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엔 CDO가 주범, 이번엔 ETF가 뇌관?

머니투데이 권성희 기자 2011.10.05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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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거듭...상품구조 복잡, 유럽은행 불완전 판매 우려

2008년 금융위기 때 부채담보부증권(CDO)과 유동화전문회사(SPV)는 은행 시스템의 위기를 심화시키는 주범으로 지목됐다. 이번 유로존 위기 때는 상장지수펀드(ETF)를 비롯한 상장지수상품(ETP)들이 투자자 보호와 경제 안정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부각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파이낸셜 타임스(FT)는 5일 미국과 유럽연합(EU)의 금융감독당국이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는 ETF가 거래 상대방과 파생 위험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투자자들에게 불완전 판매되고 있어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감독당국은 특히 유럽 은행들이 ETF를 값싼 자금 조달 수단으로 활용하면서 ETF 투자자금에 대한 담보물로는 유동성이 떨어지는 자산을 제공하고 있어 예의 주시하고 있다. 아울러 지난 2008년 머니마켓펀드(MMF)에서 자금이 대규모 유출된 것처럼 ETF에서 한꺼번에 자금이 인출될 경우 유동성 리스크가 초래될 수 있다고 보고 경계하고 있다.

ETF는 1989년에 주가 지수의 수익률을 따라갈 수 있는 가장 저렴한 투자 방법으로 처음 등장했다. ETF는 시장의 대표 지수에 편입된 종목을 실제 보유하고 있는 바스켓 상품으로 지수를 매입하는 효과를 누릴 수 있는데다 상장 주식처럼 쉽게 사고 팔 수 있어 투자자들의 각광을 받아 왔다.



하지만 주가 지수에서 시작된 ETF가 통화와 상품, 채권, 모기지(주택담보대출 증권) 등으로 영역을 넓혀 가면서 점점 더 구조가 이해하기 어렵게 복잡해졌다. 현재 전세계에는 4000여종의 상장지수펀드(ETF)와 상장지수채권(ETN), 상장지수상품(ETC) 등 상장지수상품(ETP)들이 거래되고 있으며 올 중반 현재 운용자산만 1조6260억달러에 달한다.

게다가 최근 ETP 대부분은 실제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주가 지수 ETF와 달리 추종하는 지수의 수익률을 따라가기 위해 실물 증권을 보유하기보다는 약속한 수익률을 달성하기 위해 여러 가지 파생상품에 투자하는 합성 상품으로 진화했다. 이 결과 상장지수상품(ETP)이라는 이름과 어울리지 않게 상당수 ETP가 거래소가 아닌 장외에서 거래되고 있다.

◆ETF, 파생상품에 투자하며 점점 더 복잡화
미국 금융당국은 이미 2009년에 일부 합성 ETF, 특히 특정 지수 대비 몇 배 수익률이나 반대 수익률을 보장하는 ETF들이 장기적으로 약속한 수익률을 유지하는데 실패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금융안정위원회(FSB)도 지난 4월 새로운 시스템 위험 요인과 관련한 첫번째 금융상품으로 ETF를 지목했다.

지난달에는 UBS의 젊은 직원이 ETF와 관련한 파생상품 임의거래로 23억달러의 손실을 초래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ETF의 위험성에 대한 논란이 고조됐다. 물론 UBS의 금융사고는 ETF 자체보다는 컴플라이언스(규정 준수)와 리스크 관리의 문제였지만 이 사고를 계기로 ETF가 CDO에 이어 위기를 유발하는 독성 상품이 될 수 있다는 우려는 높아졌다.

스티븐 마이주르 유럽증권감독청(ESMA) 회장은 지난주 ETF를 감독하는 현재의 규정이 "충분하지 않다"며 더 엄격한 조치가 지금 당장 취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합성 ETF와 관련한 투자자 보호 이슈는 투자자들이 상품 내용을 이해했는가, 약속한 수익률을 달성하는가, 파생상품 제공자가 파산할 경우 투자자들의 자금을 지급 보증할 담보로 어떤 자산을 제공했는가 등 3가지다.

FSB와 유럽 시스템 리스크 이사회(ESRB) 등은 특히 ETF 담보 문제에 주목하고 있다. 은행들이 ETF의 투자자금을 통해 현금을 확보하면서 ETF에는 위험하고 가치 평가도 어려운 자산을 담보로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ETF 투자자들이 한꺼번에 자금 회수를 원하게 되면 유동성 리스크가 부각될 수 있다.

◆ETF 규제 강화 필요하다 VS 시장 실패 증거 없다
일각에서는 최근 ETF가 2008년에 수많은 은행에 문제를 야기했던 부외거래 SPV와 CDO를 연상시킨다는 지적도 나온다. 마빈 킹 영란은행 총재는 최근 "ETF에 투자된 자금을 활용하는 특정 측면이 불투명하고 복잡한 자금조달 구조를 갖고 있는지"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미국 금융당국은 최근 파생상품을 사용하는 ETF를 조사하면서 신상품 허가를 전면 보류했다. 홍콩 금융당국은 최근 합성 ETF의 거래 상대방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ETF 자산의 최소 100% 가치에 해당하는 담보를 제공하도록 규정을 강화했다. 아울러 합성 ETF는 이름 앞에 'X'를 붙여 한 눈에 알 수 있도록 했다.

유럽에서는 ESMA가 합성 ETF를 개인 투자자에게 판매하는데 제한을 둬야 하는지, 담보 관행과 관련해 공시를 좀더 확실히 하도록 규제를 강화해야 하는지 검토하고 있다.

세계 최대의 ETF 브랜드 아이셰어즈(iShares)를 보유하고 있는 자산운용사 블랙락도 ETF산업의 평판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ETF의 담보 규정과 공시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조셉 린헤어즈 아이셰어즈 운용이사는 "ETF의 담보 종류와 요구되는 손실률 등에 대한 당국의 기준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예를 들어 채권상품이라면 왜 일본 주식을 담보로 제공하는가"라고 반문했다.

하지만 유럽 자산운용협회는 ETF에 특화된 새 규제는 불필요하다며 반대 의사를 밝혔다. 영국의 자산운용협회도 아직 ETF와 관련한 명확한 시장 실패의 증거가 없으니 규제 개입이 필요 없다는 입장이다. 합성 ETF 제공자들은 합성 ETF가 불공정하게 금융당국의 목표물이 되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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