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맘들이 외제 유아용품만 찾는 이유

머니투데이 최은혜 기자 2011.04.24 10:01
글자크기

분유·기저귀·장난감·물티슈…"믿고 쓸 만한 게 없다"

↑인터넷 육아 커뮤니티에 올라온 회원의 글.↑인터넷 육아 커뮤니티에 올라온 회원의 글.


생후 6개월 된 딸아이를 키우는 진명선(31·서울 마포구)씨는 올 초 황당한 일을 겪었다. 진씨는 여건 상 모유 수유가 힘들어 분유를 먹이고 있었다. 출산한 산부인과에서 판촉용으로 줬던 것과 똑같은 종류의 국내제품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아기에게 젖병을 물리려던 진씨는 깜짝 놀랐다. 우유 속에 검정색 비닐 테이프 같은 이물질이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진씨를 더욱 당혹스럽게 했던 건 분유 제조업체 측의 반응이었다. 진씨가 업체에 전화해 이 같은 사실을 알리고 항의하려 하자 업체 관계자는 자세한 상황을 알려고 하지도 않고 대뜸 "분유 한 박스 보내드리겠다"고 말했다. 진씨는 "내가 마치 공짜 분유 몇 통 얻으려는 사람인 것처럼 대해 몹시 불쾌했다"며 "제품의 품질은 물론 사후 관리 태도에서 완전히 신뢰를 잃었다"고 말했다.



분유를 바꾸기로 결심한 진씨는 정보를 얻기 위해 인터넷 검색을 하면서 가슴이 답답해졌다. 국내 업체에서 제조하는 분유들은 거의 해마다 위생상의 문제를 일으켜왔다는 걸 알게 돼서다. 공식적으로 보도된 것 말고도 온라인 육아 커뮤니티 등에서는 국산 분유를 먹이다 이물질이 나왔다는 글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결국 고민 끝에 진씨는 그나마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독일산 수입 분유로 바꿨다.

국내산 분유에 대해 불안감을 나타내는 이들은 진씨 외에도 많다. 이물질이나 세균 검출 등 위생 상 문제가 제기된 일이 한 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달만 해도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이 조제분유에 대한 정기 수거검사 결과 매일유업 (8,370원 ▲20 +0.24%)의 프리미엄 브랜드 분유 제품에서 식중독을 일으킬 수 있는 황색포도상구균이 검출됐다고 발표해 많은 부모들이 불안에 떨었다. 이 업체는 지난 2009년에도 대장균군과 엔테로박터사카자키균이 검출된 바 있다.



남양유업 (643,000원 ▼16,000 -2.43%)과 파스퇴르 역시 각 2006년과 2008년에 사카자키균과 대장균군이 검출됐다. 세 업체가 생산하는 제품들은 국내에서 소비되는 분유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제품에 문제가 지적된 뒤 업체들의 대응방식도 문제다. 그 동안 이물질 검출 논란이 빚어지면 문제를 덮는 데 급급할 뿐 문제의 원인과 실태를 정확히 공개하지 않으려 했다. 지난달 식중독균 검출로 곤혹을 치렀던 매일유업은 대표가 직접 사과 동영상을 제작해 배포하기도 했지만 소비자들의 불만이 쉽게 가라앉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난해 7월 국회 보건복지가족위원회 소속 손숙미 의원(한나라당)이 농림수산식품부에서 제출받은 '분유 수거검사 부적합 조치내역 보고서'에 따르면 2006년부터 4년 동안 부적합 판정을 받은 프리미엄·유기농 분유 제품의 수거율은 평균 44.9%로 나타났다.


사카자키균이 검출된 건에 대해서만 매일유업이 52%(2007년), 99%(2009년), 남양유업이 52%(2006년)로 비교적 높은 회수율을 보였다. 그러나 대장균군이 검출됐을 때는 매일유업이 1~3%(2008·2009년), 파스퇴르가 2%(2008년)로 회수율이 미미했다.

반면 2008년 대장균군이 검출됐던 미국 애보트사는 유통된 제품의 60%를 회수했고 2006년 금속성 이물질 검출로 논란을 빚었던 미국 미드존스사는 자발적 리콜을 실시해 85%를 회수한 뒤 국내 분유 시장에서 아예 철수했다.



이에 대해 국내 한 분유 제조업체 관계자는 "업체 측이 검사 기관에 대해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검사기관은 '균이 검출됐다'라고만 발표할 뿐 실제로 그것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이 어느 정도인지에 대한 설명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때문에 검사기관의 조치를 적극 수용하기 힘들다는 얘기다.

그는 "분유도 공산품이다 보니 불량률이 0일 수는 없는데도 국내 소비자들의 기대치가 높아 극히 미미한 수준만 검출돼도 큰 타격을 받게 되는 측면이 있다"면서도 "하지만 제조업체는 무조건 위생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게 원칙이긴 하다"고 말했다.

국내 소비자들이 불만을 갖는 것은 분유뿐만이 아니다. 기저귀와 장난감 등 국산 유아용품의 품질이 외국 제품에 비해 크게 떨어진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양희정(가명·39)씨는 유모차부터 장난감, 유아용 로션과 베이비파우더, 물티슈까지 전부 외국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 아기가 쓰는 제품은 특히 안전성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국산은 믿고 쓸 만한 게 없어서"다. 유일하게 국산으로 사용하던 물티슈마저 얼마 전 곰팡이가 발견됐다는 얘기에 수입산으로 바꿨다.

양씨는 또 "해외 브랜드가 디자인이 예쁘면서 종류도 훨씬 다양한데다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직접 구매할 경우 국산 브랜드보다도 저렴할 때가 많다"고 설명했다. 그는 "외제를 맹신하고 싶지 않지만 국산 제품은 유아에 대한 연구·개발 없이 외국의 인기 제품만 카피(모방)하는 데 그치기 때문에 기능과 안전성에서 비교될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장난감도 마찬가지다. 엄마들 사이에 인기가 많아 일명 '국민 장난감'으로 알려진 제품들은 거의 외국 제품이다. 김성제(31·부산 해운대구)씨는 "국산인지 외제인지 살펴보지 않았는데 엄마들이 대부분 좋다고 인정하는 장난감들로 구입하고 보니 모두 외국 제품들이었다"고 말했다.



이혜진(28·서울 강동구)씨는 "일본 대지진 사태로 방사능 오염이 우려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많은 엄마들이 왜 일본산 기저귀를 사재기하러 마트로 달려갔는지 생각해볼 일"이라며 "국산 제품에 대해 그만큼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영맘들이 외제 유아용품만 찾는 이유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