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학교에 있는 권위, 한국엔 왜 없을까

머니투데이 뉴욕=권성희 특파원 2012.03.29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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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성희의 뉴욕리포트]한국의 '권위'는 누가 무너뜨렸을까

아이가 미국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한 달이 지나지 않아 담임선생님의 이메일을 받았다. 아이가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켜 3차례나 수업이 끝난 뒤 남아 있는 벌을 받았다며 한 번 더 문제를 일으키면 점심시간 후에 놀지 못하도록 교실에 붙잡고 있겠다는 내용이었다.

깜짝 놀라 아이를 불러 자초지종을 물었다. 아이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수업이 모두 끝난 뒤 15분 정도 학교에 남아 있었던 적이 있다고 답했다. 한 번은 숙제한 공책을 안 가져와서, 한 번은 발표 순서를 정한다고 다른 아이들과 가위 바위 보를 하다가, 또 한 번은 옆자리 아이가 테이프를 잘라 장난을 치길래 따라 하다 학교에 남게 됐다는 설명이었다.



함께 떠들거나 장난 친 아이들도 물론 수업 후에 함께 남았다고 했다. 얘기를 들어보니 한국 학교에선 별 문제도 아닌데다 수업 후에 15분 정도 남아 있는 것이 무슨 큰 벌이랴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이 역시 한국 학교에서도 떠들다 야단맞은 적이 여러 차례인데다 수업 후에 남아 있는 것이 큰 벌이라는 생각도 들지 않아 얘기도 안했다며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일단 아이에게 주의를 주겠다고 담임선생님에게 이메일을 보낸 뒤 주변 엄마들에게 사정을 얘기하면서 푸념조로 "미국 학교는 좀 더 자유로운지 알았더니 수업시간에 좀 떠들었다고 너무 유별나네요"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한국에서 자라 미국에 정착한 많은 엄마들은 "담임선생님이 좀 과한 것 같다"면서도 일관되게 한국에서 생각하는 자유와 미국에서 생각하는 자유는 다르다고 덧붙였다.

그랬다. 한국의 기준에서 봤을 때 미국 학교는 한국보다 덜 자유로웠다. 대표적으로 미국 아이들은 학교 복도에서 한 줄로 다녔다.

학교 운동장에서 가방을 던지며 장난을 친다거나 복도를 뛰어 다닌다거나 학교에서 수업이 진행되는 동안 복도에서 두 사람이 한 줄로 지나가지 않고 나란히 서서 얘기하며 지나간다거나 하는 일이 없었다. 그럴 경우 교사나 교장의 경고를 받고 경고가 세 번 쌓이면 부모에게 이메일이 전달된다.


학교에서 욕을 해도 경고를 받는다. 미국에 와서 아이에게 멍청이란 뜻으로 "이디엇(idiot)"이라고 하자 아이가 "엄마, 그런 나쁜 말을 하면 야단맞아"라고 말했다. 아이는 몇 가지 단어와 문장을 나열하며 이런 말을 쓰면 처음에는 담임선생님에게 야단을 맞고 이런 일이 누적되면 엄마, 아빠에게 통보가 가고 그래도 개선되지 않으면 엄마나 아빠가 교장선생님과 면담을 해야 한다고 했다.

학교 규율은 이처럼 엄격하고 답답한데 선생님이나 학교에서 일하는 직원, 심지어 교장선생님까지 학교 사람들은 하나 같이 전혀 권위적이지 않고 너무나 친근하다. 특히 교장선생님은 오가다 학부모와 만나면 친구처럼 다가와 활짝 웃으며 인사하고 농담을 던진다.

교직원들과 학부모가 함께 어울리는 행사도 많다. 이 곳 초등학교는 5학년이면 졸업하는데 매년 3월이면 5학년 전체 학생들과 전체 교직원들이 선수를 교체해가며 학부모들 앞에서 2시간에 걸쳐 농구시합을 펼친다. 말 그대로 학생과 교사, 학부모가 하나라는 느낌 고스란히 전해지는 자리였다.

학교 규율은 철저하게 지켜야 하지만 규율을 지키는 한 누구나 똑같은 인격으로 개성을 인정받는다. 반면 규율을 어기면 정해진 절차에 따라 경고와 벌을 받는다. 교사 개인의 감정이나 재량으로 정해지는 벌이 아니라 학교 규율에 따라 정해져 있는 벌이다.

교사가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무시당하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나고 학부모가 직접 학교로 찾아와 교사와 대거리를 하는 일이 심심치 않게 발생하는 한국의 학교와는 달랐다.

미국 학교에 있는 권위가 왜 한국 학교에는 없을까.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학생과 학부모 개인의 문제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권위란 오랜 시간 신뢰가 쌓였을 때 형성돼 인정받을 수 있다. 학교 규율이 공정하고 합리적이라는 신뢰가 쌓였을 때 그 학교의 규율은 권위를 인정받는다.

지금 한국의 학교, 더 나아가 사회 전반적인 기관들의 '권위'가 무너졌다면 수십 년간 학교를 비롯한 사회 주요 기관들을 장악해온 '권위적인' 사람들이 대중들의 신뢰를 저버려 '권위'를 무너뜨린 결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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