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면칼럼]정권말기의 우리-KB금융 합병론

머니투데이 박종면 더벨대표 2012.04.16 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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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김소월은 '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에서 같은 말이라도 조금 더 영리하게 할 줄 알면 세상 살기가 훨씬 편해진다고 했다. 정권 말기에 우리금융 민영화 재추진을 공언하는 김석동 금융위원장의 말을 들으면서 김소월의 시가 생각났다.

김 위원장은 "우리금융 매각을 이 정부에서 마무리짓지 않으면 더 지연될 수밖에 없고, 정권이 바뀌어 새 경영진이 들어오면 민영화는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지금이 오히려 적기"라고 말한다.



이 말은 매각 대상인 우리금융은 물론 유력한 인수 후보인 KB금융에 정권이 바뀌어 권력 실세 CEO가 들어오면 이들은 당연히 3년 임기를 채우려 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민영화는 다시 차기정권 후반부나 돼야 시동이 걸릴 것이기 때문에 역으로 정권말기인 지금이 오히려 최적기라는 지적으로 해석될 수 있다.

전혀 틀렸다고 할 수는 없지만 현직의 실세 회장들 입장에서는 섭섭하거나 불쾌한 얘기일 수도 있다. 같은 말이라도 좀 더 영리하게 우회적으로 해야지 하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김 위원장의 발언은 우리금융 민영화나 우리금융과 KB금융 합병에 걸림돌로 현직 회장들을 지목한 것으로 들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의 우리금융 민영화 재추진 선언이후 금융당국이나 금융계 주변에선 이런 저런 매각 및 합병 시나리오가 나돌고 있다.

새 시나리오는 과거와는 전혀 다른 방식이다. 개정 상법에 힘입은 ‘현금상환’ 합병방식으로 KB금융이 우리금융을 인수하는 것이다.

KB금융이 정부가 갖고 있는 우리금융 지분 57%를 인수하되 이중 20%(약 2조원)는 현금으로 우선 정부에 주고, 나머지 37%에 대해선 합병 후 새로 출범하는 지주사(KB금융+우리금융)의 주식으로 주는 것이다. 정부 입장에선 우리금융 민영화도 하고, 2조원정도의 공적자금을 회수하는 효과도 얻는다. 뿐만 아니라 총자산 800조원의 초대형 메가뱅크 탄생이라는 부수효과도 거둔다.


일견 그럴싸한데 문제가 많다. 이 방식도 우리금융 민영화의 3대원칙 중 하나인 '공적자금 회수 극대화'에 배치된다. 57% 정부지분을 현금 받고 민간에 일괄 매각하는 경우에 비해 경영권 프리미엄을 충분히 챙기지 못하는 문제가 우선 생긴다.

게다가 새로 탄생하는 초대형 금융지주사에서 정부가 여전히 10%이상의 지분을 갖는 1대 주주가 되기 때문에 현재 정부지분이 1%도 없는 KB금융의 외국인 주주들이 합병을 반대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거액의 주식매수청구권 행사로 나타날 것이다.

연말 대선을 앞둔 민감한 시점에서 우리금융과 KB금융 노조의 강한 반대와 표를 의식한 여야정치권의 셈법도 우리금융 민영화에 결코 우호적이지 않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철지난 대중가요 신세가 돼 버린 메가 뱅크론을 다시 들고 나오는 것도 부담이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교훈은 메가 뱅크는 그것을 끌어갈 시스템과 리더십이 없다면 차라리 추진하지 않는 게 낫다는 것이다.

김석동 위원장은 세상 모르는 듯 몇 달 남지 않는 정권 말기에 우리금융 민영화를 다시 들고 나왔지만 세상은 시큰둥하고 냉소적이기까지 하다.

관련 금융사들은 청와대의 의중을 탐문하는가하면 김 위원장의 진짜 의도가 무엇인지 나름대로 감을 잡은 듯하다. 한결같이 정치적인 해석들이다. 정권말기 존재감을 보여주기 위한 것, 차기정권을 노린 포석이라는 등의 관측도 나오고 있다.

시인 김소월은 '돌아서면 무심타'라고 했지만 권력이 떠나가면 세상인심은 무심하다. 그게 세상사다. 정권 말기 우리금융 민영화론이 그냥 세상모르고 살기로 한 시인의 노랫소리처럼 들려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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