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니 풀리테(Mani pulite: 깨끗한 손)’의 추억

머니투데이 김재동 기자 2012.06.14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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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동의 틱, 택, 톡]

지난 12일(한국시간) 미국 워싱턴 D.C의 한 허름한 건물에서 이색적인 행사가 열렸다고 한다.

그 건물이름은 워터게이트 오피스빌딩이었고 그 행사명은 워싱턴포스트가 개최한 ‘워터게이트 40주년 기념 토론회’였다고 한다.

닉슨대통령을 임기중 사임한 유일한 미국 대통령으로 만든 워터게이트 사건.
닉슨을 끌어내린 그 사건에 검사 한명이 있었다.
레온 재워스키 특별검사.



그는 집무 중 녹음 내용 40분 분량의 녹음테이프를 닉슨으로부터 받아내 여론이 납득할 수 있도록 철저히 규명해냄으로써 대중들로부터 ‘미국의 양심’이란 영광스런 호칭을 들을 수 있었다. 12일의 토론회에서도 재워스키의 활약이 평가되었음에 틀림없었으리라.

하루 뒤인 지난 13일 대한민국 검찰은 민간인 불법사찰 재조사결과를 발표했다.

1992년 2월 17일.
밀라노 검찰은 고소사건 처리에 나섰다.
관급공사를 따려고 사회당에 정치자금을 대던 밀라노의 한 청소대행업체가 사회당을 고소한 사건이었다. 밀라노 검찰은 사회당 경리국장의 집을 수색, 700만 리라의 현금을 압수했다.
이것이 시작이었다.



피의자를 조사하던 밀라노 검찰은 비리의 거미줄이 정치권으로 연결된 사실을 탐지하고 당시 연립여당 기민-사회당에 대한 수사에 들어간다. 시장이 구속되고 장관이 달려들어가고 국회의원이 체포됐다.

안토니오 디 피에트로 검사를 위시한 수사검사 3인은 1년 동안 2993명을 체포했다. 이중 정치인과 고위공직자가 1,000여명에 이른다. 전체 의원의 4분의 1가량인 177명이 검찰 조사를 받았다. 이탈리아 국민은 이러한 활약을 보이는 검찰을 '마니 풀리테(깨끗한 손)'라 부르며 적극 지지했다.

그리고 마니 풀리테의 칼끝은 권력 최정점에 서있던 당시 총리 베티노 크락시를 향한다. 300억원 불법정치자금 조성의 혐의를 받던 크락시총리는 끝내 해외망명을 선택한다. 기민-사회당 연립정권도 붕괴되고 말았다. 40년 권력의 철옹성이 검찰의 손에 끝장난 것이다.


1994년 총선거에선 정치 신인들 중심의 신당인 포르자 이탈리아가 하원 630석 가운데 366석을 차지하였고, 우파연정의 베를루스코니(Silvio Berlusconi)가 총리로 선출됐다. 정치지형이 일거에 뒤집힌 것이다.

지난 13일 대한민국 검찰은 민간인 불법사찰 재조사결과를 발표했다.

2003년 하반기. 대한민국 검찰이 불법대선자금 수사에 나섰다.
기업 비자금을 수사하다보니 결국 금역으로 치부되어온 대선자금까지 건드리게 된 것이다.

송광수 검찰총장과 안대희 중수부장 라인은 5개월가량 계속된 수사에서 가차없이 준엄한 법의 칼을 휘둘렀다. 기업들로부터 트럭째 돈을 받았던 이회창 후보측은 물론이고 ‘살아있는 권력’ 노무현대통령도 궁지로 내몰았다. ‘좌희정’이라 불린 안희정씨와 측근 최도술씨가 구속되고 노대통령 본인 역시2003년 12월16일 춘추관에서 특별기자회견을 열고 “검찰이 수사상 필요하다고 판단해 조사받으라고 하면 조사받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 서슬에 여도 야도 대통령도 장관도 전전긍긍했다. 그 모습은 국민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제공했다. 혹자는 ‘제 2의 마니 풀리테’라 불렀다. 검찰이 마침내 바로선다고 좋아하기도 했었다. 송광수 총장을 ‘송짱’ 안대희 부장을 ‘안짱’이란 애칭으로 부르는 팬클럽까지 생기기도 했다.

그랬었다. 예전에...
그 당시엔 검사들이 대통령이랑 맞짱도 뜨고 그랬더랬다.
그런 추억이 있었다.

그리고 지난 13일 대한민국 검찰은 민간인 불법사찰 재조사결과를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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