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벨]SPP그룹, 무너진 배경 알고 보니…

더벨 김장환 기자 2012.07.17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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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pany Watch]오너 2세, 4개사 줄줄이 설립..동시에 투자, 불황 오자 '와르르'

더벨|이 기사는 07월16일(10:41) 자본시장 미디어 '머니투데이 thebell'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한때 9개 계열·관계사를 거느렸던 SPP조선은 매출규모가 3조 원에 달하던 소위 '잘 나가던' 중견기업이었다. 하지만 2009년부터 사세가 급격히 기울었고, 금융권과 재무구조개선 약정까지 맺었다. 최근에는 이마저도 실패하면서 결국 채권단으로부터 '감자 후 출자전환'이란 극약처방까지 받게 됐다.



수주잔량 세계 10위, 국내 6위권 조선사였던 SPP조선이 이토록 급격하게 무너진 이유는 뭘까.

기본적으로는 2009년부터 이어진 선가 하락, 유로존 위기 등으로 파생된 조선업황 부진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빅3'로 불리는 대우조선해양,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마저도 과거의 저가수주, 신규물량 저조로 수익성 난조에 허덕이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SPP조선의 재무구조가 급격히 무너진 이면에는 조금 다른 이유가 엿보인다. 업계에서는 SPP그룹 이낙영 회장의 무리한 계열·관계사 확장이 이번 사태의 또다른 원인이라고 입을 모은다.



2006년 호황 이후 무리한 사업 확장 '발목'

2002년 설립된 SPP조선은 지난 10년 간 대우조선해양,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등 일명 '빅3'로 수주 쏠림 현상 속에서도 견실한 성장세를 보였다. 지난해 전 세계 석유화학운반선(MR탱커) 시장에서 50% 이상이 SPP조선 물량이었을 정도다.

하지만 올 들어 SPP조선의 재정난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지난 2010년 금융권과 재무구조개선 약정을 맺은 이후 계열사간 흡수·통합, 자산 매각 등 고강도 구조조정을 단행해 회생을 모색했지만 빛을 보지 못했다. SPP조선을 비롯해 6개 그룹 계열사 및 관계사 중 단 1곳을 제외하고 모두 자본잠식에 빠지기까지 했다.


이에 따라 채권단은 최근 SPP조선에 감자 후 출자전환 방식의 자금지원을 결정했다. 감자는 현 경영진에 재무구조개선 이행 실패 책임을 묻는 성격, 출자전환은 말 그대로 경영권을 가져오면서 자금을 지원하는 방편이다. 한때 13개에 달하는 계열사를 거느린 중견기업으로 SPP그룹을 키웠던 이낙영 회장에게 경영 실패의 책임을 묻겠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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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업계에서는 2009년 이후 SPP그룹이 이처럼 급속도로 무너진 배경으로 '무리한 계열사 확장'을 꼽고 있다. SPP그룹은 2006~2008년 불과 3년 사이에 5개에 달하는 계열·관계사들을 설립했다. SPP강관(자원), SPP건설, SPP로직스, SPP율촌에너지, SPP중공업 등이다.

당시 공격적으로 사업체 확장에 나선 배경은, 2006년 조선업 호황기를 맞아 SPP그룹 역시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던 시점이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실제 SPP조선은 2005년 300억 원에 불과했던 매출액이 이듬해 2500억 원대로 올랐다. 불과 1년 사이 8배 이상 매출 신장률이다. 같은 기간 15억 원에 불과했던 영업이익은 183억 원까지 뛰었고, 당기순이익도 11억 원에서 102억 원까지 올랐다.

2005년과 2007년 설립된 SPP해양조선, SPP해운의 매출 규모까지 합치면 2008년 기준 그룹사 연결 매출액은 2조 원에 육박한다. 같은 해 영업이익은 1419억 원, 당기순이익은 218억 원이다. 2005년 매출 300억 원대 회사가 불과 3년 사이 연 매출 2조원 대로 순식간에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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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그룹 성장세에 따라 계열사를 연달아 설립하면서 수천억 원대 자금 집행이 동시에 이뤄지면서 시작됐다.

투자비가 가장 많이 들어갔던 SPP율촌에너지는 2008년 설립 첫해에 363억 원, 이듬해에 892억 원을 신규 투자했다. 같은 시기 SPP중공업을 세우면서 총 800억 원, SPP로직스에도 200억 원 가량을 집행했다. 동시에 SPP강관, SPP건설까지 합쳐 2008~2009년 사이 이들 5개 신규 계열사에만 총 4000억 원대 자금이 집행됐다.

투자금 대부분은 외부차입에 의존했다. 이런 상황에서 2009년 초부터 시작된 글로벌 경제위기, 조선업 불황의 찬바람이 불어 닥쳤다. SPP그룹이 2009년 상반기 재무구조개선 약정으로 갔던 이유이자, 이후에도 그룹사의 유동성 위기를 넘지 못했던 결정적 배경이다.

3년 사이 5개 계열·관계사 설립..4개가 아들 회사

그런데 SPP그룹이 2006년 이후 공격적으로 설립했던 회사들은 SPP율촌에너지 단 한곳만을 제외하고 모두 이낙영 회장의 아들들이 최대주주다. 대부분이 계열사 관계에서 아예 동떨어져 설립된 특수관계자 회사로 일감만 고스란히 받아갔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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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3월 설립됐던 SPP로직스는 매년 내놓는 감사보고서에서 최대주주를 공시하지 않고 있지만, 확인 결과 이 회장이 둘째 아들 이동민 씨가 최대주주(100%)로 올라 있는 곳이다. 단순 주유소(선박 기름 공급) 사업을 영위하는 회사로, 설립 이후 계속해서 적자를 이어왔다. 최근 부도를 맞아 법원에 파산신청을 했던 SPP건설도 차남 이 씨가 최대주주(61.54%)로 앉아 있던 곳이다.

2009년 10월 SPP머신텍에서 석유플랜트, 선박블록생산 사업부를 일부 가져가 설립된 SPP중공업은 SPP로직스의 지배구조(지분율 83.34%)에 들어가 있다. SPP조선에 선박블록 납품을 주업으로 했다. 이미 사천과 통영 조선소에 위치한 하청업체들에서 대부분 소화해왔던 분야라는 점을 보면, 차남 이 씨 회사의 수익성 강화를 위해 설립된 것으로 분석된다.

올해 초 세아제강에 매각된 SPP강관(현 SPP자원)은 장남인 이동환 씨 회사였다. 장남 이 씨 지분이 92.86%, 차남 이 씨 지분이 7.14%로 구성돼 있었다. 이곳 역시 2008년 설립한 그해 4억 원대 영업적자로 시작해, 지난해 말까지 총 32억 원대 누적 적자를 봤다. 지난해 말 기준 250억 원대 자본잠식을 봤다.

이를 보면 지난 2006년 이후 3년 사이 SPP그룹이 계열·관계사를 공격적으로 설립한 배경은 단순히 매출 및 수익성 신장에 따른 사업 확장만을 노린 행보로 보기가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당시 이 회장이 아들들에 물려줄 회사를 설립하고 경영권 승계를 위한 지배구도를 그리는 과정에서 그룹 전체의 유동성 위기를 불렀다는 해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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