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는 '전자'를 버려야 한다

머니투데이 실리콘밸리=유병률 특파원 [email protected] 2012.08.2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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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률의 체인지더월드] "미디어 DNA 이식 서둘러야"

삼성전자는 '전자'를 버려야 한다


미국내 유명한 많은 회사들이 미디어산업으로 곧장 달려가고 있다. 애플처럼 그 출발이 하드웨어이든, 구글처럼 소프트웨어이든, 모두가 콘텐트의 바다를 지배하고자 한다. 콘텐트가 유통되는 플랫폼을 장악함으로써, 혹은 직접 콘텐트를 생산하면서 말이다.

그래서 이제는 하이브리드 경쟁이다. 신문사 방송사 광고회사 음원회사 출판사가 테크놀로지 회사와 경쟁해야 하는 세상이다. 카카오톡이 신문사 방송사 출판사와 경쟁하게 될 날도 머지않았다. 이게 대세이다. 순식간이다. 결국 미디어산업으로 다 수렴되는 것 같다.



구글은 최근 여행 가이드북을 발간하고, 여행지역 정보를 제공하는 ‘프로머스(Frommer’s)’를 2500만 달러(약 282억원)에 인수했다. 이를 두고 뉴욕타임스는 “구글이 미디어회사로 전환하기 위한 가장 최근의 증거”라고 보도했다. 링크만 찾아 보여주는 게 아니라, 직접 레스토랑과 상점에 대한 리뷰를 제공하고, 출판까지 하겠다는 것.

그렇게 말한 뉴욕타임스는 이튿날 이례적으로 방송사(BBC) 사장 출신을 새 CEO로 영입했는데, 그 이유가 “우리 미래는 동영상과 소셜, 그리고 모바일에 있다”는 것이었다. 대체 누가 테크놀로지 회사이고, 누가 미디어 회사인가?



뒤집어 이야기하면 이제 누구든 미디어 회사를 지향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글로벌 테크놀로지-미디어 회사의 하청업체가 될지도 모른다. 특히 아직도 회사명에 ‘전자’라는 글자를 달고 있는 회사들은 더더욱 그렇다.

최근 실리콘밸리에서는 삼성전자가 달라졌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콘텐트와 소프트웨어의 미디어로 항해각도를 정확히 잡고 있다는 것.

계기는 지난 5월 실리콘밸리의 모바일용 음악·동영상 서비스업체 엠스팟(mSpot)을 인수하면서이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작은 기업 인수가 흔한 일이지만, 보수적인 삼성전자한테는 처음 있는 일. 스타트업 인수를 통해 소프트와 미디어 강화에 나섰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임성균 기자ⓒ임성균 기자
이달 6일에는 실리콘밸리 한 호텔에서 한인 IT인들 300여명을 초청해 ‘삼성 스마트 디바이스의 콘텐트 생태계를 강화하겠다’는 내용의 설명회도 열었다. 형식은 설명회였지만, 실은 한인 소프트웨어인력을 스카우트하기 위한 자리. 작년 말 신종균 사장 직할 사업부로 전환된 미디어솔루션센터(MSC)가 주도한 행사였다.

한국에서 날아온 임원들은 행사 이튿날 실제 30여명을 면접했는데, “(MSC)는 삼성에서도 가장 삼성 같지 않은 조직”이라고까지 강조했다고 한다.

삼성전자는 또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동향을 파악해 인수하거나 특허를 라이센싱할 인력도 보강하고 있다. 산호세에 있는 건물을 리모델링해서 미국 내 인력을 실리콘밸리로 집중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삼성전자의 이런 (미디어산업 지향의) 변화에 대해 실리콘밸리는 긍정적이다. 설명회 한 참석자는 “삼성 임원들이 ‘벤치마킹’ ‘따라잡기’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해서 안타깝기는 했지만, 늦었지만 옳은 방향”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과연 변화할 수 있을까’라는 것. 왜냐하면 전자제품을 만드는 것과 미디어산업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전자제품을 만들 때까지는 관료적인 엔지니어조직이 유효했을지 모르지만, 미디어영역으로 넘어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콘텐트는 눈에 보이는 완성된 제품과는 다르다. 끊임없이 유저들과 소통해서 진화하는 과정이다. 그래서 미디어산업은 문화산업이다. 이질적인 것을 용인할 수 있는 유연한 문화일수록 더 좋은 콘텐트와 미디어가 나오게 된다.

그래서 구글의 한 인사는 ‘삼성이 변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구글은 어떻게 보면 말도 안 되는 조직이죠. 똑같이 OS(운영체제)인 크롬과 안드로이드가 각자 자기 목표를 가지고 경쟁합니다. 경영진도 내버려둡니다. 내부의 ‘카니발리제이션(Cannibalization·기능이나 디자인이 탁월한 후속제품이 나오면서 먼저 내놓은 제품이 잠식되는 현상)’을 두려워하지 않죠.
검색팀과 안드로이드팀의 관계도 그렇습니다. 검색팀은 IOS전용 검색 앱을 내놓습니다. 안드로이드폰이 됐든, 아이폰이 됐든 구글 검색을 많이 쓰게 하는 게 목적이거든요. 삼성이었으면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힘들지 않을까요?”

과연 삼성전자는 삼성 같지 않은 조직에 힘을 실어줄 수 있을 것인가? 과연 삼성전자는 삼성 같지 않은 문화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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