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저우 병(病), 광둥의 고민, 장쑤의 미소

머니투데이 베이징=홍찬선 특파원 2012.01.02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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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찬선 칼럼]변하지 않고 현재에 만족하는 것은 퇴보

광둥(廣東)은 중국에서 GDP가 가장 큰 성(省)이다. 2001년 GDP가 4조5472억위안(약818조원)였으며, 지난해에는 5조위안(900조원)을 넘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978년부터 시행된 개혁개방 정책의 우등생인 선전(深?), 최대 수출단지인 동관(東莞), 광둥의 성도(省都)인 광저우(廣州) 등을 잇는 ‘주장산자오저우(珠江三角洲)’ 지역은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모범생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런 광둥성에 ‘선발자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다. 전혀 흔들릴 것 같지 않던 ‘중국 경제 1위’ 자리가 위협당하고 있다. 도전자는 바로 장쑤(江蘇)성. 장쑤의 GDP는 2010년에 4조903억위안으로 광둥보다 4569억위안 적었다. 하지만 2011년 1~9월 중 GDP 차이는 1840억위안으로 축소됐다. 광둥의 성장률이 10.1%였던 반면 장쑤는 11.2% 성장했기 때문이다.



장쑤가 광둥을 추월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분석이 많다. 장쑤성의 면적은 10만2600㎢, 인구는 8000만명 정도다. 반면 광둥성의 면적은 17만9800㎢, 인구는 1억430만명(2010년말)이다. 자연조건이나 경제개발 속도 등에서 앞선 광둥이 장쑤에게 위협당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저장(浙江)성의 원저우(溫州)를 보면 이 의문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다. 원저우는 작년 7월23일 밤, 고속전철 추돌사고로 40명이 사망하고 200여명이 다친 참사가 일어났던 곳이다. 또 지난해 고금리 사채(私債)를 상환하지 못한 중소기업 사장 200여명이 야반도주했을 정도로 사채 문제가 심각하다.



‘원저우 상인’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기업경영에 두각을 나타냈던 원저우가 요즘 심각한 병(病)에 걸려 있다. 주업인 제조업을 포기하고 주식이나 부동산 투기, 그리고 사채놀이 등 부업(副業)에 전념하는 고질병이다. 작년부터 증시나 부동산시장, 사채시장이 어려워지면서 야반도주하는 사장이 늘어나고 중소기업 2만5000개가 무더기 부도를 냈다. 경영환경이 어려워진 것도 문제지만 기업하려는 의지, 즉 기업가 정신이 약해진 것이 ‘원저우 병’의 핵심이다.

광둥이 장쑤에 쫓기게 된 이유도 바로 ‘원저우 병’의 연장이다. 한국이나 대만 등에서 중간재를 수입해 중국의 저임금 노동력으로 조립해 미국과 유럽에 수출하는 ‘임가공 수출’이 한계에 부딪치면서 광둥의 성장탄력이 떨어지고 있다.

반면 광둥보다 좀 늦게 공업화가 시작된 장쑤는 상하이와 저장성과 함께 ‘창장산자오저우(長江三角洲)’를 이루면서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중심으로 발전하고 있다. 쑤저우(蘇州) 우시(無錫), 양저우(揚州) 난징(南京) 등을 잇는 장쑤 중심공업지역은 컴퓨터 자동차 태양열전지 등의 산업이 발달되면서 중국의 새로운 성장모델로 등장하고 있다.


중국은 1인당 국민소득이 4300달러를 넘어선 지난해부터 경제발전 모델을 바꾸는데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오는 2015년까지 이어지는 12차5개년계획기간 동안에 부가가치가 낮고 환경오염을 유발하는 임가공수출을 줄이고 7대 전략신흥산업을 육성하고 있다. 산업구조를 고도화하고 임금인상 등을 통해 국민의 소득을 높임으로써 내수를 확대하겠다는 전략이다.

원저우 병과 광둥의 고민, 그리고 장쑤의 미소는 바로 중국이 직면한 지난 30년 동안 경제발전의 유산과 앞으로 30년 동안 추진해야 할 방향을 보여준다. 시대의 변화에 앞서 나가는 기업과 지역은 웃을 것이지만, 지금 갖고 있는 것에 연연해하면 도태되고 만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되돌릴 수 없다. 21세기 세계경제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는 중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통일시대를 준비해야 하는 한국에게도 아주 중요한 길을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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