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정치적 사활 건 '건보개혁' 고비 넘었다

머니투데이 엄성원 기자 2010.03.22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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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케어 이후 최대 사회보장.. 단독 통과 역풍 불 수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건강보험 개혁안이 어렵사리 의회 표결을 통과했다.

미 하원은 21일(현지시간) 표결에서 찬성 219대 반대 212표로 상원안을 가결했다. 상원안은 앞서 상원 표결을 통과했으며 이에 따라 오바마 대통령은 천신만고 끝에 건보 개혁의 첫발을 내디딜 수 있게 됐다.

상원안은 오바마 대통령의 재가로 곧바로 법적 효력이 발생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오는 23일 개혁안에 서명할 것으로 보인다.



하원은 또 상원안과 하원안의 이견을 중재한 하원 수정안도 찬성 220 대 반대 211로 통과시켜 상원으로 넘겼다. 하원 수정안은 상원 표결 통과가 무난해 보인다. 수정안은 상원 표결을 통과할 경우, 이날 하원이 가결한 상원 원안을 대신하게 된다.

오바마 대통령은 건보 개혁안 통과에 즉각 반색을 표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하원 표결 직후 TV연설을 통해 "쉽지 않은 투표였지만 '옳은 결정'(right vote)이 내려졌다"고 표결 통과를 자축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어 단독 통과 비난을 의식, 건보 개혁안 통과가 특정 정당이 아닌 미국 국민 모두의 승리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건보 개혁이 건강보험시스템의 모든 잘못된 점을 바로잡을 순 없겠지만 옳은 방향의 변화를 이끌 순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수정안은 10년간 9400억달러를 투입, 건강보험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3200만명에게 보험 혜택을 제공하게 된다. 계획대로라면 건보 수혜 범위는 현재 83%에서 95%까지 확대된다.

미 정치 전문가들은 건보 개혁이 오바마 대통령의 최고 업적이 될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1965년 노년층과 저소득층을 위한 의료보장 제도(메디케어) 도입 이후 최대 사회보장 개혁이라는 평가다.


규모가 큰 만큼 오바마 대통령이 건보 개혁으로 짊어지게 될 부담도 크다. 더욱이 건보 개혁안 통과는 사실상 민주당 단독 지지로 이뤄졌다. 당내 반대마저 적지 않았다.

건보 개혁은 오바마 대통령의 최대 공약이었고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 이후 1년 동안 줄기차게 개혁안 통과에 힘써왔다.

표결 직전까지 오바마 대통령은 분주하게 움직였다. 통과를 위한 216표가 확보되지 않아 이날 오전만 해도 상원안 통과가 불투명했다. 하지만 막판 민주당 내 낙태 반대주의 진영이, 오바마 대통령의 낙태 지원 포기 약속을 대가로 찬성 쪽으로 의견을 바꾸면서 표결 통과가 가능해졌다. 하지만 공화당 의원 178명은 전원 반대표를 던졌다. 민주당 이탈표가 34명에 달했다.

메디케어 때와 달리 건보 개혁안은 민주당 단독 지지로 처리됐다. 이에 오바마 대통령과 민주당이 초당적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한 정치적 대가를 치를 것이란 우려가 끊이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건보 개혁안 통과를 위한 민주, 공화 양당의 논쟁 과정에서 건보 개혁과 오바마 정부에 대한 지지가 현저히 떨어졌다는 점이다. 표결에 대한 관심은 높지만 미 국민 상당수가 정작 건보 개혁의 내용은 모르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거듭된 정쟁이 건보 개혁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양산해냈다.

개혁안 통과를 위한 지난 1년간의 지난한 싸움으로 개혁의 본래 취지는 상당 부분 퇴색했다. 표결을 위해 법안 내용에 수차례 수정이 가해졌고 상, 하 양원의 독자 발의와 상원안 통과 후 수정안 대체 등 파행적이고 기형적인 입법 절차까지 등장했다.

건보 개혁이 독이 될 경우, 11월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의 상하 양원 지배 구도가 깨질 수 있고 오바마 대통령의 국정 장악력이 급속히 쇄락해질 수 있다.

반대로 최대 난제를 돌파한 민주당이 개혁안 통과를 계기로 국론 재결집에 성공할 경우, 보수주의를 앞세워 건보 개혁을 비롯한 오바마 정부 정책에 사사건건 딴죽을 걸었던 공화당이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민주당은 건보 개혁을, 국민을 위한 진정한 개혁이라고 선전하고 있는 데 반해 공화당은 이번 개혁을 급진적 사회주의 실험으로 폄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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