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KT의 민영화를 위한 해외 지분 매각 과정에 참여했던 방송통신위원회 고위 관계자(당시 정보통신부 정보통신지원국 소속 사무관)은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가 터지는 바람에 지배구조 문제를 깊이 있게 검토하지 못한 점이 아쉽지만 민영화는 잘한 결정"이라고 술회했다.
정부는 1993∼1996년 사이 3차례에 걸쳐 28.8%의 지분을 매각했다. 탄력은 1998년 김대중 정부 들어서다.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팔 수 있는 건 다 팔아야하는 분위기였다. '공기업 민영화 기본방침(공기업의 경영구조개선 및 민영화에 관란 법률)'에 따라 KT의 정부 지분은 2002년 6월까지 완전 매각키로 결정됐다. 2001년 한 해 동안 KT 지분 333만주(1.1%) 국내 매각을 시작으로 2차 해외예탁증서(ADR) 발행(17.8%), MS(마이크로소프트)와 전략적 제휴를 통한 매각(11.8%)으로 총 30.7%를 팔았다.
◇속전속결 KT·KTF 합병, '유무선+통방 융합'시대 개막=우체국과 함께 전화국은 보편적 통신서비스의 주어였다. KT는 그 한 축을 맡고 있었다. 민영화 이후에도 KT가 공기업 이미지와 문화를 벗는 일은 쉽지 않았다.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섰다. 10년만의 정권교체. 당시 KT 사장은 2008년 초 연임을 결정, 민영화 10년을 향한 새 임기를 시작했다. 하지만 납품업체의 돈을 받은 사실이 발각되며 그해 11월 배임수재 혐의로 구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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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엔 막 들어선 새 정부와 교감없이 CEO 연임결정을 한 댓가도 작용한 결과라는 소문이 공공연하게 퍼졌다. 바통은 이석채 현 회장이 이어받았다. 이 회장은 2009년 취임하자마자 '비상경영'을 선포하고, KTF와의 합병을 추진했다. 사장 취임 후 6일 만의 결정이었다. 집 전화로 대표되는 유선전화사업의 마이너스 성장속에 당연한 수순이었다.
상임위원 5인의 합의로 정책을 결정하는 방송통신위원회는 KT-KTF 합병을 의결했다. 합병에 걸린 시간은 5개월. KT-KTF 합병은 LG통신그룹 3사의 합병을 앞당기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 KT는 무선 위주의 경쟁 시장을 유무선 융합, 통신방송 융합구도로 바꾸며 시장을 흔드는 주체로 부상했다.
↑ 이석채 KT회장
하지만 지난 1분기 실적은 KT의 위기를 그대로 노출하고 있다. 연결기준 영업이익 5747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0.3% 감소했다. 매출액은 5조7578억 원으로 9.1% 늘었지만 순이익은 4076억 원으로 26.6% 줄었다.
KT 민영화 10년 마지막은 국내 통신시장이 '아이폰발' 모바일 쓰나미에 휩싸인 때다. 각국 2위 사업자와 손잡고 공략하는 애플의 전략과 경쟁판을 바꿔야하는 이 회장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순간이다. KT는 국내 모바일 격동을 직접 주도했고 '이석채식' 혁신 코드는 아이폰과 함께 각인됐다.
실익측면에 대한 평가는 아직 이르다. 민영화 당시 KT의 주당 매각가는 5만2300∼5만4000원이었지만 10년이 지난 현 주가는 3만 원을 밑돌고 있다. KT는 49%의 지분을 채운 외자들에 고배당을 하며 주가를 보존해야하는 악순환을 겪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고군분투했지만 음성매출에 기대 가입자 뺏기 경쟁에만 매달렸던 국내 통신시장의 흐름을 바꾸지 못했고, KT는 분명한 책임이 있다"고 말한다. 일각에선 KT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꼬집는다. 한 관계자는 "민영화 10년이면 뭐합니까? 정권이 바뀌면 CEO(최고경영자)가 다시 바뀔 수 있는 공기업의 가장 큰 리스크가 해결되지 않았는데"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