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된 글로벌 환율전쟁..누구를 위한 총성인가

머니투데이 권성희 기자 2011.08.12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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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뒤흔든 7일] 스위스, 일본 등 이미 '국지전' 개시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새로운 환율전쟁의 위험을 각오했다."

파이낸셜 타임스(FT)는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최소 2년간 제로(0) 상태의 금리를 유지한다고 결정하자 "환율전쟁이 발발하기에 위험스러울 정도로 좋은 여건이 조성됐다"며 이같이 평가했다.

아직까지 외국 언론이나 유력 경제전문가들 사이에 환율전쟁이란 표현은 거의 언급되지 않고 있다.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과 유럽의 부채위기 우려로 글로벌 주식시장이 패닉(공황)에 빠진 것과 달리 외환시장은 상대적으로 조용하기 때문이다.



주요 6개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 인덱스는 미국의 신용등급이 낮아지기 전후로 74.598에서 74.567 수준으로 거의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달러와 유로가 '못난이 경연대회'라도 벌이듯 약세 경쟁을 계속하는 가운데 미국 국채값이 오르며 달러 가치 하락을 제한한 결과다.

하지만 달러와 유로가 엎치락뒤치락 약세를 보이는 가운데 통화 절상의 피해가 고스란히 스위스프랑과 일본 엔에 전가되자 스위스와 일본은 자기들만의 작은 환율전쟁을 이미 시작했다.



스위스는 지난 3일 예상과 달리 금리를 제로(0) 수준으로 낮추고 유동성을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프랑 강세가 계속되자 11일에는 스위스중앙은행 통화정책위원 2명이 잇달아 언론과 인터뷰를 통해 "어떤 조치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환율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일시적인 조치를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시장에서는 이 조치가 스위스프랑의 움직임을 유로에 연동시키는 페그제 도입으로 해석됐고 스위스프랑은 이날 달러 대비 5%가량 급락했다.

일본은 지난 4일 대지진 직후 때보다 더 많은 사상 최대 수준인 4조6000억엔을 외환시장에 쏟아부어 '엔 매도-달러 매수' 개입을 단행했다. 이 결과 엔은 반짝 약세를 보였지만 미국이 2년간 금리를 올리지 않겠다고 밝히면서 엔은 다시 개입 이전 수준의 강세로 돌아갔다.


스위스가 진짜 유로와 페그제를 도입하는 초강수를 둘지, 일본이 돈을 더 풀어 시장 개입을 계속할지 예단할 수는 없다. 다만 양국이 지금 자국 기업들의 엄청난 압력을 받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어떤 통화 가치가 떨어지려면 다른 통화 가치는 올라가야 한다. 지금은 어떤 국가도 통화 절상을 수용하려 하지 않는다. 미국은 금리 동결 시기를 못 박는 방식으로 약달러를 사실상 선언했고 유럽중앙은행(ECB)은 부채위기가 계속되는 가운데 국채 매입 프로그램을 재개해 유로화 약세를 유도하고 있다.

핵심은 중국이다. FRB의 2년간 금리 동결 선언 이후에도 중국은 조용하다. 덕분에 위안화는 12일 달러당 6.3972위안으로 6년1개월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번주 들어 위안화는 달러 대비 0.74% 절상되는 이례적인 상황이 벌어졌다.

하지만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중국이 위안화 절상을 용인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WSJ는 "중국이 과감한 위안화 절하로 환율정책을 급선회하지는 않는다 해도 글로벌 경제 전망이 더 불확실해지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처럼 달러 페그제를 재도입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중국이 달러 페그제로 회귀하지 않고 연간 5% 수준인 위안화 절상폭을 더 낮추는 정도의 움직임만 보여도 미국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위안화 저평가 운운하며 위안화 절상을 강도높게 압박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되면 세계는 환율 전면전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스위스와 일본이 비록 영향은 미미할지언정 환율전쟁의 포성을 울린 지난 4일 "폭탄 돌리기"가 다시 시작됐다며 "노래가 멈추기 전에 빨리 다른 국가로 폭탄을 넘겨야 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또 "환율전쟁이란 말은 과장된 표현일지 모르지만 매우 중요하다"며 "1920년대말과 1930년대에 세계는 어떤 국가의 통화를 금 태환으로 고정시키고 환율은 어떻게 할지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고 지적했다.

1929~32년의 대공황은 전세계 각국이 자국 이기주의에 빠져 보호 무역주의를 도입하면서 악화됐다는게 일반적인 평가다. 세계 각국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대공황의 교훈을 새겨 이례적인 공조로 위기를 극복했다. 하지만 국가 부채위기와 또 다른 침체라는 새로운 위기에 직면해 세계 각국은 겉으로는 공조하되 안으로는 자국 이기주의를 극대화하려는 유혹을 느끼고 있다.

아직 글로벌 외환시장은 안정적이지만 지금의 고요함은 '폭탄 돌리기'라는 환율전쟁 직전의 폭풍전야일 수 있다. 누가 통화절상이란 폭탄을 안고 자폭할 것인가. 글로벌 환율전쟁의 암운이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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