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촌살인사건' 현장엔 밤만 되면 학생들이…

머니투데이 이미호 기자 2012.05.05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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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학생자치순찰대 '이글가드', 야간 순찰 함께 해보니

↑연세대 학생자치순찰대 '이글가드'의 발대식 장면.↑연세대 학생자치순찰대 '이글가드'의 발대식 장면.


'신촌 대학생 살인사건'이 발생한지 이틀 후인 지난 2일 밤 10시.

불 꺼진 연세대학교 학생회관에서 파란색 총학생회 점퍼를 입은 3명의 학생들이 뚜벅뚜벅 걸어 나왔다. 경광봉과 호루라기, 손전등, 호신용 스프레이를 챙겨든 이들은 연세대 학생자치순찰대 '이글가드'.

상반신에 검정색 프로텍터(상해방지를 위해 착용하는 보호대)까지 입은 그들의 눈빛은 어두운 밤길 속에서도 반짝반짝 빛이 났다.



이글가드는 연세대 총학에서 운영하는 '자치순찰대'다. 말 그대로 학생들 스스로 학우들의 밤길 안전을 책임지는 게 목표다. 특히 최근 한 대학생이 신촌 근린공원에서 잔인하게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이글가드는 더더욱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다.

이날은 서문 순찰을 도는 날. 여학생 1명, 남학생 2명으로 이뤄진 서문팀은 학생회관에서 중앙도서관을 거쳐, 이과대를 오른쪽에 두고 서문길로 향했다.



현재 이글가드 여단장을 맡고 있는 우혜미씨(23·음대 교회음악과)는 "특히 학생들이 많이 거주하는 서문쪽 골목과 학내 기숙사 근처를 돌때는 더욱 긴장할 수밖에 없다"며 "술에 취해 다른 사람 집에 침입한 사람을 저지하거나 정신을 잃고 쓰레기 더미에서 자는 학생을 집에 돌려보내는 일도 우리 몫"이라고 말했다.

이글가드의 순찰경로는 현재 2개 구역으로 나뉜다. 연대 정문을 기준으로 하숙·자취생들이 많은 서문과 창천동 라인, 기숙사가 있는 학내라인 등이다. 조만간 SK기숙사 등 국제학사가 있는 동문라인도 추가할 예정이다.

최종 경로를 정하는 데는 서대문경찰서의 도움이 컸다. 연세대 일대를 훤히 꿰뚫고 있는 경찰의 도움을 받아 학우들을 지킬 수 있는 '최적의' 동선을 정한 것. 뿐만 아니라 서대문경찰서에서 호신술과 사건대처방법을 무료로 교육해주고 있다.


우씨는 "서대문경찰서 전·현직 정보과장들이 사비를 털어 경광봉을 20개나 사주시는 등 적극 지원해주셨다"고 말했다.

아울러 학교와 기업의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도 '이글가드'를 지치지 않게 하는 원동력이다. 연대 학생처는 소속 학생들에게 근로장학금을 지원하고 있고 연세대 성희롱·성폭력 상담실에서는 '성인지 교육'을 전담하고 있다. 또 스포츠브랜드 '휠라'는 유니폼과 반팔티, 장갑 등을 후원하고 있다.

이날 우씨와 함께 순찰을 돈 강정운씨(27·법과대학)와 이성훈씨(26·건축공학과)는 기자와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도 골목 여기저기를 유심히 살폈다. 특히 가로등이 적은 어두운 골목에 들어서자 경광봉을 쥔 손에 더 힘이 들어갔다.

이씨는 "고등학교때 의무적으로 봉사활동을 했었는데 졸업하기 전에 후배들을 위해 무언가 할 수 있어서 매우 기쁘다"고 전했다.

강씨도 "초·중·고고때 유도 등 운동을 꾸준히 해왔다"면서 "하지만 이글가드 면접에서는 오히려 운동실력보다는 봉사정신이 얼마나 투철한지를 본다"고 말했다.

서문 뒤쪽 골목에서 반대편인 창천동 일대 골목까지 샅샅이 돈 이들은 이날 밤 12시가 다 돼서야 학생회관으로 돌아왔다.

'이글가드'는 지난해 7월, 연세대 총학이 실시하고 있는 '밤길 프로젝트(가로등 설치·서문 CCTV설치·이글가드)'의 일환으로 시작됐다. 현 이글가드의 남단장인 이대건씨(22·경영학과)와 우혜미씨 등 몇몇 총학 학생들이 머리를 맞댔다. 학생 커뮤니티에 '밤에 혼자 걷기 무서워요'라는 학생들의 민원이 이들을 자극했다. 이후 고려대와 이화여대, 중앙대 등 다른 학교 순찰동아리의 실패사례를 찾아 보완하는 열정까지 보태져 '이글가드'가 탄생했다.

이글가드는 지난 3월 2일 발대식을 거쳐 1기 24명을 뽑았고 얼마전 2기를 선발, 호신술 및 성인지 교육을 앞두고 있다. 필수요건은 아니었지만 놀랍게도 1기의 80%가 태권도 유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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