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노트] MB와 보쌈집 주인

머니투데이 진상현 기자 2011.06.06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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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있는 분야를 고집할 것이냐, 기호에 따를 것이냐'

[청와대노트] MB와 보쌈집 주인


보쌈을 잘하는 식당이 있었다. 손님이 끓이지 않았다. 입소문을 타면서 손꼽히는 '맛 집'이 됐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손님이 하나둘 줄기 시작했다. 대신 주변에 생겨난 스파게티 집으로 사람들이 몰렸다. 눈 깜짝할 사이에 상황이 역전됐다. 보쌈집은 적자를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자리가 없어 돌아가는 손님을 걱정하던 때가 불과 얼마 전이었다.

가족들이 먼저 들고 일어났다. 우리도 스파게티로 전업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람들의 입맛이 변했는데, 보쌈으로 안 된다"는 얘기였다. 보쌈집 주인은 고민에 빠졌다. 그래도 보쌈에 자신이 있었다. 그렇다고 생계를 걱정하는 가족들의 목소리를 완전히 무시할 수도 없었다.



만약 보쌈집 주인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는 게 맞을까. 이명박 대통령도 요즘 이 보쌈집 주인과 같은 심정일지 모르겠다.

여권의 돌아가는 사정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4.27 재보선 패배, 민주당 지지율 약진 등으로 지지기반이 흔들리는 가운데 황우여 원내대표 등 여당의 새 지도부가 현 정부 철학과 상반되는 정책을 잇달아 내놓기 시작했다. 국민들이 원하는 정책으로 갈아타야 한다는 주장이다.



새 지도부는 추가감세 철회나 대학등록금 부담완화를 위한 '반값 등록금' 등 현 정부의 기조와 배치될 뿐 아니라 파격에 가까운 구상을 간판 정책으로 내세웠다. 부분적 전월세 상한제, 대부업체 최고이자율 인하는 물론 대기업의 소모성 자재 구매대행(MRO) 사업 진출 실태 조사에 직접 착수키로 했다. 친시장과 동반성장, 생산적 복지를 강조해 온 현 정부의 정책 기조에서 보면 하나 같이 '지나친 복지 확대' 또는 '반시장적 방식'으로 비춰질 수 있는 것이다.

명분은 '민심'이다. 현 정부 정책이 민심을 얻는데 실패했다고 보고 "민심을 떠받드는데 모든 정성을 다 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청와대 정서는 다르다. 오랫동안 고민하고, 잘 할 수 있는 것으로 승부를 내야 한다는 쪽이다. 국민 기호가 바뀐 것 같다고 해서 다른 정당과 유사한 정책을 쏟아내서는 '민심'을 되돌릴 수 없다는 판단이다.

보쌈 맛이 제대로 나고 있는지, 더 맛있게 만들 수는 없는지, 서비스에는 이상이 없는지 등을 점검하고 개선하는 게 더 현명하다는 얘기다. 또 보쌈만으로 손님을 끌 수 없다면 스파게티로의 전향을 고민할 것이 아니라 보쌈에 곁들일 수 있는 냉면이나 모밀국수 등 궁합이 맞는 다른 메뉴를 추가하려는 시도를 먼저 해보자는 항변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반값 등록금과 대학 구조조정 이슈가 있다면 이 정부가 잘할 수 있는 것은 구조조정일 것"이라며 "그걸 먼저 하는 게 국가적으로도 이롭고 결국 이 정부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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