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300조 투자자금 흐르는 VVIP마케팅 격전지

머니투데이 반준환 기자 2010.11.17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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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사 VVIP마케팅 현장을 가다]-(하)서울 강남

서울 강남구 청담동 거리는 비싼 임대료에도 불구하고 증권사들이 밀집해 있는 지역이다. 성수대교 남단 교차로를 시작으로 갤러리아 명품관까지 800m 남짓한 거리에 4곳의 증권사가 있다. 먼저 IBK투자증권, 미래에셋증권이 등장하고 다음에는 한 건물에 입주해 있는 하나대투증권, 한국투자증권이 눈에 띈다.

주목받는 곳은 갤러리아 명품관 맞은편의 트리니티 플레이스 빌딩이다. 유리로 외벽을 장식한 건물이다. 연예인들이 종종 찾는 고급 쇼핑몰로 알려져 있으나, 금융기관 VVIP지점이 한데 몰려있는 마케팅 격전지이기도 하다.



건물 대부분은 증권사 VVIP점포가 차지하고 있다. 유진증권 (4,410원 ▲85 +1.97%)(3층)을 시작으로 대우증권 (7,430원 ▲20 +0.27%)(4층), 산업은행 청담PB센터(5층), 삼성증권 (37,500원 0.00%)(6층) 등 4곳 금융기관의 영업점이 있다. 적과의 동침이 따로 없다.

◇강남3구 증권사 점포 359곳..서울의 절반이
강남, 300조 투자자금 흐르는 VVIP마케팅 격전지


청담동에 있는 증권사 점포는 총 16곳. 이에 반해 구 전체가 청담동보다 지점이 적은 곳이 대부분이다. 도봉구(4)를 비롯해 중랑(4), 금천(7), 성북(10) 은평(11) 관악(12) 등 13개 구는 점포수가 15곳 이하다. 청담동 VVIP 시장에서 얼마나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정작 청담동도 강남3구(강남, 서초, 송파) 차원에서 보자면 지점이 많다고 할 수 없다. 서울에는 총 786곳의 증권사 지점이 있는데, 이 가운데 45% 이상이 강남3구에 자리 잡고 있다. 강남구에는 총 190곳, 서초구103곳, 송파구 66곳의 증권사가 있다.

대치동과 서초동에는 청담동보다 3배가량 많은 49, 46곳 증권사가 있고 역삼동에도 39곳의 점포가 있다. 사정이 이러다 보니 한 건물에 4~5곳 증권사가 몰려 입주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잠실 트리지움 아파트 상가에는 대우, 대신, 신한투자, 하나대투, 한화, 한국투자 등 6곳의 점포가 한데 있고 대치 하이마트빌딩에도 동부, 유진, 미래에셋, 삼성증권 등이 건물을 나눠 쓰고 있다.


◇300조 금맥 보유한 강남

증권사들이 강남에 너나 할 것 없이 뛰어드는 이유는 바로 돈 때문이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최소 300조원 이상의 유동자금이 흘러 다니고 있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일단 우리투자증권과 대우증권 그리고 삼성, 동양, 대신, 신한, 현대, 한국, 하나대투 등 9곳의 강남권 점포에서 보유한 고객자산만 115조원에 달한다. 점포 한 곳이 8조원을 보유한 곳도 있으며 2조~3조원 규모는 부지기수다.

이 밖에 은행 일반영업점은 제외하더라도 PB센터, 저축은행, 보험사 등에 맡겨지는 투자자산이 상당하다. 지난해 연말기준 전체 개인금융자산이 2000조 가량인데 이 가운데 20%가량은 강남에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오기도 한다.

김종설 센터장({우리 프리미어블루 강남센터)은 "강남권 거액자산가들의 경우 금융기관 한 두 곳에 모든 자금을 맡기는 경우가 드물다"며 "최소한 2~3곳, 많게는 10곳 이상 거래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한 증권사에 30억원을 맡긴 고객이라고 하면 적게는 100억원에서 많게는 1000억대 투자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경우가 대체적이라는 게 김 센터장의 지적이다. 여기에 유동화 할 수 있는 부동산 자산까지 포함하면 규모가 더욱 늘어난다. 강남이 금융권 VVIP 마케팅의 메카가 되는 이유다.

강남의 금맥은 두 줄기로 흐른다. 하나는 테헤란로를 따라 강남역에서 삼성동 나아가 잠실까지 연결돼 있고, 다른 하나는 서초동에서 시작해 양재, 도곡, 대치동으로 이어진다.

테헤란로는 자수성가한 VVIP들의 자금이 풍성하고, 대치동 라인은 전통적인 부촌으로 주거지 성격이 강하다. 자금규모와 적극적인 투자마인드를 보면 테헤란이 다소 앞선다.

증권사들은 보통 금융자산 3억원 이상이면 VIP고객으로 분류,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테헤란과 청담, 대치동에서 10억원 이상을 대상으로 하는 VVIP 마케팅이 활성화되고 있는 중이다.

마케팅은 주식영업에 기초를 둔, 전통적인 증권인력과 차별화된다. 적잖은 수가 은행권에서 경력을 쌓은 PB들로 구성되는데, 최근에는 내부인력 교육을 통한 충원도 많다.

◇VVIP 영업점, 일반영업점 8배 파워

증권사들이 VVIP마케팅에 주력하는 이유는 현재의 사업과 수익구조에 한계를 느껴서다. 온라인증권거래의 규모가 증가하면서 주 수익원이었던 주식 위탁거래에서는 큰 수익을 내기 어려워졌다.

채권과 펀드 등 각종 금융상품이 이런 공백을 메워왔으나 수수료 수익에도 한계가 생겼다. 고심하던 증권사들이 주목한 것은 자문형 랩이다. 운용능력이 뛰어난 투자자문사, 그리고 자금이 있으나 마땅한 투자처를 잡지 찾지 못한 고객들의 자금을 연결해준 상품이다.

고객에게 높은 수익률이 보장되자 판매수익에 운용보수 지급이 가능해졌다. 수익에 목마른 증권사들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물론 증권사들이 거액자산에 올인하는 배경을 자문형 랩으로 설명하기에는 불충분하다. 근본적으로는 투자형태가 간접투자로 계속 전환하면서 이제는 보다 많은 고객자산을 유치하는 게 증권사들의 '실력'이 됐다는 게 배경이다. 결국 얼마나 많은 VVIP 고객들을 확보하느냐가 성공의 열쇠가 됐다는 얘기다.

VVIP들의 자금력을 보면 고개가 끄덕여 진다. 올 5월 있었던 삼성생명 공모청약에는 수조원의 투자자금이 몰렸는데, 상당수가 강남 VVIP들이었다.

동양종금증권 전체에 2조4000억원 청약금이 유입됐는데, 골드센터강남지점 한 곳이 1060억원이었다. 전체 지점수(164곳)를 감안하면 이 지점이 일반영업점 8곳 이상의 역할을 해냈다는 얘기다. 다른 증권사도 이와 비슷했다.

◇명품 패션쇼, 해외탐방 투자 세미나, 프로골퍼PB 채용까지…

증권사들은 강남의 VVIP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특화부서와 전담 영업점을 늘리는 추세다. 우리투자증권은 최근 역삼동 강남 파이낸스 빌딩 14층에 프리미어 블루 강남센터를 오픈했다. 40명 이상의 자산관리 전문가를 배치한 초대형 점포다.

대우증권이 청담 트리니티 플레이스빌딩에 연 PB클래스 갤러리아점도 자산규모 30억원 이상인 고객을 위한 곳이다. 세무사, 변호사, 부동산 전문가 등 30여명이 금융종합 컨설팅을 제공하고 있다.

삼성증권은 거액자산가를 전담하는 SNI 점포가 있다. 강남 파이낸스점을 시작으로 신라호텔과 코엑스인터컨티넨탈 호텔에도 영업망을 구축했다.

이들의 서비스를 보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우리투자증권은 청담동 레스토랑 한 곳을 빌려 VVIP고객 패션쇼를 연 적 있다. 특이한 것은 고객들이 패션쇼 모델로 참여, 다음시즌에 유행할 옷을 직접 입고 보여줬다는 점이다. 물론 유명 디자이너들과 패션브랜드가 직접 제작한 명품이었다.

김석호 센터장(대우 갤러리아)은 "패션쇼 뿐 아니라 고객 자녀들이 해외 기업체의 인턴십을 체험할 수 있도록 돕기도 한다"며 "골프 프로암 대회, 인문학 세미나, 고급 스파서비스 등 품격높은 서비스가 많다"고 설명했다.

김 센터장은 투자조언을 받고 싶어하는 VVIP를 위해 지방출장도 종종 가는데, 미국 하와이까지 달려간 적도 있다고 했다.

장성철 지점장(동양 골드센터강남)은 "골프를 좋아하는 고객들이 고질적인 슬라이스를 고치기 위해 지점을 방문하곤 한다"고 말했다. 그는 거액 자산가의 골프선호도가 높다는 점을 고려, 아예 프로골퍼 출신 PB를 채용하기도 했다.

지점자체 '골프 클리닉'을 운영하는데, 스크린골프장을 하루 임대해 고객들의 스윙문제점을 고쳐주기도 한다.

물론 이런 서비스가 본질은 아니다. 그러나 지점에서 운영하는 고품격 상품과 결합해 고객의 만족도를 높이는 시너지 역할을 한다.

◇남이 모르는, 남들보다 빠른 VVIP 특화상품

VVIP지점에서 판매하거나 컨설팅해주는 금융상품은 크게 2가지로 분류된다.

우선 일반적으로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 있다. 최근 유행하고 있는 것은 VIP고객 1~2명이 요청하는대로 상품을 만들어주는 사모펀드(PEF)다. 증권사들이 좋은 투자상품을 확보했으나 운용규모가 50억~100억원 정도로 작을 때, 이를 전체 지점에 공모하지 않고 VVIP용 PEF로 전환하는 경우도 있다. 비상장주식투자 등 소규모 엔젤투자도 같은 형태로 이뤄진다.

일반 투자자들보다 빨리 접할 수 있는 상품도 많다. 예컨대 중국투자펀드, 브라질 국채, 자문형 랩 등이 대표적이다. 물론 증권사 전 지점에서 함께 출시하는 것도 있다. VVIP지점은 그러나 고객들이 중요한 신상품을 보다 빨리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금융상품 개발, 투자정보 부서와 VVIP지점의 연계가 잘 이뤄지는 덕이다.

박경희 지점장(삼성 SNI강남파이낸스)은 "시장에 대한 투자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매일 오전 7시30분부터 국내외 전문가를 불러 조찬세미나를 연다"며 "투자자들이 요청할 때는 직접 방문해 프리젠테이션을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VVIP 시장의 특성을 고려한 상품이 많다는 점도 특징이다. 예컨대 재산을 자식에게 증여, 상속하려는 이들을 위한 절세, 감세상품이 있다. 우리투자증권이 하고 있는 미술품 투자 서비스는 예술에 대한 취향과 자산증식을 동시에 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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