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프로젝트의 리더 스티브 모핏은 '런던사람 20%를 먹여살리는 것은 문화·예술산업'이라고 단언했는데 해마다 수천만 명이 찾는 웨스트엔드의 뮤지컬과 대영박물관들을 보라는 거죠. 실제로 1인당 문화예술 소비규모를 따지면 영국은 OECD국가 가운데 톱2에 들어갑니다. 스티브 모핏은 1964년부터 시작된 영국정부의 문화예술 투자가 수요대상이 명확하지 않았던 탓에 참담한 실패로 끝난 것을 거울삼아 2002년부터는 미국 교육학자 켄 로빈슨의 제안을 받아들여 런던의 외국인 자녀 등 하위 10%를 미래 런던의 주역으로 탈바꿈하기 위한 시동을 걸었다고 하는데 무섭습니다. 지난 9년간 그 프로젝트를 체험한 아이들이 1만2800개교, 94만여명에 달한다니. 아프리카 출신 한 아이는 화가들에게서 피카소 수업을 듣고 1년이 지난 뒤 런던 잡지사의 도움으로 자기이름이 박힌 미술기사를 만들고 인도계 아이는 영화감독의 도움으로 장애인 올림픽 영화를 찍을 예정이라고 하고… 어떻습니까?
얼마전 모 고등학생들이 행주산성에 쓰인 화포를 재구(再構)했다는 뉴스 들어보셨나요? 아내하고 그 뉴스를 듣다가 너무 기분이 좋아 박수를 쳤습니다. 지금 한국에는 필자가 '창중'(創衆·Creative Mass)이라고 명명한 크리에이티브 피플이 수십만 명이 있습니다. 광고기획자, 디자이너, 큐레이터, 영화감독, 인디건축가, 게임설계자, 발명가 등등. 고무적이죠. 이들의 크리에이티브 파워가 앞으로 미래 한국의 길을 열 것인데 그런데, 그런데… 그런데 말이죠. 지금 정부나 지자체, 기업들은 이들이 가진 무한한 크리에이티브 에너지를 활용할 프로젝트를 돌리고 있는지 의문입니다. 국가브랜드위원회가 있다는데 소문으로만 듣는 도깨비불인지 그 실체를 모르겠고 전 문화콘텐츠진흥원에서 예술가들을 학교로 파견하는 앰배서더제를 운용한다고 들었는데 그것이 지속적으로 체계적으로 이뤄지고 있는지 그뒤 소식이 감감합니다.
먹을거리·볼거리 광풍이 불고 있는 한국은 당장 생색나고 과시적인 지역축제, 대규모 디자인 조형물, 단기 일자리 창출만 기획할 것이 아니라 이제라도 크리에이티브 원천을 만드는 국가-기업 연합 프로젝트를 가동해야 합니다. 그래야 컬처파워를 미래 경쟁력으로 키워가는 런던파워를 이길 수 있습니다. 어떤가요? 1∼2년 주기로 세상을 엎어치면서 기성세대를 왕따시키는 엄지문화, 트위터, 페북 광풍류의 다이내믹(?) 코리아보다 400년 전의 화포를 재구하고 창조의 저수지인 책을 뒤지면서 또다른 창조를 꿈꾸는 크리에이티브 코리아가 더 살 길이라고 생각지 않으시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