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에세이] 나꼼수 막말 파문과 CAP룰

머니투데이 진양곤 하이쎌 회장 2012.04.23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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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에세이] 나꼼수 막말 파문과 CAP룰


거안사위(居安思危). 평안할 때 위태로움을 생각하고 대비해야 하는 것이 기업인의 숙명이다보니 남이 겪는 위기와 그 처리과정을 지켜보며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하는 훈련을 하곤 한다. 참으로 못된 버릇이 아닐 수 없으나 살아가면서 많은 도움이 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독서상우(讀書尙友). '인간사엔 새로운 일이 없으며, 새로운 일을 경험하는 사람이 있을 뿐'이라고 한다.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일 앞에도 마치 겪어본 사람처럼 담담히 처리하는 능력을 키우려 책을 통해 과거의 현인들과 그들의 처세를 만나보곤 한다. 책을 통해 과거의 경험들을 내것으로 만들고, 남이 겪는 일들을 지켜보면서 스스로 교육하는 것. 다소 고약하다 할지라도 때로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기업과 직원들을 지킬 수 있게 하는 '결정적 한방'이 될 수 있음을 나는 믿고 있다.



그러는 나에게 최근 또 하나의 공부거리가 생겼다. 한 후보의 막말 파문에 요동친 이번 국회의원선거가 바로 그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언론이 전하던 분위기가 맞았다면 민주당은 국회 제1당이 돼 있어야 했다. 참 쉬워보였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터졌다. 한 후보의 과거 발언이 기성세대의 공분을 산 것이다. 때로는 늦은 결정이 결정을 안하는 것보다 더 최악의 결과를 가져오는 법. 전례 없는 박빙의 승부처에서, 이 후보를 공천한 민주당은 선택해야 했다. '나라면 어떻게 처리했을까' 하는 고약한 습관이 또 발동했다.



아마도 나는 CAP룰을 적용해서 신속히 대응했을 것이다. CAP룰이란 예상치 못한 위기 발생시 Care & Concern, Action, Prevention을 30대60대10의 비중으로 하여 신속히 대응하는 것을 말한다.

민주당에서 일하는 나를 가정해봤다.

그 경우 우선 "이번 일에 대해 대단히 죄송스럽게 생각한다. 공천심사에서 충분히 검증하지 못했음과 그로 인해 결과적으로 상처받은 모든 분에게 깊이 사죄한다"고 했을 것이다(Care & Concern·30%).


그 다음에는 "공천을 철회한다. 어쩌면 '나꼼수' 팬들의 지지를 포기해야 함에 우려되지만 우리가 집권하고자 하는 것은 올바른 정치철학을 펼침으로써 좀 더 나은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함인데, 표를 얻기 위해 철학을 포기하는 것은 본말전도라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이다. '나꼼수' 또한 어떠한 형태로든 역사를 발전시키는 대열에 있음을 확신하며 '나꼼수' 팬들 수준이라면 이러한 우리의 입장을 신뢰하고 이해하리라 믿으며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철학을 지켜나갈 것"이라고 행동한다(Action·60%).

그리고 마지막으로 "향후에도 표가 아닌 철학을 기준으로 좀 더 투명하고 객관적인 공천을 위해 공천시스템을 정비하겠다"고 했을 것이다(Prevention·10%).

이번 민주당의 대응을 관전하면서 '나무가 꽃을 버려야 열매를 얻고, 강물은 강을 버려야 바다에 이른다'는 화엄경의 구절을 떠올렸다. 꽃도 버리지 못하고 강을 버리지도 못하였으며, 신속함조차 없이 머물렀는데 어찌 열매를 맺고 바다에 이를 것인가.

나는 지금 현대카드 하나만 쓴다. 그렇게 하기 시작한 건 역설적이게도 그날 그 사건, 기억하기도 싫을 대규모 회원정보가 유출된 그 사건 이후다.

현대카드 정태영 CEO의 신속하고 과감한 위기대응 모습은 나로 하여금 '이 회사만큼은 다시 이런 일을 겪지 않겠구나. 그리고 설령 이런 일이 다시 생긴다 할지라도 잘 대응해 주겠구나'란 믿음을 갖게 만들었다.

위기는 누구든 겪을 수 있다. 하지만 이에 대응하는 모습에서 때론 엄청난 신뢰를 발견하기도 한다. 위기관리능력이 때론 위기를 기회로 만들기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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