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식 해법 vs 미국식 해법

뉴욕=강호병특파원 2010.05.25 08:10
글자크기

[강호병의 뉴욕리포트]"범유럽 긴축..수술않고 마취하는 꼴"

독일식 해법 vs 미국식 해법


살이 쪄서 옷이 몸에 맞지 않게 됐다. 옷을 몸에 맞추는 방법은?

1. 밥을 굶어서라도 다이어트를 하고 운동을 해서 살을 뺀다- 독일
2. 작아진 옷을 버리고 헐거운 새 옷으로 갈아입는다 - 미국

유로존을 휩쓸고 있는 재정위기 탈출법에 대한 시각차를 비유하면 이렇다. 게르만인 특유의 보수적이고 완고한 성품의 발로일까. 독일이 추구하는 위기해법을 보면 '독일병정'이란 말이 실감난다. 독일식 어프로치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유로행군에서 한 사람의 낙오자도 있어서는 안된다(유로동맹 탈퇴 불허). 어렵고 힘들면 도와준다(구제자금 지원). 대신 가혹할 정도로 고통이 따르더라도 재활노력을 해서 스스로 일어서야한다(재정긴축, 구조개혁). 어렵다고 뭔가 노력해보지도 않고 처음부터 앰뷸런스 태워줄 수 없다(채무재조정 배제).'

구제자금 주면서 고금리, 구조개혁을 강도높게 요구했던 국제통화기금(IMF)과 행보가 비슷하다. 이 캠페인에서 독일은 "재정긴축, 근검절약" 깃발을 높이 들고 앞장서서 뛰고 있다.



이같은 독일식 어프로치는 미국에서 보면 전례없는 일에 도전하는 '무대뽀'다. 마틴 펠드스타인 및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 루비니 뉴욕대 교수 등은 이구동성으로 "극심한 경기침체를 감수하고서라도 재정적자를 줄이겠다고 덤비는 것 자체가 무모하다"는 반응이다.

역사적으로 성장없이 재정적자를 줄인 사례가 어디 있느냐는 것이다. 경기가 침체되면 세수가 줄기 때문에 아무리 지출을 줄여도 적자를 없애려는 노력이 도루묵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지출을 줄이면 줄일수록 경제는 침체압력을 받아서 세수감소라는 부메랑을 더 크게 얻어맞는다.

자체 환율정책과 수출이라는 카드를 쓸 수 없다는 것이 유로존에 묶여 있는 나라의 가장 큰 핸디캡이다. 우리나라가 98년 환란을 짧은 기간에 극복할 수 있었던 것도 원화가 큰 폭으로 절하되며 수출이 경기침체의 완충역할을 해줄 수 있었던 이유도 있다.


경기침체를 완충시켜줄 환율스펀지가 없는 상태에서 강도높은 재정긴축을 하니 마취없이 환자를 수술하는 꼴이요, 돌을 달고 벼랑에서 뛰어내리는 것과 같다는 게 미국학자의 시각이다.

JP모간체이스 데이비드 헨슬레이 글로벌 이코노미스트 추정에 의하면 2000년을 100으로 잡을때 그리스 단위노동비용은 2008년 140 가까운 수준으로 높아졌다. 2000년은 유로/달러환율이 유로당 1달러도 못되던 시절이다. 유로화가 최근 약세를 보여왔다고 해도 1.2달러 수준은 된다. 달러로 환산하면 2008년 그리스 단위노동비용은 2000년에 비해 최소 1.6배로 뛴다.

그리스가 글로벌수출 경쟁력을 충분히 가지려면 지금 유로보다 60% 절하된 자국 화폐를 가져야 한다는 뜻이다.

미국학자들은 한가지 방안으로 그리스와 같은 중환자에게는 일시적으로라도 유로존을 떠나게 요양을 취하도록 하는 '방학'을 줄 것을 권하고 있다. 딴 살림하면서 체질 개선을 해서 건강을 회복하면 다시 회원으로 받아들이는 게 어떠냐는 논리다.

독일식 정공법보다는 확실히 편한 방법이다. 그러나 이같은 재무적 처방은 독일 체질에 영 안맞다. 실물경제 위주로 커온 독일 눈에는 얄팍한 것으로 비쳐진다.

미국 당국자들은 최근 와서 당혹스런 기색이 역력하다. 전례없는 부양책으로 간신히 경기에 불을 지펴놨는데 유로위기가 심해져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게 됐다. 회복되는 경기에 맞춰 설계를 마쳐놨던 출구전략도 한참 뒤로 미뤄야할 판이다.

유로존이 편한 방법 놔두고 사서 고생하는데 대해 답답해 하는 분위기도 느껴진다.
유로존이 국가대 국가 지원 방식을 탈피해 1조달러에 이르는 공동의 구제기금을 마련토록 하는 데는 미국이 막후에서 상당히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어쨌든 주사위는 던져졌다. 유로존이 출범할 때부터 경제통합을 넘어 정치통합을 꿈꿔왔던 독일이 유로사수 깃발을 내리기는 힘들어 보인다. 미국 역시 보조를 맞출 지 언정 독일의 플랜A를 뒤집을 입장은 못된다. 그리고 그로 인해 발생할 결과에 대한 우려는 시장에 반영되고 있다.

2008년 모기지 금융위기처럼 파국적인 것은 없다 해도 시간과의 지루한 싸움은 계속 해야할 것 같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