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강이 세력다툼을 벌이던 19세기 말 고종 재위 시에는 중국, 러시아, 일본의 전쟁터가 되었고, 급기야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기도 했던 슬픈 역사는 누구나 다 아는 사실입니다.
해방 후 이데올로기의 악다구니 속에 갖고 있던 쪽박마저 동족전쟁으로 부러뜨리고, 잿더미 속에 남은 것은 빈손뿐이었습니다. 아침이면 끼니를 구걸하는 사람이 많았고, 자존심을 지키려고 온 가족이 연탄가스나 복어알을 먹고 자살한 뉴스가 지면을 장식했습니다. 당시 한국인들에게 희망은 '동방의 등불' 그 이름 속에서만 타오르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한 해 예산을 넘는 비용과 세계은행의 부정적 평가, 일부 장관의 반대와 숱한 데모를 물리치고 1970년에 건설한 경부고속도로. 기술도, 기술자도, 자금도, 자원도 없이 경제규모에 비추어 타당성이 없다는 세계은행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건설업, 중화학공업, 인프라 구축 등 산업발전과 국방을 위해 필요하다는 신념으로 일본에서 자금을 구해 1973년에 가동한 세계 3위의 포항제철(포스코 (403,500원 ▲4,500 +1.13%)). 1970년대 초 더이상 노동집약적 산업에 매달릴 수 없다는 판단으로 큰 공장과 막대한 자금, 훈련된 경영진과 철강업의 뒷받침이 필요한 조선·전자·철강·기계·화학산업 등 중화학공업으로의 과감한 경제체질 전환.
마이클 슈먼은 박정희 대통령의 통찰력을 보여주는 예를 이렇게 들었습니다. 의지의 대통령과 함께 난관을 돌파하며 성취의 맛을 본 한국인들은 딸깍발이의 갈지자걸음을 멈추고, 목표가 주어지면 주저하지 않고 단숨에 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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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으로 전쟁의 포화 속에 민둥산이 되어버린 국토를 울창한 삼림으로 바꾸겠다며 한 그루 나무 심기를 50여년. 지금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은 한때 민둥산 투성이였다는 말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며, 한국인의 끈기에 감탄합니다.
"내 한 몸 어떻게 되더라도, 자식만큼은…." 한국인의 교육열은 5000만명이 못되는 인구로 중국, 인도 다음으로 많은 유학생을 미국에 보내고 있고 중국, 러시아, 캐나다, 호주, 싱가포르 등 도처에 가장 많은 유학생을 보내고 있습니다. 또 제가 만난 외국 기업가들은 이구동성으로 한국인 직원들의 성실성을 칭찬합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부러워하는 것들이지요.
6년 연속 세계 1위의 인천공항 서비스 등 세계적 수준의 공항, 국제적 화물처리 능력을 갖춘 부산항 등 항만, 전국을 종횡으로 연결하는 고속도로, KTX 같은 열차설비 등 뛰어난 물류네트워크는 이제 동북아시아의 중앙에 위치한 한국을 숙명적 불행의 씨앗이 아닌 경제적 축복으로 변모시켰습니다.
세계경제의 20%를 차지하는 동북아시아. 세계은행은 2020년 30%의 성장을 전망하고 있으며, 글로벌 마켓의 세련된 테스트시장이 된 한국은 타고르의 시처럼 '동방의 밝은 빛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