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억짜리 부동산, 은행 감정평가액 5억이라고?"

머니투데이 송지유 기자 2011.10.15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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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들 비용절감 위해 부동산 담보물 자체감정 확대…전문가 "부실감정 우려된다"

금융권이 부동산 담보물 자체감정평가를 확대해 파장이 일고 있다. 해당 은행들은 감정평가 수수료 등 비용 절감을 위한 조치라는 입장이지만, 전체 매출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하는 은행 일감이 줄어드는 감정평가 업계는 비상이 걸렸다.

금융권의 부동산 자체감정은 경영진의 입김이나 은행의 사정에 따라 원래 가치보다 과대 또는 과소 평가할 가능성이 높아 대출받으려는 소비자들의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10억짜리 부동산, 은행 감정평가액 5억이라고?"


◇시중은행 부동산 담보물 자체감정 나서는 이유는
일부 은행이 부동산 담보 자체감정에 나선 것은 지난 7월 금융권 부동산 담보대출에 대한 근저당(담보권) 설정비용을 대출자가 아닌 금융회사가 부담하도록 제도가 바뀌면서부터다.

지난해 11월 서울고등법원이 근저당 설정비용(감정평가수수료 포함)을 은행이 부담하라고 판결하면서 평가비용을 절감하는 차원에서 담보물 자체감정을 강화하는 방안을 모색한 것이다.



현재 부동산 담보물 자체감정에 가장 적극적인 곳은 국민은행이다. 이 은행은 최근 여신심사그룹 산하에 별도 담보평가 부서를 신설, 20억원 이상 담보에 대해 자체감정을 실시하고 있다.

사내 감정평가사 수를 2배 이상 늘리고 별도 평가시스템도 갖췄다. 농협은 15억원 이하(특수부동산 제외) 담보물건에 대해 자체감정을 시행한다. 다른 시중은행들도 부동산 담보대출 근저당 설정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내부조직 구성과 자체감정 기준 등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매출 절반 급감"…감정평가업계 '고사 위기'
감정평가업계는 은행들의 부동산 담보물 자체감정이 본격화되면 매출이 절반 가까이 급감할 수밖에 없다고 우려한다. 주요 은행의 외부 감정평가의뢰 수수료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1546억원에 달한다.


은행별로는 △농협이 649억원 △우리은행 187억원 △신한은행 183억원 △국민은행 170억원 △수협 167억원 등 순읻다. 전체 감정평가 수수료시장의 약 10%를 차지하는 국민은행이 자체감정을 본격화한데다 다른 은행들까지 가세할 경우 감평업계 전체가 고사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10억짜리 부동산, 은행 감정평가액 5억이라고?"
한국감정평가협회 관계자는 "수수료를 아끼겠다고 감정평가업무 고유의 전문성과 공정성을 해치는 행위"라며 "소비자 입장에선 은행이 대출금을 줄이려고 10억원짜리 물건을 5억원이라고 자체감정해도 특별한 조치를 취할 수 없다"고 말했다.

◇"과다·과소감정 못 막는다"…"부실 감정평가 피해 우려"
은행의 담보물 자체감정은 부실감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우려다. 부동산 가치는 위치, 시기에 따라 차이가 있는데 과거 대출자료를 근거로 평가하는 것은 리스크가 크다는 것이다.

금융기관은 은행장, 부행장, 지점장 등 상하조직 관계가 확실해 경영진이나 임원 등의 입김이나 은행의 사정에 따라 실제 가치와 달리 과대 또는 과소 감정평가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정수연 제주대 경제학과 교수는 "은행이 담보물을 자체감정해 돈을 빌려주는 행위는 글로벌시장에선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라며 "감정평가 중립성을 강화해도 모자란 판에 은행의 자체감정을 묵인하는 것은 평가시스템 퇴보를 조장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은행이 외부 감정평가 수수료를 아끼려고 무분별한 자체감정에 나설 경우 몇 배 더 많은 사회적 비용을 치를 수 있다"며 "정확하고 공정한 감정평가가 이뤄지도록 관계부처가 머리를 맞대 평가업체 지정과 수수료 기준 등 제도를 개선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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