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졸男' 취업못해 일본 갔다가… 月 1억 대박

머니투데이 유영호 기자 2012.07.1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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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이여!도전하라]<4> 권정호 하누래비 상사 대표

'고졸男' 취업못해 일본 갔다가… 月 1억 대박


일본으로 도망치듯 건너간 것은 고졸이라는 '딱지' 때문이었다. 1997년 전북 정읍의 인상고를 졸업한 후 대학 진학이 아닌 취업을 선택했다. 하지만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대기업부터 지역 중소기업까지 수백 곳에 입사원서를 냈지만 결과는 모두 낙방. 어려운 가정형편에 허덕이던 19세 청년은 군대로 발길을 돌렸다. 제대 후에는 허드렛일도 마다치 않고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그렇게 6년이 흘렀다.

방황하던 권종호 하누래비 상사 대표(34·사진)에게 기회가 찾아온 것은 2004년. 친구가 일본 도쿄에 있는 누나의 가게를 맡아달라고 제안했다. 친구는 "가게 아르바이트생이 돈을 가지고 도망가는 일이 잦아 믿고 가게를 맡길 사람이 필요하다"면서 "일본에서는 고졸도 취업해 임원까지 성장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가게를 봐주면서 취업을 준비해보라"고 설득했다.



한국에서 고졸에게 취업의 문턱은 너무 높았다. 좌절하던 권대표는 연고도 없는 일본으로 훌쩍 떠났다. 마음속에는 '일본을 기회의 땅으로 삼고 반드시 성공하겠다'는 굳은 결의를 담았다.

일본에 도착한 권 대표는 적은 월급을 쪼개 어학원을 등록하고 일본어 공부에 매진했다. 밤을 새다 코피를 흘리는 날도 부지기수였다. 그렇게 준비하길 1년, 마침내 그는 세계 5위의 PC 제조사인 대만 아수스(ASUS)의 현지법인에 입사하는데 성공했다.



"바로 붙은 건 아니였어요. 일본에서도 면접은 백번도 넘게 떨어졌어요. 그래도 일본 면접관들은 '왜 대학에 안갔나'는 질문은 하지 않았어요. 미숙한 일본어와 실무적 역량만을 지적했었죠. 면접을 여러 차례 경험하고 부족한 부분을 채우자 문제가 되는 부분은 아무것도 없었죠."

자신의 힘만으로 세계적 기업에 취업한 권 대표는 '하늘을 날 것 같다'는 기분이 어떤 것인지 느낄 정도로 기뻤다. 모든 열정을 회사에 바치겠다는 굵은 결심도 했다. 기쁨은 길지 않았다. '학력'이라는 장벽을 뚫어낸 그에게 '민족차별'이라는 장벽이 새롭게 다가왔다.

권 대표는 아수스 일본법인의 유일한 한국인이었다. 한국인 특유의 끈기와 열정, 성실함으로 회사 일에 최선을 다했지만 구성원의 95%를 차지했던 중국·대만출신 상사들은 진심을 의심했다. 시스템 개선에 대해 개선점을 제시하면 '흠집내기'로 몰아부쳤다. 새 프로젝트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면 '스파이' 취급했다. 멸시 속에서 5년을 버텼다. 결국 2009년 말 회사에서 물러났다.


"시작부터 사방이 꽉 막혀있었어요. 업무도 단순한 일만 주어졌습니다. 사무실 구성원들은 눈길 한 번 제대로 주지 않더군요. 차라리 뽑지를 말지 왜 뽑아 놓고 이러는지 이해도 가지 않았죠.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환경 속에서 5년이나 버틴 게 신기하기도 합니다."

쓰라린 실패였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업이 내 쓰임새를 몰라주면 스스로 기업을 만들어 제대도 써먹겠다는 오기가 발동했다. 혼자 시작하려니 막막했지만 도서관을 내 집처럼 드나들며 공부, 또 공부에 매진했다.

'고졸男' 취업못해 일본 갔다가… 月 1억 대박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했던가. 뜻을 세운 권 대표에게 거짓말처럼 다시 기회가 찾아왔다. 전 세계 재외동포경제인들의 모임인 세계한인무역협회(월드옥타) 도쿄지회의 창업 인큐베이터 사업 공고가 전해졌다.

일본에 '이동막걸리' 열풍을 불러일으킨 김효섭 이동재팬 사장이 수시로 1대1 사업 상담을 했다. 사무실 임대료까지 2년간 지원해주는 사업은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창업계획서 심사까지 남은 시간은 6개월. 권 대표는 말 그대로 '올인'했다. 15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창업 인큐베이터 대상자로 선정됐다.

"사람이 무엇인가를 그렇게 열심이 할 수 있었다는 것을 그 때 처음 깨달았습니다. 밤새는 일이야 취업 준비하면서도 숱하게 했던 것인데 이번에는 전혀 힘들지가 않더라고요. '애초에 나에게 주어진 길이 이것인가'라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어요. 남들은 '행운'이라고 축하했지만 철저하게 준비한 이상 자신이 있었습니다."

권 대표가 세운 회사의 이름은 하누래비 상사. '하늘의 빛'이라는 뜻으로 창업 인큐베이터 사업 공고를 발견했을 때 심정을 담았다고 했다. 구두, 지갑 등 한국 중소기업이 만든 잡화 등을 일본으로 수입해 판매한다.

사업은 벌써 대박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 3월 창업 이래 4개월 만에 4억 원이 넘는 매출을 올렸다. 월평균 매출이 1억원에 이르는 셈. 성공에 웃음 지을 만도 하건만 그는 '이제 시작'이라고 손사래를 쳤다. 목표는 하루내비 상사를 일본 최대의 종합무역회사로 키워내는 것.

"제 목표는 일본 미츠비시그룹입니다. 미츠비시그룹이 모든 분야의 제품을 만들어 파는 것처럼 저는 한국 중소기업이 만든 모든 분야의 제품을 일본에 판매하고 싶어요. 일본에서 창업했지만 한국을 대표해 일본 기업들과 경쟁하고 있는 셈인가요."

권 대표는 고졸이라는 학력 때문에 취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후배들을 위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취업이 선택 가능한 유일한 답안지는 아닙니다. 영역을 한국으로 제한한다면 더 말이 안되죠. 시야를 조금만 넓게 보세요. 무궁무진한 기회와 세계라는 무대가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다만 준비한 자만이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구체적이고 간절한 목표를 세워요. 목표를 이룰 수 있도록 강한 의지로 노력하세요. 그러면 '성공'이라는 단어가 눈앞으로 다가올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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