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이어 소녀시대도 유튜브선 망명중

머니투데이 이하늘 기자, 이언주 기자 2011.12.0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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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인터넷실명제 편법우회···한국계정 업로드 불가 2년반째 이어져

유튜브에 동영상을 한번이라도 올려본 초등학생이라면 어렵지 않은 퀴즈 하나. 대한민국 최고 행정기관인 청와대의 유튜브 국적은 무엇일까. 대한민국(한국)이 아니다. 전세계다. 'K-팝(POP)'의 간판격인 원더걸스, 샤이니, 소녀시대도 유튜브에선 한국 국적을 쓸 수 없다. 정부가 나서서 한류문화 확산을 위해 구글과 손잡고 유튜브에 'K-팝' 전용채널을 만드는데, 국적은 한국을 택할 수 없는 기막힌 상황에 처하게 됐다.

↑청와대 유튜브 공식채널 캡쳐화면. 청와대는 2009년 4월부터 동영상 업로드를 위해 국적을 '한국'에서 '전세계'로 변경했다. ↑청와대 유튜브 공식채널 캡쳐화면. 청와대는 2009년 4월부터 동영상 업로드를 위해 국적을 '한국'에서 '전세계'로 변경했다.


30일 문화체육관광부와 구글이 체결한 '한류 확산을 위한 업무협약서'의 골자는 유튜브 음악카테고리에 K-팝 항목을 신설, 세계인들에게 인지도를 높이는 한편 한국 고전영화 전용채널을 구축해 대표적인 고전영화를 소개하는 것이다.



또 대규모 콘서트 개최 및 홍보를 지원하고 이를 유튜브로 실시간 방송하는 방안이 마련된다. 11월 초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이 방한해 이명박 대통령을 만나 약속한 '코리아 고 글로벌' 프로젝트 중 하나다.

그런데 이번 협약으로 '사이버망명'이 이뤄지는 '유튜브식 꼼수', 그리고 그 꼼수를 인정한 대한민국 인터넷의 현실이 다시 주목받게 됐다.



정부는 2009년 4월부터 하루 이용자 10만명 이상인 인터넷서비스에 대해 제한적본인확인제(인터넷실명제)를 시행해왔다. 촛불, 미네르바 사건 등을 치르면서 얼굴없는 댓글로 인한 피해를 막자는 취지로 도입됐다.

이를 따를 수 없다는 구글은 실명제 실행과 동시에 국내 유튜브서비스에서 영상업로드 및 댓글기능을 폐쇄했다.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라는 입장이었다. 대신 홈페이지 하단에 국가 설정만 바꾸면 자유롭게 댓글을 달고 영상을 올릴 수 있도록 '대안'을 만들었다. 이른바 국내이용자들의 '사이버망명'이 시작된 순간이다.

국내이용자들은 홍콩 등 36개 국가로 국적을 변경해 동영상을 업로드하거나 댓글을 작성한다. 청와대도 청와대를 알리기 위해 '망명'을 택했다. 2009년 4월부터 2년7개월여 동안 청와대는 구글 유튜브 공식채널(http://www.youtube.com/presidentmblee)을 운영하면서 국적을 '한국'에서 '전세계'로 수정했다.


↑유튜브 홈페이지 캡쳐화면. 인터넷실명제 시행 이후 국내 이용자들은 유튜브에 영상을 올리기 위해 한국 국적을 다른 나라로 변경해야 한다.↑유튜브 홈페이지 캡쳐화면. 인터넷실명제 시행 이후 국내 이용자들은 유튜브에 영상을 올리기 위해 한국 국적을 다른 나라로 변경해야 한다.
정부와 여당인 한나라당이 앞장서서 마련한 '인터넷실명제'를 거부한 유튜브의 고자세에 우리 정부가 2년 넘게 무릎 꿇은 셈이다. 청와대 공식채널의 동영상 1편당 조회수는 대체로 200~400건. 2년7개월 동안 누적된 전체 조회수는 11만2425건, 하루평균 119회의 영상이 조회됐다.

구글은 고자세는 국가에 따라 적용이 달라진다. 과거 중국 정부의 검열에 굴복해 고객의 개인정보를 제공했다. 한때 중국 정부의 요청에 따라 '천안문' 등 일부 주제에 대한 검색결과를 걸러내기도 했다.

반면 한국에 대해서는 사사건건 정부와 대립각을 세워왔다. 게임에 대한 사전등급분류 법조항에 반발해 국내 게임카테고리를 1년8개월 동안 폐쇄했다가 지난 29일에야 다시 개방했다. 상대를 봐가며 정책을 바꾸는 셈이다.

이번에 유튜브를 통한 한류 확산 지원이 정부의 기대만큼 실효성이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이미 국내 주요 기획사들은 유튜브와 콘텐츠 계약을 하고 소속 연예인의 영상을 업로드해왔다. 기존 기획사들과의 협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구글 측의 이득이 더 많을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류바람을 탄 K팝 콘텐츠가 안정적으로 확보되면 동영상 조회수와 방문자 수는 그만큼 늘어나고 구글로서는 손해를 볼 일이 없다는 의미다.

실명제에 막혀 콘텐츠 활성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내 유튜브 경쟁사들은 울상이다. 유튜브의 콘텐츠파워가 더욱 커지면 국내 동영상서비스업체들이 상대적으로 위축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국내 산업을 육성해야 할 정부가 오히려 경쟁관계인 해외기업의 힘을 키워주는 꼴이다.

인터넷업계 관계자는 "인터넷실명제, 셧다운제를 통해 정부가 의도치 않게 해외기업들에 특혜를 주고 국내기업만 압박하게 됐다"며 "청와대가 망명까지 해가며 유튜브에 찾아갈 거라면 인터넷실명제를 폐지해 국내 경쟁사에게 숨통을 터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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