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로 뭉친 3인의 '월향 스토리'

머니위크 이정흔 기자 2010.11.25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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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위크 커버]막걸리 대전/ 막걸리전문점 '월향'

지난 17일 오후 4시쯤 서울 마포구 홍대 인근의 막걸리전문주점 ‘월향'. 막걸리 한잔 걸치기엔 이른 시간임에도 벌써부터 가게 안이 꽤 북적거린다. 하나 둘 빈자리를 채운 손님들로 6시쯤 되자 어느새 빈 테이블 없이 자리가 꽉 차 있다.

비좁은 공간에 소박하게 꾸며진 분위기에 취해 이리저리 시선을 옮겨가며 구경하는 사이, 한쪽 벽면에 눈길이 머문다. 노회찬, 박근혜, 이문세, 이명세 등 유명인들의 이름이 쓰여진 막걸리잔들. 이곳 단골들에게 만들어주는 개인 막걸리잔이라고 한다. 주말에 이곳에서 막걸리를 마시려면 1~2시간 기다림을 각오해야 할 만큼 인기다.



지난 2월에 공식 오픈 한 이후 10개월 남짓. 1년이 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월향은 막걸리 애주가들에게는 한번쯤 꼭 들러야 하는 명소로 자리잡았다. 이렇듯 요란하지 않지만 차분하게 한 발짝씩, ‘막걸리 전도사’로서 앞장서고 있는 월향의 주역들로부터 '월향 스토리'를 들어보았다.





◆호프식 생막걸리 기술에 의기투합

월향은 3인이 주축이 돼서 만들어졌다. ‘막걸리 디스펜서’를 개발하며 호프식 생막걸리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막걸리 장인 이상철 이사와 월향의 실질적인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이여영 사장, 그리고 월향의 미래에 기꺼이 투자하며 경영 자문을 맡고 있는 생활경제연구소 김방희 소장이 그 주인공.

이야기의 시작은 10년 전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느날 우연히, 지인들과 함께 막걸리 도가에서 ‘제대로 된 막걸리’ 맛을 본 이상철 천안양조장 이사가 막걸리에 ‘제대로 꽂힌(?)’ 것이다.

“도가에서 막 빚은 막걸리를 마셔 보니 당시 시중에서 유통되는 술과는 그 맛부터 차원이 다르더군요. 그제야 막걸리가 얼마나 맛있고 좋은 술인지 알게 됐고, 자연히 관심을 갖게 됐죠. 이 맛 좋은 술을 어디서나 똑같이 마실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 때문에 여기까지 오게 됐네요.” (이상철 이사)


생업도 팽개치고 막걸리 연구에 매달린 이 이사는 옛 문헌을 뒤지고 서울 탁주를 비롯해 막걸리 연구원들을 찾아 다녔다. 새로운 발효 기술을 연구하며, 신선한 막걸리를 유통하기 위한 방법도 궁리했다. 생맥주의 디스펜서처럼 일정하게 유지되는 냉장 온도에서 최적의 막걸리 맛을 내는 막걸리 디스펜서를 개발하고, 유기농 현미로 빚어 보통의 막걸리 영양소가 더 풍부한 ‘유기농 현미 막걸리’ 제조법에도 성공했다.

그러나 정작 그 다음부터가 막막했다. 특허출원에서부터 유통까지, 기술 연구에만 매달린 이 이사에게 조언을 해 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그는 무작정 대학 선배인 김방희 소장에게 전화를 걸었고, 그 인연이 생활경제 프리랜서 기자로 활동하는 이여영 사장까지 닿게 됐다. ‘막걸리보다 빠르게 전염되는 이 이사의 막걸리 사랑’에 전염된 두 사람은 그렇게 의기투합에 나섰다.

처음 세 사람은 ‘막걸리 판매’에 직접 나설 생각은 없었다고 한다. 더 맛좋은 막걸리를 더 많은 사람들이 맛 볼 수 있도록 기술을 연구하고, 길을 터주는 것까지가 그들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상과 현실의 거리는 생각보다 멀었다. 대형 할인마트 등에 연락해 보았으나 ‘밑천이 부족한 영세 사업자’로서는 높기만 한 진입장벽을 뚫을 길조차 요원했다.

궁리 끝에 그들은 ‘Direct Marketing(다이렉트 마케팅)’에 나서기로 뜻을 모았다. 누군가를 통하지 않고, 직접 사람들과 만나고 이야기를 들으며 ‘고객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막걸리가 대중화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부딪치기로 한 것이다. 막걸리전문점 '월향'은 이렇게 탄생했다.



◆시음회부터 막걸리 학교까지, 유쾌한 막걸리 실험소

월향에서는 ‘막걸리 아저씨’로 통하는 이상철 이사가 매일 아침마다 냉장차를 직접 몰고 천안 양조장에서 서울 홍대 월향까지 막걸리를 배달한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이 이사의 고집(?) 때문.

“지난해부터 막걸리 붐이 일었다고는 하지만 막걸리가 제대로 알려지기에는 이제 시작입니다. 특히 막걸리주점들이 잘 돼야 하는데, 아직까지 막걸리주점이 성공하기엔 현실적으로 열악한 게 사실이고요. 월향은 세상에 ‘성공할 수 있는 막걸리전문주점’의 모델을 보여주기 위해 만든 곳이죠. 그러니 '막걸리 맛' 먼저 담보가 돼야 하잖아요.” (김방희 소장)

실제로 월향에서는 ‘막걸리 대중화’를 위한 재미난 실험들이 현재 진행형이다.

중앙일보 기자 출신으로 생활경제 프리랜서 기자로 활동 중인 이여영 사장이 ‘얼굴 마담’으로 나섰다. 가게를 찾아 오는 손님들에게 막걸리를 소개하고 알려주는 것 외에도 그의 블로그(blog.daum.net/yiyoyong)를 통해 막걸리 알리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막걸리전문점을 운영하면서 겪었던 일들이나, 막걸리와 관련된 다양한 의견이 빼곡한 이 사장의 블로그는 곧 ‘월향 스토리(가제)’라는 책으로도 엮여져 나올 예정이다.

한 달에 한번 막걸리 학교도 운영한다. 막걸리의 유래에서부터 제대로 즐기는 법까지 ‘막걸리 문화’를 이끌어 가기 위한 작업이다. 이 사장의 블로그에 안내 공지가 나가며, 매번 10여명 정도의 사람들을 모아 이상철 이사가 직접 강의에 나선다.

막걸리 시음회 또한 자주 열린다. 지난 10월31일에는 최고의 술이라고 일컬어지는 싱글몰트위스키 ‘맥켈란’과 함게 ‘막걸리와 싱글몰트위스키의 만남’이라는 시음회를 진행하기도 했다. 싱글몰트위스키는 100% 맥아만을 증류한 몰트위스키 중에서도 한 증류소에서만 나온 귀한 술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최고로 평가 받는 브랜드가 바로 ‘맥켈란’이다. 말하자면 우리 술 ‘막걸리’가 세계적인 명품주와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인정 받고 있음을 말해주는 자리였던 셈이다. 월향은 앞으로도 맥켈란&막걸리 시음회를 3회 정도 더 준비하고 있으며, 그외에도 다양한 시음행사를 계획 중이다.

“지금까지 막걸리는 항상 ‘싸고 대중적인 술’이었어요. 그러나 막걸리가 세계적인 술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우리 술 막걸리의 우수성을 알아야 해요. 월향만 하더라도 유기농 현미를 재료로 이용하기 때문에, 다른 막걸리보다 값이 비쌀 수밖에 없어요. 맥켈란이 비싸고 귀한 술 인만큼 막걸리 또한 그만큼의 가치가 있는 술이라는 걸 알아주셨으면 해요. 이런 걸 대중들에게 이해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는 거죠.” (이여영 사장)

이런 시도들이 서서히 인정을 받으면서, 최근에는 막걸리 프랜차이즈전문점인 탁사발의 장경진 대표까지 가세했다. “아직까지 월향의 프랜차이즈화를 계획하고 있진 않지만 본격적으로 막걸리전문점의 성공 모델 구축을 위해 힘을 싣게 됐다”는 것이 이 사장의 설명이다. 1호점의 성공에 힘입어 현재는 월향 2호점 오픈도 준비 중이다.

“막걸리는 생활과 굉장히 밀접한 우리 술이에요. 농사일을 하던 중 새참으로 막걸리를 마시고, 공사장에서도 일의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막걸리를 제일 먼저 찾잖아요. 등산객들이 취할 걱정없이 마실 수 있는 술이기도 하고요. 그저 ‘먹고 죽자’고 마시는 술이 아니라 ‘적당히 분위기’를 돋워줄 수 있는 성인 음료인 거죠. 이런 막걸리의 진가를 알릴 때까지, 월향의 도전은 계속됩니다." (이상철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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