 온갖 궂은 일을 도맡는다. 마을에서 소 돼지를 잡는 일도, 시신을 염하는 일도, 똥구덩이를 파는 일도, 똥을 푸는 일도, 도랑을 치는 일도 다 그에게 떨어진다. 그는 군말 없이 동네 머슴이 된다. 누구의 부탁도 거절하지 않고,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반은 첫째형이 돈을 달래도 주고, 둘째형이 달래도 준다. 두 형이 어떤 푸대접을 해도 언제나 오케이다. 불만 없이 만사 오케이다.

넷째, 원칙과 약속을 지킨다. 반드시 지킨다. 핑계는 없다. 검프는 같이 일하기로 한 친구가 먼저 저세상으로 가도 동업을 한다. 이익을 나눈다. 원칙은 원칙이고, 약속은 약속이다. 황만근은 홀로 경운기를 몰고 군청으로 간다. 백리 길을 털털거리며 간다. 다들 이런저런 이유로 빠지고,?요령을 피우지만 그는 정해진 방침대로 한다. 농사도 제 손으로, 빚 안지고, 농약 안치고, 배운 대로 짓는다. 이반은 평생 '일한 만큼 먹는다'는 원칙을 지킨다. 속이고 않고, 빼앗지 않는다.

다섯째, 욕심이 없다. 검프는 백만장자가 된다. 그러나 자기 몫은 딱 필요한 만큼 만이다. 그 이상에는 관심이 없다. 나누고 돌려준다. 황만근은 가진 게 없어도 느긋하다. 제 손으로 일하고 제 손으로 농사지어 제 입에 밥 들어가면 그만이다. 세 가지 소원이 어머니 오래 살고, 자기 장가가고, 아들 얻는 것이다. 이반은 짚단으로 병사를 만들고, 가랑잎으로 황금을 만드는 비법을 알았지만 한 번도 자기를 위해 써먹지 않는다. 만병을 고칠 수 있는 약초도 병든 개와 거지에게 준다. 왕이 되어도 도무지 부귀영화를 모른다. 삼베옷에 잠방이를 걸치고 짚신 신고 밭으로 나간다.

여섯째, 삶에 순응한다. 운명을 받아들인다. 저항하지 않는다. 검프는 전후 냉전시대, 미국의 역사가 요동치는 것을 담담하게 바라본다. 그중 자기에게 밀려온 격랑에 순순히 올라탄다. 군대에 가고 베트남에 간다. 제니가 떠나면 바라보고 그녀가 돌아오면 맞는다. 검프의 중대장은 월남전에서 두 다리를 잃는다. 그는 운명을 저주한다. 명예롭게 전장에서 죽지 못하게 자기를 구한 검프를 원망한다. 그러나 그도 결국 검프에게 배운다. 운명의 신과 화해하고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

황만근은 동네와 집에서 반푼, 싸래기로 놀림감이 되어도 언제나 벙글벙글 웃는다. 죽으려고 물에 빠진 처녀를 구해 운명처럼 처자식을 얻는다. 이반은 망해서 돌아온 형들이 안방을 차지하고 자신을 문간으로 내쳐도 형들을 반긴다. 정성으로 보살핀다. 병에 걸린 공주를 고치고 운명처럼 왕이 된다. 바보들만 사는 '바보 왕국'을 이룬다.

◆‘큰 바보’가 진정한 삶의 승자

일곱째, 지혜롭다. 더 행복하다. 더 잘 산다. '대지약우'(大智若愚)! 큰 지혜는 바보 같다고 했던가. 검프에게 삶이란 무엇일까? 덜 떨어진 검프는 답한다.

"엄마가 항상 그러시는데 인생은 초콜릿 상자 같은 거라셨어요. 어떤 초콜릿을 먹게 될지 모르니까요."
"저마다 운명이 있는지 아니면 그냥 바람 따라 떠도는 건지 모르겠어. 내 생각에는 둘 다 동시에 일어나는 것 같아."

황만근에게 삶이란 무엇일까? 곁에서 그의 삶을 바라본 한 이웃은 답한다.

"어느 누구도 알아주지 아니하고 감탄하지 않는 삶이었지만 선생은 깊고 그윽한 경지를 이루었다. 보라. 남의 비웃음을 받으며 살면서도 비루하지 아니하고 홀로 할 바를 이루어 초지를 일관하니 이 어찌 하늘이 낸 사람이라 아니할 수 있겠는가. 이 어찌 하늘이 내고 땅이 일으켜 세운 사람이 아니랴."

이반의 '바보 왕국'은 어떤 나라일까? 왕은 무심해서 답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나라는 평화롭다. 다툼이 없다. 넉넉하다. 부자와 가난한 자가 없다. 돈이 필요 없다. 누구든 환영한다. 군대가 없다. 대신 한 가지 중요한 관습이 있다. '손에 굳은살이 박인 자는 식탁에 앉고, 굳은살이 박이지 않는 자는 먹다 남은 찌꺼기를 먹어야 한다.'

포레스트 검프, 황만근, 이반. 셋은 단순하다. 복잡하지 않다. 삶을 비꼬지 않는다. 비틀지 않는다. 돈이나 명예에 휘둘리지 않는다. 자질구레한 주변부 군더더기에 매달리지 않는다. 곧 바로 핵심으로 간다. 정도를 지킨다. 그래서 그들은 진정한 승리자가 된다. 삶의 승리자가 된다. 그들의 삶에는 감동이 있다. 향기가 있다. 여운이 있다.

◆잔머리만 굴리는 영리한 바보

나는 어떤가? 평생 똑똑해지려고 애썼다. 머릿속에 이것저것 우겨 넣느라 바빴다. 꽉 찬 머리를 열심히 굴렸다. 손해 안보고, 뒤통수 안 맞으려고 안달복달했다. 그런데 어디선가 빗나갔다. 핵심을 놓치고 정도에서 벗어났다. 자질구레한 주변부 군더더기에 파묻혔다. 나는 너무 영리하다. 너무 영악하다. 헛똑똑이다. 큰 머리 대신 잔머리만 굴리는 영리한 바보다.

차동엽 신부는 누구에게나 '바보존'이 있다고 한다. 이 바보존에 놀라운 거인이 숨어 있다고 한다. 지능지수(IQ) 대신 감성지수(EQ)와 의지지수(PQ)가 뛰어난 거인! 차 신부는 그 거인을 찾아내 깨우라고 당부한다.

"누구에게나 있는 '바보존'은 사막에서 오아시스와 같은 존재이며, 삶의 전쟁터에서 성채와 같은 실재이며, 궁극적으로 우리가 인생의 대장정 끝에 도달해야 할 이상향이다. 까닭 없이 함박웃음을 지을 줄 아는 바보의 천성이 이미 지복의 경지에 있기 때문이다."

차 신부는 인간이라는 우주 안에서 '바보존'을 발견하는 것은 아메리카 신대륙 발견에 버금하는 대발견일 것이라 확신한다. 그 '바보존'에 인류가 그토록 갈애해 온 행복과 성취와 평화와 영원이 매장되어 있기 때문이란다. 그 '바보존'이 바로 내 안의 '바보 왕국'일 것이다. 내 안의 오아시스, 내 안의 천국일 것이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