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면칼럼]말러와 정명훈이 내게 말하는 것

머니투데이 박종면 더벨대표 2011.01.17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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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오페라나 교향곡 같은 클래식음악 연주회장에 가면 숨소리조차 죽여가며 들어야 하지만 19세기 유럽의 오페라극장들은 유명 가수나 연주자의 경우 팬클럽까지 둘 정도로 늘 시끌벅적했습니다.

클래식음악 연주회장이 종교행사장처럼 엄숙하고 조용하게 된 것은 구스타프 말러(1860~1911년)라는 보헤미아 태생의 작곡가 겸 지휘자 때문이었습니다. 소음을 혐오한 말러는 연주회장에서 팬클럽을 추방했고 작품 사이에 치는 박수도 금지했습니다. 늦게 온 사람들은 들여보내지도 않았습니다.
 
이처럼 현대 클래식음악 감상의 규범을 마련한 말러는 100년이 지난 지금 브람스나 베토벤을 능가하는 가장 인기 있고 중요한 교향곡 작곡가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더욱이 지난해가 말러 탄생 150주년이었고, 올해는 서거 100년이 되는 해여서 지금 세계 클래식음악계는 그야말로 말러 열풍입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닙니다. 정명훈의 서울시향은 지난해와 올해 2년에 걸쳐 1번부터 10번까지 말러 교향곡 전곡 연주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마에스트로 정명훈은 피아니스트였던 자신이 지휘자로 변신한 것은 말러 음악을 연주하기 위해서였다고까지 고백합니다. 그래서인지 요즘 서울시향의 말러 연주를 들어보면 정명훈이 마치 말러의 아바타가 된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로 완벽합니다. 예전 브람스나 베토벤 교향곡 전곡 연주 때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거장은 왜 말러를 연주하기 위해 지휘자가 되었다고까지 말할까요. 말러의 음악과 말러라는 인간 그 자체, 둘 다 때문일 것입니다. 말러의 음악은 그의 인생을 떼어놓고선 얘기할 수 없습니다.
 
말러는 평생 죽음을 달고 살았습니다. 여덟 동생들의 잇단 유아기 병사, 음악을 공부했던 동생의 권총 자살, 어머니의 이른 죽음, 그리고 그가 가장 사랑한 맏딸 마리아의 다섯 살 나이의 죽음 등이 그것입니다.
 
알마라는 미인 아내를 얻지만 결혼생활의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알마는 음악에만 몰두하는 남편에게 넌더리를 내면서 평생 젊은 남자들만 쫓아다녔습니다. 알마는 말러가 삶과 죽음의 문턱을 오갈 때도 바람을 피웠고, 그녀의 연하 애인은 말러를 직접 찾아와 알마를 자신에게 달라고까지 했습니다.
 
치료가 되지 않았던 치질과 결국 죽음에까지 이르게 한 심장병은 말러를 평생 괴롭혔습니다.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받는 차별대우와 소외도 컸습니다. 스스로의 고백처럼 그는 언제나 불청객이었고,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했습니다.
 
이런 역경 속에서 탄생한 게 말러의 음악입니다. 말러의 음악에는 듣는 이를 강하게 끌어당기는 자력 같은 게 있습니다. 인생의 의미를 찾아 나서는 여정의 시작이 되기도 합니다. 사랑과 에로스의 음악인 동시에 죽음과 타나토스의 음악입니다. 천박하지만 고상하기도 하고, 독창적이고 아름답지만 진부하기도 합니다. 또 정명훈의 말대로 말러의 음악은 세계를 표현하고, 하늘을 바라봅니다.
 
영국의 클래식 음악평론가 노먼 레브레히트는 '왜 말러인가'라는 책에서 말러의 삶과 음악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를 몇 가지로 정리했더군요."모든 사람에게는 무한한 가능성이 열려있다. 인생을 제 궤도에 올릴 때까지 사랑은 미뤄둘 수 있어야 한다. 끊임없이 노력하는 자세, 그것이 전부다. 패배자가 되더라도 품위를 잃지 말아야 한다. 불가능은 그저 어떤 일이 조금 오래 걸릴 것이라는 의미일 따름이다."
 
2011년 새해 당신이 상실과 실패의 고통에 놓인다면, 배신의 우울과 병과 죽음의 공포로 시달린다면 말러의 음악을 찾으십시오. 당신의 안식처가 되고 피난처가 될 것입니다. 100년의 세월을 넘어 말러와 정명훈이라는 두 거장이 우리에게 큰 선물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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