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로 돌아오면 정문 근처에 커피집들이 있다. 몇년 새 생긴 것들이고 세계 어디에 갖다놓아도 손색이 없는 세련된 치장을 자랑한다. 학생들로 붐비고 '테이크아웃' 손님까지 있어 쉴새 없이 커피를 팔고 있다. 이중 어느 집에서 카페라테 한 잔을 마신다. 품질은 나쁘지 않지만 세계 최고는 분명히 아니다. 가격은 순대국과 같은 4000원 내외고 아마도 세계 최고일 것이다.
카페라테가 국민소득 2만달러에서 소비자들이 찾기 시작한 음식이라면 순대국은 국민소득 2000달러 시절의 성장산업이었고 이제 사양단계에 놓여 있다. 높은 품질의 제품을 내놓는 경쟁자가 이미 많아서 경쟁이 치열한데, 수요는 더이상 늘지 않거나 오히려 감소하고 있다. 가격을 올리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 생산비용의 증가는 이익감소로 감수할 수밖에 없다.
이 점이 제조업과 다른 서비스업의 특징이다. 똑같은 커피를 팔아도 다방은 사양업이고 카페라테집은 성장산업이다. 즉 같은 업종이 성장산업이기도 하고 동시에 사양산업이기도 하다. 이 점은 서비스업의 성공에서는 '경영'과 '사람'의 역할이 절대적이라는 것을 시사한다. 전략적 선택이 부가가치를 결정하는 전제조건이고, 품질향상과 생산성 제고는 그 다음 요인이라는 의미다.
금융업은 서비스업의 하나다. 음식서비스업이 주는 이 시사점은 우리나라 금융업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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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적인 금융서비스 제공에서 우리나라 금융업의 품질은 세계 최고다. 미국이나 EU 어느 나라에서 외환을 교환하거나 송금을 해본 사람이라면 쉽게 수긍할 것이다. 은행, 증권사 등 지점 직원의 수준이나 친절도도 우리나라가 최고로 느껴진다. 또 각 증권사가 제공하는 인터넷 트레이딩 시스템도 세계 최고 수준의 품질을 자랑한다. 품질에 비해 가격도 싸다.
그런데 이른바 선진 금융기관으로 지칭되는 금융회사들이 창출하는 부가가치나 이익에 비하면 우리나라 금융회사는 영세기업이다. 왜일까. 블루오션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 금융업은 이미 사양단계에 들어선 부문에서 친절과 품질로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을 뿐이다.
반면 미국의 금융업은 금융위기 이전 엄청난 부가가치와 이익을 창출했다. 우리 금융업에 비해 인력이 우수하고 생산성이 높아서 가능했다는 것은 잘못된 진단이다. 미국 금융업은 위기 이전 사모펀드와 파생상품시장에서 부가가치를 창출했다. 품질이 우수한 것만은 아니었음이 금융위기로 증명됐다. 다만 먼저 그 성장시장에 종사했을 뿐이다.
우리 금융업의 가장 큰 숙제는 블루오션으로 선도적 진출이 왜 쉽지 않은지를 해결하는 것이다. 규제환경의 문제도 여전히 상당한 것으로 보이고, 금융업 내부 지배구조, 산업의 문화 문제도 있을 것이다. 쉽게 말해 복합적이다. 그러므로 풀기가 쉽지 않지만 그렇다면 시작은 규제환경에서 시작하는 것이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