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의 야채는 이제 끝났다" 마지막 영농일지

머니투데이 홍찬선 기자 2011.03.29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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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하금지 비관 농민 자살.. 유족 "원전이 죽였다"

↑자살한 남성이 열심히 재배한 양배추가 밭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출처=아사히신문<br>
↑자살한 남성이 열심히 재배한 양배추가 밭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출처=아사히신문


후쿠시마현 스가카와시에서 지난 24일 아침, 양배추 농사를 짓던 남성(64)이 자택에서 목을 매어 자살했다고 아사히신문이 29일 보도했다. 대지진과 쓰나미의 자연재해는 이겨냈지만 방사능이라는 인재(人災)의 장벽은 넘지 못한 것이다.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로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산 채소 일부에 대해 ‘섭취제한’ 지시를 내린 다음날이었다. 대지진과 쓰나미의 피해에 낙담하면서도 열심히 키운 양배추 출하에 의욕을 보였던 희생자의 유족은 “원전에 피살됐다”며 정부와 도쿄전력을 비난했다.



자살한 남자는 지진으로 자신이 살던 집과 창고가 파괴됐다. 다만 밭에 약 7500포기의 양배추가 무사했다. 시식도 끝내고 수확을 하기 직전이었다. 유족에 따르면 이 남성은 21일에 시금치 등의 출하정치 조치가 내려진 뒤에도 “상황을 보면 양배추는 조금씩이라도 출하해야지”라고 말하며 창고 수리 등 필요한 준비를 했다.

하지만 23일에 양배추의 섭취제한 지시가 내려지자 남성은 목이 메는 듯 헛기침을 되풀이했다. “후쿠시마의 야채는 이제 끝났다.” 남성의 차남(35)은 선친이 되풀이하던 그런 중얼거림을 기억하고 있다. “지금까지 혼신의 힘을 기울여 키워온 것을 잃게 되는 기분이 들어 심한 상실감에 빠진 것”이라는 설명이다.



자살한 남성은 30년 이상 유기농 재배에 나서 스스로 개발한 퇴비 등으로 토양개량을 계속해 왔다. 양배추는 10년 가까이 종자 개량 등도 배워 이 지역에서는 재배되지 못하는 고품질의 종자를 생산해내는데 성공했다. 농협에서도 인기가 높아 이 지역 초등학교 급식에 양배추를 납품할 수 있었다. “어린이들이 먹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더 신경 써서 재배해야 한다”, 그렇게 말하면서 안전한 야채 만들기에 심혈을 기울였다고 한다.

유서는 없었지만 영농일지는 23일까지 쓰여져 있었다. 장녀(41)는 “이런 상태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농가는 모두 불안해하고 있다. 이제 더 이상 아버지같은 희생자가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고 울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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