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블랙홀' 그리스 사태, 3가지 시나리오

머니투데이 권다희 기자 2011.05.30 0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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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인사이트]

그리스발 유럽 국가부채 위기가가 안정세를 찾아가던 글로벌 금융시장에 파문을 더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채무재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시장의 시각과 채무재조정 불가론을 고수하고 있는 유럽 당국의 의견이 혼재 된 채 불확실성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 5월 구제 금융을 받을 당시만 해도 그리스는 국내 재정 개혁을 단행하고 시장에서 금리를 안정시켜 2012년부터는 시장을 통해 자금을 조달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진행된 현실은 정반대이다. 그리스의 국가 부채는 오히려 올해 말 국내총생산(GDP)의 154%인 3500억 유로까지 늘어날 것이라는 예상이다. 이로인해 현재 그리스의 10년물 국채 금리는 17%로 1년 전에 비해 2배 치솟았다. 모간스탠리에 따르면 조달금리가 4.5%여야 2013년 이후 정부부채비율이 하락할 수 있는데 턱없는 상황. 지난 20일에는 피치가 그리스의 신용등급을 3단계 강등하는 등 상황은 오히려 악화돼 가고 있다.

일단 유럽 정부들은 2013년 중순까지는 채권단이 손해를 입지 않게끔 하겠다고 공언해 놓은 상황이다. 그러나 갚을 능력보다 많은 채무를 지고 있는 그리스가 어떤 쪽으로든 난국을 타개해야 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현재 예측되는 그리스 사태 시나리오는 다음 세 가지 정도가 압축된다.



#시나리오 1-2012년까지 예정된 현 구제금융 프로그램 연장, 그러나 현실성 부족

채무재조정없이 기존 유럽연합(EU),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 프로그램을 연장하는 방식이다. 그리스는 비롯, 금융시장 모두에게 최선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높은 기회비용으로 인해 현실성이 점차 줄고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그리스는 지난해 5월 유로 회원국과 IMF로부터 각각 800억유로, 300억 유로를 2012년까지 3년 간 지원 받기로 했다. 대신 EU와 IMF는 재정긴축 등 강력한 조건을 부과했다. 실제 그리스의 재정적자는 2009년 GDP 대비 15.4%에서 지난해 10.5%로 다소 줄었다. 올해 재정적자는 GDP 대비 7.4%로 전망된다.


그러나 재정적자를 줄이는 데 대한 기회비용이 만만찮다.

우선 그리스 경제의 회복세 둔화가 불가피하다. EU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그리스는 -3%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4.2%보다는 개선된 수준이나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9년 -2% 보다 악화된 성적이다.

재정적자를 줄이느라 정부 부채는 오히려 늘어났다. 그리스의 공공부채는 2009년 GDP 대비 127.1%에서 지난해 142.8%로 증가했으며 올해는 150.2%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실업률도 올해 14.8%에서 내년 15%로 상승할 전망이다. 여기에 그리스의 지난해 물가상승률은 4.7%로 역내 국가들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그야말로 최악의 경제 상황이다.

이렇게 악화된 경제로 인해 그리스 내부 반발도 거세지고 있다. 그리스 공공부문을 대표하는 공공노조연맹(ADEDY)은 정부의 민영화 프로그램과 추가 긴축 조치에 항의하며 다음달 24시간 총파업을 실시하겠다고 예고했으며 민간부문 최대 노조단체인 노동자총연맹(GSEE)도 ADEDY와 연대 파업 의사를 밝혔다.

구제금융 프로그램이 제시한 목표를 그리스가 기한 내에 달성하지 못할 가능성도 높다. 그리스 정부가 지난 2월 지난해 재정적자를 GDP 대비 9.4%로 발표했으나 최근 10.5%로 상향조정하며 이러한 우려는 한층 고조됐다. 그리스 정부는 23일 국영 기업 민영화를 가속화하겠다고 밝히는 등 민영화로 500억 유로를 조달하라는 주변 유럽국과 IMF의 압력 속에 쓸 수 있는 모든 카드를 모조리 빼들었다. 그러나 매각 자산 가격이 분명치 않고 그리스 내 정치적 반대를 야기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민영화 역시 속 시원 한 해결책은 못된다.

궁극적으로 이 방안은 그리스의 지급 불능 문제를 전혀 해결하지 못한다. 구제금융 프로그램이 종료되는 2013년부터 3년간 그리스 정부가 갚아야 하는 채무는 787억 유로로 2010년 5월부터 2012년까지 상환해야 하는 부채 707억 유로보다 많다.

#시나리오 2-'비엔나 이니셔티브' 시장에 여파를 덜 미칠 수 있는 가벼운 수준의 채무재조정

지원 프로그램 연장 방안의 실현성이 점차 줄어들며 부각되는 대안 중 하나가 동유럽권 부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은행들이 자발적으로 채무 만기를 연장했었던 '비엔나 이니셔티브' 스타일의 조정 방식이다.

최근 채무재조정을 완강하게 반대해 온 유럽중앙은행(ECB) 측 인사들이 이 방식에 대한 긍정적인 의견을 조심스럽게 내놓고 있다.

호메 마뉴엘 곤잘레스 파라모 ECB 집행위원은 26일비엔나 이니셔티브 스타일의 채무 만기 연장 프로그램이 그리스 문제를 푸는 데 '긍정적'이라고 밝혔다. 파라모 위원은 이날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가진 한 강연에서 "물론 이는 해결책의 일부분일 뿐이겠지만 비엔나 이니셔티브는 자발적이고 민간 부문의 이해를 반영한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이니셔티브"라고 말했다.

에발트 노보트니 ECB 정책위원 겸 오스트리아 중앙은행 총재 역시 같은 날 그리스에 직접적으로 적용할 순 없겠지만 비엔나 이니셔티브가 '흥미로운 모델'이었다는 발언을 내놨다.

앞서 올리 렌 유럽연합(EU) 경제금융담당 집행위원이 그리스 문제 해결책 중 하나로 조심스럽게 거론했던 대안도 비엔나 이니셔티브 형태였다. 렌 집행위원은 당시 "채무재조정을 하지 않더라도 민간 채권단·은행 등 금융기관들의 익스포저를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비엔나 타입의 이니셔티브가 고려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신용부도스왑(CDS) 급등이나 신용평가사에 의한 신용등급 강등을 야기하지 않는 만기 연장 합의가 가능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비엔나 이니셔티브는 금융위기가 한창 고조됐던 2009년 경제위기로 침체됐던 동유럽 금융권을 돕기 위해 고안된 프로그램으로 이탈리아 유니크레디트, 프랑스 소시에떼제네랄, 오스트리아 라이파이젠 은행 등 유럽 대형 금융업체들과 ECB, 유럽부흥개발은행(EBRD), 유럽 내 정부 감독당국들 간 이뤄진 합의다.

합의 아래서 동유럽에 법인을 둔 유럽 대형 은행들은 동유럽 국가에서 실시했던 대출 등 익스포저를 롤오버 하고, 동유럽에서 사업을 지속하는 것을 조건으로 EU와 IMF로부터 재정지원을 받아 동유럽 지점의 자본을 확충했다.

비엔나 이니셔티브 방식의 장점으로는 그리스 정부가 일단 시간을 벌 수 있으며 유로 국가들이 납세자들의 돈을 더 끌어오지 않아도 돼 정치적 압력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점이 있다.

신용 등급이 추가 강등될 위험도 다른 종류의 채무재조정 방식보다 상대적으로 적다. 모든 종류의 채무재조정을 완강하게 반대하고 있는 ECB가 찬성할 여지가 그나마 있는 방안이다.

그러나 비엔나 스타일의 지원도 분명한 한계가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26일 "비엔나 이니셔티브 방식은 그리스가 재정 상황을 개선할 시간을 벌 수 있게 해줄 것이고 ECB를 만족시킬 순 있겠지만 그리스의 채무를 줄일 수는 없다"며 이 방식이 지급 능력 문제를 궁극적으로 다루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코노미스트는 또 은행, 정부기관 등 이해당사자 간 공조가 어렵다는 점도 이 방식의 단점으로 꼽았다.

또 하나의 그리스 해법으로 거론되는 방안인 '연성(soft)' 채무재조정(리프로파일링)은 자발적으로 보유 부채의 만기를 연장한다는 공통점이 있으나 2가지 점에서 비엔나 이니셔티브와 차이가 있다. 우선 리프로파일링의 경우 채권단을 설득해야 해 은행보다 합의를 이뤄내기가 까다롭다. 또 이 방식은 그리스 국채의 순 현재가치를 20~25% 감소시킬 가능성이 있어 추가 신용등급 가능을 야기할 수 있다.

#시나리오 3- 그리스 국가부도, 헤어컷 등 고강도 채무재조정 단행

현재로서는 유로회원국들의 반대가 커 현실성이 적으나 그리스의 상황이 국가부도를 앞서 겪었던 2001년 아르헨티나만큼이나 악화 돼 있어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국가 부도(sovereign debt default)란 국가가 국채를 만기 시 상환하지 못하는 사태를 말한다. 구체적으로는 국가가 미리 지불유예를 선언하는 모라토리엄이나, 국채만기가 찾아왔음에도 빚을 상환하지 못하는 미결제 등의 형태로 발생한다.

최근 발생한 대규모의 국가 부도로는 1998년과 2001년 각각 지불유예를 선포했던 러시아와 아르헨티나의 경우가 있다. 에콰도르(1999년), 우크라이나(2000년)도 각각 지불유예와 미결제를 겪었다.

국가부도 발생 후 단행하는 채무재조정에는 만기연장, 부채감축(헤어컷), 현금지급 등의 방식이 있다. 가장 기본적인 채무조정인 만기연장은 통상 10년 이상인 장기채로 채권을 교환하는 것이다. 당시 러시아는 3~15년, 아르헨티나는 최대 42년을 연장했다. 헤어컷은 가장 강도 높으며 채권단의 손실을 발생시키는 방식이다. 러시아와 아르헨티나에서는 60%의 부채가 감축됐다. 아르헨티나의 경우 채무조정 당시 채권단의 채무 조정 참가율을 높이기 위해 미지급 이자를 채권단에게 현금으로 지급하기도 했다.

국가부도 발생 후 본격적인 채무조정을 시행할 경우 그리스의 부채 부담이 뚜렷하게 줄어들게 된다는 게 앞의 두 경우와 가장 큰 차이다. 그러나 CDS가 급등하고 신용등급이 강등돼 조달 금리가 높아지며 국제 금융시장으로 돌아오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러시아의 경우 모라토리엄 선언 이후 국제금융시장에 돌아가는 데 7년이 걸렸으며 아르헨티나는 사실상 지금까지도 시장 진입이 막혀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국가부도 후 위험이 전염될 수 있다. 영란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1970년 이후 있었던 국가부도 중 60% 이상이 은행위기를 동반했다. 경제적 상황 악화와 함께 정치적 소요도 발생하게 된다.

현재 유럽권이 그리스 부도시 가장 우려하는 것은 후자인 전염 가능성이다. 위기의 불길이 이탈리아, 벨기에 등 중심권으로 번질 경우 유로존뿐 아니라 글로벌 경제 모두 공멸할 수 있다. 유럽 위기가 리먼브라더스 파산보다 더한 글로벌 금융위기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이 때문이다.

이에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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