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 몇 살 때였는지 기억나진 않는다. 버스를 타면 손잡이가 손에 닿지 않을 정도로 키가 작았던 기억만이 있을 뿐이다. 그날 난 전학을 앞둔 한 친구와 오후 2시, 학교 앞 버스정류장에서 만나기로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곳에 나갔다. 한 시간가량 지났을까, 친구는 영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조금만 더 기다려볼까?'
하지만 내가 그토록 낭만적이라고 믿는 그 시절은 나의 부모님에겐 한참이나 유치해 보였을 일이다. 디지털기기를 손에서 떼지 못하는 요즘 아이들이 낭만과는 담쌓고 지내는 것처럼 내 눈에 비치듯 말이다.
하지만 이내 벨 에포크 시대를 꿈꾸는 아드리아나와 르네상스 시대를 꿈꾸는 드가, 고갱, 로트렉을 만나며 결국 진정한 황금시대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발견하고 현실로 돌아오게 된다. 그는 과거에 머물기로 결정한 아드리아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여기 머물고 당신의 현재가 된다면 얼마 있다 다른 시대를 꿈꾸게 될 거에요." 영화를 만든 우디 앨런이 80세가 넘은 지금 우리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결국 낭만은 과거가 아닌 현재 우리들 속에 있는 것이 아닐까.
존재하는 모든 것은 과거가 되고 추억이 된다. 삭막하다고 느껴지는 지금의 디지털세상도 언젠간 낭만이 가득한 황금시대로 추억될 날이 올 것이다. 그때 가서 지금을 그리워하기보단 지금 안에서 낭만을 만끽하는 편이 더 현명한 일일 테다. 그럼에도, 누군가로부터 우표가 붙은, 손으로 쓴 편지가 받고 싶은 것은 왜일까. 가을이 오려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