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보상債 과열'...금융권 내부거래· 출혈경쟁

머니투데이 전병윤 기자 2010.05.03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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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상자에 고가매입, 계열사에 떠넘기기...감독당국, 예의 주시


일부 증권-생보간 이상 거래
검단, 채권 발행도 전에 '고가 매입' 계약
큰손 고객 확보, 2차 영업 위해 '너도 나도'


천문학적인 규모의 토지보상금을 둘러싼 금융권의 경쟁이 과열·편법 거래로 이어지고 있다.



2일 증권업계와 감독당국에 따르면 일부 증권사가 신도시 개발에 따른 토지보상채권을 유치하기 위해 역마진 수준의 높은 가격으로 채권을 사들인 뒤 이를 계열 생명보험사에게 되파는 등 비정상적인 거래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월 평택 고덕신도시 토지보상채권의 증권사 매수 가격과 매도가격을 분석한 결과, A 증권사가 1월6일 토지보상채권 700억원을 액면가 1만원 당 9732원으로 B생보사에 매도했다. 적용금리는 5.30%.
같은 날(6일) 50억원어치 토지보상채권도 9754원(금리 5.22%)에 일부 기관이 사갔다.
그러나 비슷한 시기인 4~6일 동일한 채권의 기관 매도 가격은 1만원 당 9680원~ 9710원대였다. 금리로 치면 5.37~5.48% 수준.
다시 말해 B생보사 등 기관 투자가들이 증권사로부터 통상적인 거래가격보다 눈에 띄게 비싼 가격(낮은 금리)로 채권을 사들인 것이다.



업계관계자는 A증권사가 큰손 고객에게 고가로 매수한 토지보상채권을 계열 B생명보험사에게 떠넘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계열 보험회사가 토지보상채권을 높은 가격에 매수해 주겠다는 약속을 미리 했기 때문에 증권사가 토지보상자에게 할인 금리를 낮춰 고가로 매수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매매를 담당한 해당 증권사의 채권 관계자들조차 반대했지만 윗선의 지시가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거액의 보상을 받은 고객에게 채권을 비싸게 사주는 대신 이 돈을 어음관리계좌(CMA)로 유치하거나 주가연계증권(ELS) 등 투자상품을 팔아서 큰 손 고객을 장기적으로 확보하려는 전략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계열 보험사 역시 연금 보험 같은 상품으로 큰 손 고객을 끌어들이자는 목적에서 당장 손해를 보더라도 계열 증권사와 이같은 거래를 하게 된다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업계에서는 계열사를 동원한 이같은 거래로 토지보상채권 시장에서 금융사간 출혈경쟁이 이뤄지고 있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해당 증권사는 근거 없는 소문이라고 일축했다. 이 증권사 관계자는 "높은 가격에 매수해도 시장보다 비싸게 팔아 이익을 남길 수 있었던 건 채권운용 능력이 뛰어났기 때문"이라며 "다른 증권사들이 그동안 싼 값에 채권을 매수해 마진을 많이 남겨왔다는 증거"라고 반박했다.

감독당국도 실태 파악에 나설 방침이다. 금감원 한 고위 관계자는 "거래를 살펴본 결과 실제로 일반적인 상황보다 높은 가격에 매수했던 경우를 확인했다"고 말했다.
특히 고가매입이 금융사의 고유계정이 아니라 고객자산에서 이뤄졌다면 문제가 더 크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출혈경쟁으로 인해 해당 금융사의 고객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모니터링하고 증권사의 부당 영업행위 여부도 조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일부 증권사는 최근 토지보상이 이뤄지고 있는 인천 검단신도시의 토지보상채권에 대해서도 금리 4.26%로 매수해주겠다는 식으로 판촉에 나서고 있다. 이 채권의 민간평가사 평균 유통금리 4.16%(4월30일 기준)를 감안하면 증권사는 할인 수수료로 0.10%포인트를 남긴다. 10억원어치 채권을 할인해 준 대가로 100만원을 버는 셈이다. 인건비 등을 감안하면 사실상 역마진이다.

더구나 토지보상채권은 이번주나 다음주가 돼야 발행되는 상황에서 미리 현 시점의 금리를 가정해 매수가격을 제시하는 것은 비정상적인 출혈 마케팅이란 지적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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