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IB, '그리스 불안' 조장해 돈번다

머니투데이 엄성원 기자 2010.02.26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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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냉키 "골드만삭스, 위기 심화시켜"… 미·독 등 CDS '투기' 우려

글로벌IB, '그리스 불안' 조장해 돈번다


서구 거대 금융사들의 부도덕이 또다시 눈총을 받고 있다. 무책임한 파생상품 판매와 방만한 회계 규정으로 신용위기를 자초했다는 원성이 잠잠해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과 유럽 금융사들은 새로운 금융시장 불안의 단초를 제공했다는 비난에 직면했다.

독일과 프랑스에 이어 미국도 골드만삭스 등 일부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의 투기성 파생상품 투자를 비난하고 나섰다. 골드만삭스 등 투자은행이 의도적으로 그리스 불안을 심화시켜 시장 안정을 헤치고 이를 통한 이익 확대를 꾀했다는 지적이다.



이에 투자은행 등 거대 금융사들의 투기성 투자와 규정을 교묘히 이용한 편법 거래, 이익만을 노린 의도적 시장 교란 행위 등을 억제할 수 있는 시장 규제 강화의 목소리가 재차 확대되고 있다.

특히 미국과 유럽 금융 감독 당국의 그리스 재정불안 대응과 골드만삭스 단죄는 신용위기 이후 말만 많았을 뿐 실속은 없었던 서구권의 금융시장 규제 강화 정도를 미리 가늠해 볼 수 있는 시금석이라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 골드만·CDS가 첫 타깃

미국과 독일, 프랑스 등은 공통적으로 무분별한 글로벌 투자은행들의 투자가 그리스 위기를 심화시켰다는 판단에 따라 국제 금융시장에 대한 통제 강화를 주장하고 있다.

벤 버냉키 미 연방 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25일(현지시간) 상원 금융위원회 청문회에 출석, 그리스 신용부도스와프(CDS) 등 파생상품 계약에 대한 여러 의혹이 드러났다면서 골드만삭스 등 일부 금융사들에 대한 관련 조사를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버냉키 의장은 특히 골드만삭스 등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의도적으로 특정 국가나 기업의 불안을 조장했다면서 이 같은 행위는 비생산적인 것이라고 힐난했다.

미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이와 별도로 CDS 등 금융 파생상품을 이용한 시장 혼란 행위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미국에 앞서 유로존의 그리스 재정 지원을 주도하고 있는 독일과 프랑스도 CDS 투자 관행에 대한 우려를 전했다.

독일 여당 사민당은 G20(주요 20개국) 차원의 CDS 투기 제한을 역설했다. 사민당의 재무 담당 대변인 레오 다우첸베르그는 24일 CDS 관련 규정 강화를 검토하고 있다면서 이에 대한 국제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독일 일간지 디차이트는 이와 관련, 독일 정부가 G20에서 합의된 CDS 거래를 추적할 수 있는 국제정산소 설립 이상의 CDS 투자 제한을 원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프랑스 재무장관은 지난 17일 CDS가 실물경제로부터 유리되면서 야기되는 시장 영향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 앞에선 유동성 조달 알선, 뒤에선 디폴트 베팅

이번 논란의 중심엔 골드만삭스가 있다. 골드만삭스는 미국과 유럽 금융 당국으로부터 그리스 금융위기를 심화시킨 장본인이라는 비난을 듣고 있다.

유럽 금융 감독 당국에 따르면 골드만삭스는 통화스와프 등 각종 파생상품 거래를 통해 그리스 정부가 수십억달러의 부채를 감출 수 있도록 도와줬다. 골드만삭스는 1990년대부터 그리스 정부의 스와프거래에 주관사로 참여했다. 특히 논란이 되고 있는 2001년 EU와 그리스 정부간 대규모 통화 스와프도 골드만삭스의 주도로 진행됐다.

골드만삭스의 협조 내지 묵인 하에 그리스가 장부에 기재되지 않은 부채를 늘리는 사이 골드만삭스를 비롯한 투자은행들은 조용히 그리스 국채 CDS를 사들였다.

CDS는 채권 부도에 대한 보험이다. 채권 부도시 CDS 투자 이익은 최대가 된다. 마찬가지로 그리스 국채 CDS에 투자한 투자은행들은 그리스가 디폴트(채무 불이행)에 빠질 경우, 목돈을 손에 쥐게 된다.

◇ 그리스 CDS "이미 과잉 투자"

최근 재정 불안이 가중되면서 그리스 국채 CDS 투자도 꾸준히 증가했다. 자세한 투자 내역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투자은행들도 이 기간 그리스 국채 CDS 투자를 확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스 CDS 규모는 이미 과잉 상태다. 현재 그리스 국채 CDS 규모는 90억달러다. 이는 전체 그리스 국채 발행액 2670억달러의 3.37% 수준이다. 이 같은 CDS 포화 상태는

그리스와 함께 재정적자 불안 국가로 지목된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 등 이른바 PIGS국가들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디포지토리트러스트앤클리어링에 따르면 PIGS 등 PIGS를 포함한 10개 국가의 CDS 규모는 1080억달러에 달한다. 10개국 전체 국채 발행 규모 11조달러의 0.98% 수준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들 10개국의 현재 CDS 규모가 정상적 상황에서 나올 수 있는 최대 규모라고 평가했다. 평가대로라면 PIGS 국가들의 국채 CDS 규모는 이미 정상 수준을 벗어나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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