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농심 담긴 '합격사과'를 아시나요?

머니투데이 원종태 기자 2010.11.09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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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A백화점 지하 식품매장에는 개당 무려 9000원짜리 사과가 등장했다. 일반 사과에 비해 3∼4배나 비싼 데는 이유가 있다. 이 사과는 일명 '합격사과'로 통한다.

낱개 포장한 사과 포장지에는 이런 문구가 써있다. "2010년 여름 곤파스로 인해 사과나무는 쓰러지고 대부분의 사과는 떨어졌습니다. 농민들은 큰 낙심에 빠졌지만 끈기 있게 사과를 키웠습니다...(중략) 어려운 환경을 이겨낸 사과를 가지 채 드립니다."



태풍의 위세에도 나무에서 떨어지지 않은 사과를 열흘 앞으로 다가온 수능 수험생들을 겨냥해 '합격사과'로 선보인 것이다. 3년 만에 몰아친 태풍으로 경기 충청권 일대 사과농장들은 올해 유난히 작황이 좋지 않다고 한다. 농가별로 지난해대비 10∼20% 수준의 작황에 그친 곳까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A백화점은 바로 이 점에 착안해 피해 농가를 위해 '합격사과'라는 묘안을 냈다.

또 다른 B백화점에서는 '합격'(合格)이라는 글자가 선명한 다른 종류의 '합격사과'를 팔고 있다. 합격이라는 한자가 새겨진 스티커를 사과에 붙여놓고 사과가 다 익은 후 스티커를 떼면 선명하게 글자가 새겨지는 원리다. 일일이 사과에 스티커를 붙여야 하고, 스티커가 떨어지는 경우도 많아 일반 사과에 비해 한결 손이 많이 가고, 키우기도 어렵다. 이 사과도 일반 사과보다 2∼3배 정도 비싼 가격이다.



사실 합격사과는 이미 일본 아오모리현에서 20년 전 등장한 아이템이다. 그런데도 백화점 합격사과 마케팅이 주목받는 이유는 그 배경이 농가의 시름을 덜어주려는데 있기 때문이다. 올해는 3년만의 태풍으로 유난히 과일 작황이 좋지 않아 농민 시름이 어느 해보다도 깊다.

하지만 수능이 열흘 앞으로 다가왔는데도 정작 합격사과 판매량은 예년에 비해 훨씬 낮은 수준이다. 합격사과는 11월18일 수능시험이 끝나면 그 순간 '상품 가치'를 잃는다. 일반 사과와 똑같은 취급을 받으며 똑같은 가격으로 판매된다. 태풍 속에도 꿋꿋했던 농민의 마음과 수험생들의 건승을 기원하는 마음이 포개져 올해는 합격사과가 재고 없이 모두 팔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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