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FRB 의장이던 폴 볼커는 금융시스템의 중요한 보루인 은행이 증권업무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되는 것을 마뜩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대세는 이미 글래스스티걸법 폐지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이러한 움직임은 1987년 앨런 그린스펀이 볼커의 뒤를 이어 FRB 의장이 되면서 가속화된다. 실제로 그린스펀이 취임한 이후 FRB는 은행들이 계열사를 활용해 증권업무 취급비중을 확대해나갈 수 있도록 허용했다. 그리고 마침내 1999년 제정된 금융현대화법을 계기로 은행들은 계열증권사를 통해 증권업무를 마음껏 영위할 수 있게 된다.
볼커룰의 요지는 은행이 포함된 금융그룹이 본연의 중개기능과 거리가 먼 고위험 증권업무를 수행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볼커는 또한 공정경쟁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은행이 포함된 대형 금융그룹은 정부의 구제조치로 파산 가능성이 낮고, 따라서 자금조달 비용도 적다. 그런데 이러한 조달비용상 우위를 활용해 헤지펀드, 사모펀드, 고유자산 트레이딩 등의 업무를 영위한다면 이들 업무에 특화한 비은행계열 금융기관들은 불이익을 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유럽국가들의 반대도 상당할 전망이다. 사실 은행업과 고위험 증권업의 결합에 따른 문제는 유럽에서 훨씬 심각하다. 은행업과 증권업을 사내겸영하는 유럽 대형 금융그룹의 경우 전체 자산에서 트레이딩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미국의 3배를 넘는다. 이러한 상태에서 고유자산 트레이딩을 비롯한 고위험 증권업무를 중단하려는 움직임에 순순히 응할 리 만무한 것이다.
과거 FRB 의장 시절 뚝심있는 고금리정책으로 인플레를 잠재운 볼커가 금융시스템 개혁에서도 필적할 만한 성과를 거둘지는 지켜볼 일이다. 그러나 적어도 그가 던지는 메시지는 일관되고도 분명하다. 그것은 바로 금융의 중개기능 회복이다. 고객, 즉 자금 수요자와 공급자의 간극을 메우는 금융 본연의 기능과 무관한 그들만의 잔치에 납세자들이 뒷배를 봐줄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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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금융위기는 전대미문의 금융과잉에서 비롯됐다. 그리고 금융과잉은 금융부족만큼이나 독이 될 수 있음을 우리는 생생히 보았다. 금융과잉의 시대가 저물어가는 지금 우리는 다가올 시대의 금융은 어떠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답할 준비를 해야 한다. 일부 허점에도 불구하고 볼커룰을 허투루 대해서는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