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고염치(不顧廉恥)'의 경제학

머니투데이 성화용 더벨 편집국장 2011.07.27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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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치없는 사람들이 의외로 적지 않다. 이들은 자신의 이익이 걸리면 말 그대로 부끄러움을 돌아보지 않는다.

금융회사의 임원 A씨는 지난해 그만두라는 통보를 받았다. 계약 연장에 실패한 것이다. 통보를 받은 직후 그는 인사권자에게 달려가 몇 달만 '방'을 더 쓰게 해달라고 매달렸다. 인사권자는 차마 내치지 못하고 허락해줬다.

직원들은 수군거렸다. 모양 사나울 뿐 아니라 후임에게도 폐가 됐기 때문이다. 그가 왜 '방'에 집착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결국 그는 몇 달 간 자신의 '방'을 지켰고, 후임 임원은 임시로 급조한 방에서 불편하게 지내야 했다.



그 휘하의 직원들도 불편을 겪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무래도 마주치기가 껄끄러웠다. 결재판을 들고 신임 보스를 찾아 가다 그를 보게 될까봐 피해 다니는 간부들도 있었다.

한 대기업은 사업부 헤드 B씨의 무능이 못마땅했다. 성과가 형편없었고 시장에서의 평판도 나빴다. 그러나 계약 기간이 남아있는 터라 나가라고는 못하고 그 자리에 다른 사업부장을 추가로 발령했다.



그만둬달라는 우회적인 압력인데, B씨는 꿋꿋하게 자리를 지켰다. 당장 그만둬도 살림은 문제가 없을 정도의 고액 연봉자임에도 그는 눈총을 감수했다. 2명의 사업부장 체제가 이어지면서 혼란과 불편이 적지 않았다.

사실 이런 상황에서의 선택은 가치관과 인성의 문제로 귀결된다. 그라고 왜 모를까. 다만 그 부끄러움, 낯 뜨거움 보다는 눈앞의 이익이 그에게 더 중한 것이다.

반면 존경스러울 정도로 염치를 차리는 사람도 있다. 다른 대기업 계열사의 사장 C씨는 회사에서 배정해 준 '에쿠스'를 취임한지 얼마 안 돼 반납했다. 운전기사는 나중에 형편이 좋아지면 다시 쓰겠다는 약속과 함께 내보냈다. 여비서도 일반직으로 돌렸다.


회사 사정이 그 정도로 어려운 건 아니었다. '오너'가 눈치를 준 적도 없었다. 그러나 그는 관계회사의 구조조정을 주도하면서 마음의 짐이 무거웠다고 털어놓았다. 이렇게라도 스스로 불편을 감수해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고 했다.

그 때 몇 달 동안 '방'을 지켰던 A씨는 그 후 공기업의 임원으로 영전했다. 당시의 몰염치가 주효했는지도 모르겠다.

B씨는 지금도 출근하며 일을 하고 있다. 갈수록 그가 관장하는 영역은 좁아지고 있지만 겉으로는 태연해 보인다. 아마도 그는 계약기간이 끝나는 내년까지 지금의 포커페이스를 유지할 것 같다.

회사차를 반납한 C씨는 요즘 주로 지하철을 이용한다. 커피를 스스로 타서 마시고 스케줄 관리도 혼자 한다. 공식 모임에는 조금 일찍 도착해서 남들보다 5분쯤 먼저 끝내고 나오는 게 습관이 됐다. 회사 차가 없는 걸 남들이 오해할까 봐, 그 오해가 회사와 오너에게 누가될까 봐 그렇게 할 뿐이다. 굳이 캐묻는 사람들에게 설명하는 일이 불편할 뿐, 나머지는 문제될 게 없다고 한다.

A씨가 지금 공기업에서 어떻게 지내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그의 과거 행적은, 그가 새 직장에서도 누군가의 불편을 자신의 이익으로 대치시키는 데 거리낌이 없을 것임을 말해 준다. 이보다는 소극적이지만 B씨 역시 '계약'의 틀에 숨어 자신의 이익을 굳건히 지켜내고 있다.

지금도 '염치'와 '이익'을 교환하는 아류의 거래들이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을 것이다. 거래의 비용은 전적으로 염치를 아는 다른 이들이 치르기 마련이다. 억울하고 부당할 때가 많지만, 그 불합리를 걸러낼 정교한 장치를 기대하기 어려운 것도 현실이다.

이쯤 되면 염치의 효용이 의심스러워 진다. 누가 뭐라고 한 적도 없는데 C씨는 괜한 고생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평판이 세월만큼 쌓일 것이다. 부끄러움을 돌아보면서 생기는 평정과 자긍의 향기가 그에게 보상으로 돌아올 것이다. '불고염치(不顧廉恥)'로는 절대 얻을 수 없는 이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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