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년에 내가…" 농구득점왕·천하장사의 몰락

머니투데이 배성민 기자 2012.05.24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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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클릭]'전직 농구 국가대표 출신' 금융감독원 간부 부정대출 적발

농구 득점왕과 씨름 천하장사. 종목은 다르지만 한 시대를 호령했던 선수만이 거머쥘 수 있는 이름들이다. 하지만 이같은 호칭을 받았던 이들이 최근 고개를 떨구게 됐다.

저축은행 비리 등과 관련한 수사가 한창 진행되는 가운데 최근 한 금융감독원 간부의 부정대출이 적발된 것이다. 오모씨로 알려진 그는 올 초 대구 모 저축은행에서 2억원을 빌린 뒤 이자를 내지 않은 채 캐나다로 출국했다. 또 지난해에도 경남 지역 모 저축은행(지난해 퇴출)에서 수천만원을 빌린 뒤 이자를 연체 중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여느 비위 사건과 비슷하지만 그의 이력이 알려지며 세간의 관심을 끌게 됐다. 그는 80년대 농구 국가대표 출신으로 한두차례 시리즈에서는 득점왕도 차지했다. 이충희, 김현준 등이 호령하던 득점왕 경쟁에서 85년은 뻥 뚫려있다. 그해 득점왕은 한은의 오 선수였던 것. 실업팀이 호령하던 당시 분위기에서 변방으로 꼽혀온 금융팀 한국은행 출신이지만 득점력을 인정받으며 국가대표도 됐다. 이후 선수생활을 마무리하고 코치나 감독같은 농구인이 아닌 은행원 생활을 택했다.

평생 업같은 농구보다 은행원을 택한 것은 가족과의 안정적인 생활에 대한 동경 때문이었다. 그는 몇차례 인터뷰에서 "조금은 일렀던 90년 당시의 은퇴도 대리 진급시험 때문이었다"고 했고 이번 부정 대출의 원인같은 말도 남겼다. "캐나다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아들이 하나 있는데 농구도 곧잘 하는데도 공부 쪽으로 더 관심이 많다. 내가 못 했던 것을 아들이 이뤄졌으면 한다"고.



오씨는 애초 캐나다의 가족에게 생활비를 부쳐주기 위해 대출을 받았다가 연체되자 다른 저축은행에서 추가 대출을 받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왕년의 득점왕은 학비 송금에, 환율에, 운동 선수 출신으로 받는 조직 업무 적응 스트레스에 허덕거리는 기러기 아빠였던 것이다. 그는 최근까지 금감원쪽과 연락은 하고 있다지만 해외 체류 중이어서 수사기관 등에서 귀국을 종용받고 있다.

전 천하장사 씨름선수인 이모씨도 곤경에 처해있다. 그가 전국의 농촌 노인 5000여 명을 상대로 건강기능식품을 만병통치약으로 속여 팔아 19억 원대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를 받는 건강식품 사기단에 포함된 것이다.

이들은 전화를 걸어 노인들을 모은 뒤 관광버스로 축제장 등을 돌며 식사를 제공해준 다음 건강기능식품을 팔아왔다.


이 씨는 사기 조직의 ‘바지사장’으로 활동하며 시연 강사로 나서 식품의 효능을 과장 선전하는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때 좋은 경기매너로 ‘모래판의 신사’로 통하던 그는 1980년대 천하장사로 씨름판을 주름잡았다. 은퇴 뒤 2000년대 초반까지 몇몇 팀에서 감독직도 맡았지만 씨름이 내리막길을 걸은 뒤로 생활인으로 돈의 유혹을 이기지 못 했다는 분석들을 내놓고 있다.

80년대 초반 전성기때는 연 1억원대의 수입을 올렸다고도 알려진 그는 사기단에서는 한 달에 기본급 400만원과 상품판매 한 건당 5000원씩의 인센티브를 받아 온 것으로 전해진다. 그에게 발부된 구속영장은 기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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