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벨 이 기사는 08월16일(10:55) 자본시장 미디어 '머니투데이 thebell'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1년 새 실업률이 현저히 높아진 것도 아니고 실질 GDP가 두 분기 연속해서 하락한 것도 아니니, 아직 불황 국면에 접어든 것은 아니라고 해야 하는 걸까. 심리적으로 이미 불황에 접어들었다면, 불황은 자기 증식의 속성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기업은 고용과 투자를 축소하고 현금을 쟁여둔다. 소비자는 지갑을 닫고 저축을 늘린다. 지출이 억제돼 총수요가 줄고, 경기는 후퇴한다. 결국 불황 심리는 불황을 현실화 시킨다. 아직 경제 지표에 여유가 있다고 강변해봐도 소용없다. 불황에 대한 우려가 시장을 지배하기 시작하는 순간, 불황은 예정된 손님처럼 문을 두드리게 돼 있다.
말하자면 호황기는 포식의 시기다. 넘치는 상품들을 먹이로서 소비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여유가 없어진다. 한동안 능력을 넘어선 과식을 했고, 앞으로 성장할 양보다 더 많은 양을 먹어치워 버렸기 때문이다. 그렇게 불황이 시작된다.
여기에 동양적, 연역적 사유체계를 대입할 수도 있겠다. 결국 불황은 인간의 탐욕이 부르는 일종의 자정 메커니즘이라는 해석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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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이 거품을 만들면, 그 거품이 파멸적으로 붕괴하지 않도록 보호하는 장치. 굳어버린 탐욕의 거품을 둔기로 부숴버리기 보다, 말랑 말랑할 때 바늘로 바람을 빼는 과정.
탐욕의 정화 장치가 불황이라면, 결국 불황 속에 감춰진 키워드는 '절제' 또는 '금욕'일 수도 있겠다.
그런 의미에서 불황은 새로운 경제적 안정상태를 만드는 하나의 과정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럼에도 경제학은 끊임없이 뭔가를 주장한다. 과식과 사치의 시기가 지나고 불황기에 접어들기 시작하면 케인지언들이 목소리를 높인다. 지금이 정말로 불황의 시작인지, 아니면 짧은 경기순환 과정상의 단기 후퇴인지 명확치 않기 때문이다. 뭔가 효과적인 행동을 취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는다. 정부는 재정적자를 감수하려 한다. 아직은 버틸만 하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재정이 버티기 어렵다는 위기감을 느끼기 시작하면 결국 리스트럭쳐링, 다운사이징이 시작된다. 고통은 이 때부터 본격화된다.
불황이 정점을 찍고 모두가 지쳐갈 무렵이면 다시 변화가 생긴다. 자산을 유지하기 위한 부자들의 저항도 커진다. 이 때 보이지 않는 손의 추종자들이 등판해 비효율적인 것들을 제거하자고 외친다. 희생은 감수해야 하며, 경쟁력 없는 요소들을 몰아내자고 주장한다.
최근 100년의 세계 경제를 들여다 보면, 아니 한국 경제의 최근 30년만 봐도 거의 유사한 과정이 되풀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최근의 불황이 개인과 집단, 지역사회와 국가를 넘는 극단의 탐욕이 빚어내, 전지구적 양상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 걱정이긴 하다.
그래도 시간을 관통하는 이치에 기대는 게 편하지 않을까. 달이 차면 기울기 마련이다. 조신하고 또 조신하다 보면 좋은 세월을 만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